강제실사·입건 불가능, 의료인 '이의신청' 할 수 있어                          직원, 대리인으로 선임 가능…자신 있다면 소송도 방법

오는 11월 30일부터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자동개시 된다.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1급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신청인의 절차참여 동의와 관계없이 조정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의료사고가 발생해 신청인이 조정신청을 할 경우 병원이나 의료진의 동의 없이 조정절차가 시작된다.

이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중환자 기피법’이라고 단정하며 방어진료가 만연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법무팀이 있는 종합병원보다 일반 병의원의 피해가 더욱 클 것이라는 목소리도 새어나온다.

하지만 법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태를 심각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이희석 상임조정위원이 6월 30일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 강당에서 열린 ‘의료분쟁법 자동개시, 의료계 진전인가 퇴보인가’ 정책토론회에서 발제한 내용들을 토대로 안전장치와 주의해야 할 사항을 정리해봤다.

중재원 강제조사권 없어, 합의되면 형사책임 면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중재원이 맡는 의료사고로 인한 분쟁은 형사가 아닌 민사사건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는 강제조사권이 없고 입건이나 형사소송이 불가능하다.

이희석 위원은 “최근 SNS에 의료분쟁조정을 거부하면 2년 징역, 승낙하면 의사 입건과 함께 현장 강제 실사가 진행된다는 등의 루머가 떠돌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며 “우리는 강제조사권이 없을뿐더러 조정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면 오히려 형사책임이 면제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조정절차가 개시되면 무조건 현장 실사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럴 필요는 없다. 중재원 측에서는 대부분 서면조사로 일을 처리하며, 진료기록 등에 대한 서면조사만으로 감정 결과를 도출하기 부족하거나 특별히 현장조사의 필요성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현장실사를 나간다. 이마저도 7일 전까지 사유 및 일시 등을 서면으로 통보한 후 실시하고 있다. 이 위원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중재원이 현상 실사를 나가는 경우는 연 10회 정도이다.

의료계 쪽에서도 언제든 소송 가능
안전장치 중 하나는 의료인의 ‘이의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에는 의료기관의 기물 등을 파괴ㆍ손상ㆍ점거 하거나 업무를 방해를 했을 때, 거짓된 사실 또는 사실관계로 조정신청을 한 것이 명백한 경우 등에는 14일 이내 조정절차 개시 관련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해 조정신청 남발을 막도록 했다.

또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조정절차를 거치도록 하기 위해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시행한 것이기 때문에 조정절차 전후를 불문하고 언제든지 의료계 쪽에서 소송 제기도 가능하다.

이 부분은 특히 법무팀을 갖고 있는 병원 측에서는 언제든지 이에 대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에 의하면 의료계 쪽 소송이 두려워 섣불리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환자들이 많다고. 소송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나 소비자원을 찾는 식이다.

사망 등 자동개시 요건 갖춰야 절차 시작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무조건 조정절차가 개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망이나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등급 1급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라는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현행과 마찬가지로 피신청인 조정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중재원에 통보해야 절차가 개시된다.

물론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의 기준 시점을 언제로 잡을 것인지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부와 의료계의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료계에서 나오는 우려의 대부분도 여기에 해당한다. 정부에서는 오는 7~8월까지 협의체를 만들어 구체적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세우겠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정영훈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아직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지 얼마 되지 않아 정확하게 협의체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의료계와 환자 측 모두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에 불필요한 논의에 집중하기 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등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달라”고 당부했다.

중재원, 의료기관 및 환자 정보 일체 비공개
조정절차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법원이나 다른 기관에 의료사고 내용이나 의료기관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는 생각도 지나친 우려이다.

감정위원 또는 조정위원으로 참여한 자는 감정 또는 조정절차의 과정에서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며(법 제41조),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 중재원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 및 법률에 따라 의료기관 및 환자의 정보는 일체 비공개로 진행하며 법원의 사건기록 등 문서송부 촉탁에도 비공개를 이유로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 건보공단에도 일체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출석요구 및 소명요구 불응 과태료 폐지
이번 개정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료계에 유리한 부분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것이 ‘대리인 선임요건 완화’이다. 개정 전에는 법인만 임직의 소송대리를 인정했지만, 이번 개정안은 ‘해당 보건의료기관의 임직원’이 추가되면서 개원의들도 의료기관의 직원을 대리인으로 출석시킬 수 있게 됐다. 이 위원은 “약 1~2회 정도 출석하는 것이 보통”이라며 “하지만 의료인이 직접 와서 서면 또눈 구두로 소명하면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과태료도 폐지됐다. 출석요구 및 소명요구 불응에 의한 과태료(500만원 이하)가 폐지됐고 감정위원이나 조사관이 의료기관 현장을 출입해 조사·열람 또는 복사하는 것을 거부·방해·기피하는 경우 개정 전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었으나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로 처벌수위가 낮아졌다.

이날 토론회의 또 다른 발제자였던 법무법인 LK파트너스 이경권 변호사는 “이 법을 만든 사람 중에 한 명으로서 의료인들의 큰 우려를 알고 있다. 하지만 중재원은 잠입조사가 가능한 그런 집단이 아니다”라며 “법의 목적 중에 신속, 공정한 피해구제뿐 아니라 안정적인 의료환경을 조성하는 부분도 있는 만큼 현재 의료인들의 우려가 ‘침소봉대(針小棒大)’는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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