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고령화시대… 약사의 전문약료 서비스 요구돼
직능단체·학계·의료계 간 협력 통해 제도 초안 수립해야

전 세계가 초고령화 시대로 급속하게 진입하고 있다. 다국적 컨설팅 업체인 왓슨 와이엇 월드와이드(Watson Wyatt Worldwide)에 따르면 2030년 이후 한국은 65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1,250만명)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노년기의 건강하고 질 높은 삶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이제 국가적인 문제를 넘어 전 세계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다가오는 초고령화 사회를 대비해 노인들의 건강증진과 의료비 절감을 위한 ‘노인약료 전문약사제도’ 도입을 모색하는 공론의 장이 열렸다. 11월 20일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 서울특별시약사회가 주관한 <노인약료 전문약사제도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보건복지부·한국보건의료연구원·약학대학·의과대학 등 부처 담당자와 각계 전문가들이 노인약료 전문약사 도입의 정책적 방향성에 대해 논의했다.

본지는 선진화된 노인약료 서비스를 수행하는 미국 노인전문약사들의 활동과 성과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노인 의약품 관리 현황 및 노인약료 전문약사 제도 도입을 둘러싼 각계 입장을 소개한다.

▲ 미국 덴버대학 Sunny Linnebur 임상약학 교수

미국 노인전문약사들의 활동과 성과

현재 노인전문약사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국가는 미국, 콜롬비아, 푸에르토리코, 캐나다, 호주, 파나마, 스웨덴, 싱가포르, 일본, 아랍에미레이트 등 총 8개국이며, 약 1,700여명의 약사가 인증을 받았다.

그 가운데 미국은 노인약료 전문약사들이 의료팀과 협력, 예방접종·약물치료관리(MTM, medication therapy management)·건강검진 등의 노인약료 서비스로 환자 케어에 기여하고 있다. 미국 내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13%를 구성하며 전체 처방약의 30%, 전체 일반약의 50%를 노인이 복용한다. 또한 미국의 노인들은 약물 문제로 인한 입원이 전체 입원의 40%이고 노인의 약물 관련 사망이 전체 약물 관련 사망의 절반을 차지하는 상황이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대학 임상약학 교수 Sunny Linnebur는 노인 전문약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노인에게 과잉처방된 약물이 후속조치 없이 투여되고 있다”며 “복용 약물을 입원·퇴원·퇴원 후로 구분해 리스트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약물 오류가 뚜렷이 감소했으며 의약품과 의료장비가 더욱 복잡해지는 것을 감안할 때 약사가 ‘노인의 과다한 약물로 인한 피해 감소’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노인약료 전문과정을 추천하고 있으나 의무가 아니라 현재 노인약료 전문약사가 다소 부족한 실정이다. 미국에서 노인약료 전문약사 자격을 취득하고자 실시되는 교육은 약대 내부 교육뿐 아니라 노인들과 함께 일하는 직업 교육, 레지던트 교육(PGY1 또는 PGY2 노인약무실습), 레지던트 연수(21 PGY2 노인약학에 집중된 레지던트) 등이 있다.

미국 약학대학 중 43%의 대학에서 노인약료 전문가 강의가 개설되어 있으며, 노인약료 전문약사는 올해 기준 2356명으로 집계됐고 이들은 대부분 병원이나 장기요양병원에서 근무한다.

미국 노인약료 전문약사가 제공하는 노인약료 서비스는 크게 예방접종, MTM, 약물 검토, 이송환자 관리, 만성질환 관리, 약제 재검토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약사-의사가 의료팀을 이뤄 함께 회진하며 치료를 논의하는데 이러한 협업은 비용 절감, 입원기간 및 이상 반응 감소 등의 효과를 나타냈다. Sunny Linnebur 교수는 또한 메타분석 연구에서 “노인환자의 치료에 약사가 관여했을 때,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치료적 효과, 안전성, 입원 기간 등의 성과가 현저히 좋아졌다는 결과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미국 노인약료 전문약사의 업무인 ‘약물 조정’은 입원 및 퇴원 시에 의도치 않은 약물 불일치를 방지하고 약물 유해 사례 및 투약 오류를 막기 위해 중요하다.

Linnebur 교수는 “약사들은 입원의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약물관련 문제점을 확인하고, 환자가 집에서 가져온 약 중 입원 시 복용이 필요한 약품을 선별하며, 대체조제가 가능한 약물이나 중재방법들을 확인한다”며 “약물 조정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이송환자 관리’ 역시 미국 노인약료 전문약사들의 주요 활동이다.
이는 환자를 다른 곳으로 이송시킬 때 이상반응을 예방하고자 하는 치료 관리로서 특히 퇴원 후 투약 오류와 부작용 등의 발생을 줄이기 위해 약사가 환자를 방문, 퇴원 이틀 전까지 소통하며 약물 검토와 약물 용량 및 투여기간 조정 등의 관리를 진행한다. 그 결과 한 연구(Budiman et al 2016.2)에서는 퇴원 후 30일 이내 재입원율이 13%에서 8%로 감소하고, 퇴원 30일 후 복약 순응도와 복용약물에 대한 지식지수가 증가하는 등 유의미한 수치를 남겼다.

2015년부터 미국 노인약료 전문약사들은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의 조직적인 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매달 최소 20분 이상 2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자에게 케어를 제공하고 봉사활동을 진행한다. 주로 제2형 당뇨병 및 만성 통증을 관리하며 지속적인 약물 투약을 돕는다.

Linnebur 교수는 “노인약료 전문약사들은 환자들의 이송 관리 및 만성질환 케어를 통해 새로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며 “미국의 성과를 토대로 한국의 환경에 적합한 서비스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의 의약품 적정 관리의 필요성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약료 서비스의 기반이 되는 노인의약품 관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현재 건강보험 누적흑자는 20조원을 넘어섰지만 출산율 저하와 급격한 노인인구 증가로 보건의료비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수경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건강보험 진료비가 약 60조에 육박하고 특히 약제비의 증가율은 3%대”라며 “대부분 백내장, 근골격계, 순환기계 등 노인 질환의 입원 진료가 포함된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노인의료비는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이며 전체 인구 진료비 대비 3배 이상이다. 총 처방건수 역시 노인 환자 처방이 30%, 총 약품비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약제비의 상승은 약제비 변동 요인 중 투약일수의 증가가 가장 큰 원인이며, 이는 노인 환자의 증가와도 관련이 깊다.

김수경 위원은 “의약품 관리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의약품의 심사와 평가, 처방 인센티브(절감 금액 30% 기준하여 인센티브 제공), DUR(금기, 안전 문제 중심으로 약사와 의사가 검토 가능)이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약국을 통해 청구되는 건강보험 약제비 규모는 요양기관별로 추산 시 약국이 13조 950억원으로 가장 높고, 의원 11조 7,916억원, 병원 9조 7,376억원 순이다.

김 의원은 “약국의 약제비 규모가 가장 큰 만큼 의약품 적정사용 관리자로서의 약사 역할이 강조된다”며 “DUR 점검 항목을 보다 세밀하게 보완하는 등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3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이 전체 노인의 절반이다. 김 위원은 “합리적인 노인 의약품 사용을 위해 약사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며 “약사는 어떤 약을 가장 먼저 처방할 지에 대한 약가 대비 효율을 분석하고 약의 용량용법, 복약순응도 향상 방안 등의 연구를 통해 처방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데 일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물부작용 인한 의료비 증가…약사가 전문서비스 제공해야
방준석 숙명여대 임상약학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노인약료 전문약사 도입의 필요성과 도입방안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방준석 교수는 “우리나라는 노령인구 의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약물복용 관련 부작용 위험도 높아지는 실정”이라며 “다제약물 복용과 약물부작용 치료는 결국 의료비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방 교수는 “노인환자의 약물 치료효과를 향상시키고 이에 따른 의료비용을 절감하려면 그들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약사의 역할이 요구된다”며 선진국의 노인전문약사 제도에 대해 소개했다.

선진국 성과 토대로 ‘한국형 노인약사제도’ 마련 필요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이 제도를 도입할 때 가장 먼저 선행한 것은 바로 연구였다. 선진국의 의료진은 자체적인 연구를 지속하며 1947년 영국노인병학회를 설립했으며, 이를 통해 제도를 마련했고 약대도 기초적인 교육과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됐다.
우리나라는 1968년 대한노인병학회 설립 이래로 2004년 고령화 및 미래사회 위원회를 구성,  고령화사회에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반 구축 등 고령화사회 정책 수립을 시작했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서는 전문분야 인력 양성이 규정되어 약물 사용과 관련한 전문약사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방준석 교수는 “노인약료 전문지식을 갖춘 약사를 양성하기 위한 체계화된 교육제도와 자격제도가 미비한 탓에 약사제도 도입은 약사의 노력과 더불어 정부의 노력도 요구된다”며 “미국약사가 노인환자의 약물치료에 개입해 획득한 긍정적인 성과와 노인전문약사의 활동을 근거로 한국형 노인약사제도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방 교수는 “노인환자를 대상으로 한 부적절한 약물처방 및 사용이 수차례 보고되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인 약물치료를 계획·검토하는 전문화된 약사직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방 교수는 “우리나라는 서울시약사회를 중심으로 노인환자 돌봄 및 치료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직능단체가 자발적인 활동을 실시하면서 제도 초안을 마련하고 공청회까지 이어지는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고 권고했다.

약학계, “제도 수립과 함께 인력 양성 수반해야”
‘노인약료 전문약사 제도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해당 제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었다.

김은영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는 “고령화사회를 지나 2017년을 고령사회로 예측하는 지금, 노령인구에 대한 정책을 국가에서 제언하고 있는데 노인약료는 많은 수요에도 사각지대”라며 “환자 약료에 대한 정책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시스템을 통해 기틀을 잡고, 제도와 수가로서 뒷받침하며, 약사들은 환자 개개인의 맞춤약료 서비스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은영 교수는 “고령화시대를 대비하려면 30여년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미 2030년이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노령인구”라며 “제도 수립과 동시에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인재를 육성하려면 “학계와 직능단체, 관계 부처 등의 협력과 환자 중심의 다학제간 팀워크를 수행하는 사회 전반적인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 한림대 의대 윤종률 교수

의료계, “약사들에게 중요한 건 인증 아닌 교육”

윤종률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는 “노인병클리닉을 운영하며 75세 이상 환자의 복용약을 분석한다”며 “이러한 전문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약사가 절실하다”고 발언했다.
윤종률 교수는 “지난 20년간 노인병학회 책임자로서 복지부, 학회 측에 노인병전문의를 만들자는 주장을 해왔으나 재정적인 이유로 수용되지 않았고 의사들 사이에서도 노인병 전문의 소속, 도입 시기 등 문제가 제기되며 의견이 분분했다”며 “약사들은 노인전문약사를 도입하는 데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윤 교수는 현재 약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노인전문약사의 인증이 아닌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약사가 의사와 동등하게 대처할 수 있을 만큼의 지식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며 “노인약료 교육을 강화해 상담으로 노인 환자를 관리하면서 약대와 전문가를 주축으로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사-의사 간 역할 재정립 논의해야…시범 사업도 대안
서울시약사회는 지난 7월부터 노인약료 전문가과정을 진행 중이다. 김예지 서울시약사회 학술위원장은 “약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노인 대화기법, 영양, 약물상호작용 등 강의를 수강하며 약사의 전문성을 고양하고 있다”며 “환자를 위해 의사와 약사가 팀의료로 삶의 질을 개선시키고 정부 차원에서도 제도를 통해 국민이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홍원표 헬스조선 취재본부장은 “의사 입장에서는 우리 영역을 약사들이 침범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며 “약사와 의사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홍원표 본부장은 “당장 제도를 마련하기보다 예산을 편성해 시범적으로 지방약국부터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환자단체, “약대 6년제 학제와 취지와도 부합”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노인약료전문약사를 도입하려면 전문약사제도 내 노인 파트인가 혹은 노인약료전문약사를 별도로 마련한다는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안기종 대표는 “6년제 약사가 배출되면서 임상 약사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음에도 최근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라질 직업에 약사가 꼽히고 있다”며 “6년제 약사들이 전문약사제도를 통해 역량을 키워 약사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안 대표는 “노인질환에 대한 치료와 안전 확보, 비용 절감이 가능한 전문약사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며 “전문약사제도를 도입하면 전문약사는 전문의와 경쟁하게 되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전문약사로서의 효과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첨언했다.

복지부, “구체적인 제도 초안 마련되면 행정적 반영할 것”
관계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윤병철 약무정책과장은 “노인전문약사제도를 인정했을 때 정부가 약사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윤병철 과장은 “약사연수교육이나 면허관리, 면허갱신제도를 전문자격제도와 어떻게 연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며 “약물요법전문약사라고 하면 ‘왜 노인만 필요한가? 아동은 필요하지 않나?’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윤 과장은 “공공의료 측면에서 약료서비스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노인에게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제도를 설계하면서 자격, 시간, 인정기구(한국병원약사회 혹은 대한약사회), 국외자격인정제, 서비스에 대한 수가 연결 등 이런 측면을 다각적으로 검토한 후 의견을 전달해준다면 행정적으로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전혜숙 의원은 “토론회를 통해 논의한 여러 의견을 수렴하여 어르신들의 건강을 지키고, 의료비를 줄일 수 있는 정책 입안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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