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경영난 겹치고 지위 상실 두려움 탓 치료시기 놓쳐
스스로 관심 갖고 가까운 동료 도움 청해야, 선행교육 필요

최근 경기도 안산시 A비뇨기과 J원장이 강압적인 현지조사로 인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의사들의 우울증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생명을 다룬다는 부담과 과도한 업무, 저수가로 인한 경영난이 의사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지만, 의사들 스스로 이를 인지하지 못할뿐더러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상담을 받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특히 개원의의 경우 하루 종일 병원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외부인들과의 교류가 적으며, 도움받기를 꺼리는 성향이라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5년간 10건 발생…대부분 경영난 겹쳐
관리 안 되는 회원 대부분, 정확한 통계 없어

최근 5년간 발생한 의사들의 자살 사건을 정리해보면 총 10여건 가량이다.

이중 여섯 건이 경영난으로 인한 자살이었으며, 사무장병원에 고용되어 빚더미에 앉거나 개원 후 채무에 시달리는 등의 압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사고로 인해 경영난을 겪거나 우울증을 함께 앓는 경우도 있었다. 이밖에 성폭행 혐의나 리베이트, 의료기관 현지 조사로 인해 자살을 선택한 경우가 각각 1건 씩을 차지했다.

▲ 의사들의 자살 현황(2011~2016년 현재, 한국의약통신 정리)

자살의 주요 위험인자는 우울증이다. 전문가들은 자살 전 진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주요 원인이 우울증일 가능성인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핀란드의 경우 자살한 12명의 의사를 상대로 ‘심리적 부검’을 한 결과 7명이 생전에 우울증을 알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의사들의 자살이나 우울증과 관련해 정확한 통계는 알기는 어렵다. 자살한 회원 대부분이 지역의사회 활동을 하지 않거나 가입을 했더라도 회비를 내지 않아 의사회의 관리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가통계로도 정확한 수치를 잡기는 힘들다. 통계청은 ‘사망원인통계조사’에서 매년 표준직업대분류에 따른 직업별 자살현황을 발표하고 있지만 ‘의사’나 ‘의료인’만 독립 카테고리로 구별하지는 않는다. 경찰청의 직업별 자살현황 역시 마찬가지이다.

관련 연구 역시 전무한 실정이다. 광범위한 직업군별 정신건강을 분석한 자료는 있으나, 의사 직업군에 대한 정신건강과 자살율을 분석한 국내자료는 전무하다. ‘의사들의 정신건강’과 관련해 문제의 심각성 및 사회적 관심을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조사나 연구가 현재까지 전무한 실정인 것이다.

정신과 70% ‘우울증 경험 있어’
전문직 자살율 10년간 6배 증가

하지만 해외 자료를 보면 어느 정도 의사 직업군의 스트레스 강도를 알 수 있다. 매년 미국에서는 약 300~400명의 의사들이 자살로 사망하고 있으며 의대생들은 일반인보다 10~30% 더 높은 우울증 발병률을 보이고 있다.

호주의 국가단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약 21%의 의사가 우울증으로 진단되었거나 치료되었고 이 중 6%는 아직도 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들은 자살 생각은 약 25%로, 일반인구(13.3%) 및 다른 직업군의 평균(12.8%)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으며 실제로 2%의 의사들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연구에서는 특히 여의사들이 남자의사들에 비해 더 높은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는 이러한 연구가 진행된 적은 없지만,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지난 2010년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을 치료하는 정신과 전문의조차도 10명 중 7명 가량이 최근 1년간 경증 및 아임상 우울증 경험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의사들의 우울증 문제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전문직의 자살율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 자살현황(1997~2013)을 보면, 직업별 자살자 비율은 농림어업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해마다 1%포인트 안팎의 작은 비율로 증감했다. 하지만 전문직·관리직 자살자는 최근 10년간 6배 증가했으며 전체자살자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5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 다루는 부담, 경영난 원인
사회적 시선 두려워 치료시기 놓쳐

그렇다면 의사들의 우울증이 방치되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생명을 다룬다는 부담과 과도한 업무, 저수가로 인한 경영난이 의사들

▲ 황태연 부장

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황태연 정신겅강사업부장은 “의대생이나 레지던트의 경우 임상을 맡게 된다는 부담감과 수면과 여가시간 부족 등 고강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황이 우울증을 부추긴다. 이후 전문의 자격을 따고 봉직의나 개원의가 되면 저수가로 인한 경제적 여건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분석했다. 또 최근에는 개원가의 과도한 행정부담도 큰 스트레스라고 덧붙였다. 상대적으로 정보가 적고 모니터링 시스템이 전무한 상황에서 보험 관련 행정 부담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 여기에 ‘엘리트코스’에서 벗어나 본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심한 경쟁에 몰리면서 그동안 누렸던 지위를 내려놔야 한다는 ‘지위상실에 대한 불안감’이 의사들을 우울증과 자살로 몰고 간다고 지적했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때 이를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분석이다.

황 부장은 의학적 지식이 자살성공률을 높인다는 점도 지적했다. 황 부장은 “의사라는 직업적 특성상 우울증 이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약물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고, 자살을 결심했을 때 그 성공률 역시 높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5년간 발생한 자살 사건 중에서 차량 안에서 염화칼륨을 주입한 사례도 있었다.

문제는 의사들의 우울증이 단순히 자신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하버드의대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의사들이 그렇지 않은 의사들보다 의료과실을 야기할 가능성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갖거나, 이상이 생겼다고 해도 전문의와 상담하는 의사는 많지 않다.

정신과적 치료가 일종의 터부로 인식되면서 선뜻 치료에 나서지 못하면서 자살로 이어지는 경향이 의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의료인으로서 정신과적 치료를 받을 경우 전문인으로서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의사들을 더욱 옥죄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호주의 국가단위 통계에서는 의사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스티그마 조사결과, 응답자의 40%가 정신병력이 있었던 의사가 그렇지 않은 의사보다 능력이 덜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 부장은 국내의 경우에도 의료인의 정신질환을 ‘전문가로서 장애물’이라고 의식하고 환자 소송의 가능성 등을 고려해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동료 의사에게 빨리 도움 청해야
학생 때 교육, 정신건강 정기검진 등 필요

의사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황 부장은 “무엇보다 정신 건강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정부가 정신건강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1차 의료기관에서 우울증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환자들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갖는 의사일수록 자신도 잘 돌볼 가능성이 높다”며 “처음부터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체크해줄 수 있는 동료 의사를 찾아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기분장애, 물질남용, 자살사고나 충동에 대한 정기 검진이 필요하며 의사 스스로 우울증이나 자살에 대해 인지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하는 만큼, 전공의나 의과대학생 시절에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협 차원에서 의사들의 정신건강에 관한 조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황 부장은 의협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거나, 불가능하다면 국가에 이런 연구를 제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의사협회가 NGO에 연구용역을 맡겨 관련 연구를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황 부장은 “우울증은 누구나 빠질 수 있는 질환”이라며 “스스로의 정신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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