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용철 민화협부의장과 남측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북한 방문단

대한약사회가 최근 아부다비에서 열린 세계약사연맹(FIP) 총회에서 북한 약사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약사회는 남북 약사들이 만나는 자리를 주선, 아부다비에서 만난 남북 약사들은 정치적 이념을 떠나 '약사'로서 각 국의 보건의료 향상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약사와 약사회가 남북 관계및 국제협력 문제에 가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실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대한약사회 박명숙 국제위원장(국제이사)의 노력이었다.

이에 박명숙 국제위원장을 만나 남북 약사 교류뿐만 아니라 그동안 활동해온 사회 운동가로서의 이력에 대해 들어 봤다.  

- 이번 세계약사연맹(FIP) 아부다비총회에서 처음으로 북한 약사가 참석, 만남을 가졌다. 의의와 배경을 설명해 달라.

국제 협력이 어떻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이번 남북약사들의 만남이다. 남북약사가 함께 만나 양국의 국민들의 보건향상을 위해 교류협력하면 좋겠다는 것을 생각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현재 남북관계는 그러한 일을 성사시키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간 대한약사회는 북한 약사들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지난 서울 FIP총회에서도 북한 약사들을 초청하고자 했으나, 실질적인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과 같이 FIP 초청 형식으로 남북한의 제약부분과 병원부분에서 일하고 있는 약사들이 함께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약사’라는 하나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 이번 남북약사의 만남이 지속적인 교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나.

이번 남북 만남은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FIP 협력을 이끌어 낸 약사회의 역량과 국제적인 위상이 반영된 결과이며, FIP 차원에서도 대단히 역사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남북 보건교류협력 관련한 일로 지속적으로 일을 해 왔지만, 이번처럼 '약사'들을 만나서 '약업관련 일'만을 가지고 충실하게 대화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실무를 책임졌던 국제이사로서 큰 자부심을 가지며, 향후 이러한 남북 약사들의 교류 협력은 계속 발전시켜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현재도 국제적인 공조로 이룰 수 있는 몇 가지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남북약사 교류의 장을 열어 남북 평화통일에 기여하는 약사의 모습을 만들어 가겠다.  

- 남북 문제를 비롯, 사회 운동가로서 어떤 활동을 했는가.

평화통일문제는 우리 세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한다. 이를 풀기 위해 오랫동안 공부도 하고 활동도 해 왔다.

지난 2007년부터 당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을 지원하기위해 성공회 내에 'TOPIK(현재는 평화를일구는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대북지원사업과 평화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금강산지역이나 개성지역, 평양 등을 방문한 적 있다.  

2012년부터는 (사)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 가입해 활동해 오면서, 2018년 11월에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서 평양에서 민화협과 같이 보건의료부분 교류협력 방안을 논의하고자 북한방문 단장으로써 평양을 방문한바 있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약사회가 남북관계 개선에 구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남북관계 개선은 정치, 군사적인 top-down 과제도 있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를 통한 저변 확대가 중요하다.

남북이 상호 협력하고 협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 win-win 하는 방식이 필요한데, 보건의료부분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적인 입장을 넘어 인도적 차원에서 순수하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이슈이다.

대한약사회는 약사라는 중요한 인적 자원을 중심으로 정보 교류는 물론 제약과 의약품산업유통 기술 교류 등을 잇는 중심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사회적인 관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데, 본인은 어떤 사람인가.

나의 가장 큰 장점이자 힘의 원천은 3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민주 가족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여성문제와 남북문제, 보건문제에 지속적인 조직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왔다는 것, 셋째로는 통일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받았고 정책입안에 지원그룹이 있다는 것이다.

1986년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막내 동생의 투옥으로 어머니의 인생도 변화했다. 어머니는 부당한 구속과 고문에 항의하며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이하 민가협)'를 만들며 우리나라 민주화의 투사로서 삶을 사셨다.  

나도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1996년 안양평촌지역에 살면서 신도시에서의 문제점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지역 여성들이 하기 시작했다.

몇 건의 큰 가정폭력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여성운동 조직의 필요성을 접하고, 지역의 여성들과 힘을 합쳐 ‘안양여성의전화’를 자생적으로 만들고, 회장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 와중에 IMF를 맞게 되었고, 국가 재난 속에 더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여성가장들을 지원했다.

2008년부터 4년간 ‘(사)탈북여성지원GFS 우물가‘를 만들어, 탈북여성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사업을 위해 본부장으로서 일했고, 현재는 이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대북지원사업을 위한 ‘사단법인 평화를일구는사람들’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서 활동하면서 보건의료부분의 남북교류협력 부분에 구체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 다양한 활동에 가족들은 어떤 이바지를 했는지.

남편인 이재현 교수(성균관대 약대)는  한 가정을 같이 꾸리는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저의 뜻을 잘 이해하고 적극 지지해주는 가장 가까운 지원자이다. 물론 약업계로 봐서는 제게 스승이자 동료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도 다양한 주제로 같이 토론할 때가 많다. 그 과정에서 보건의료 정책관련 다양한 주제와 의견을 나누게 된다.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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