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경력 불구 초라한 노년 보내는 유명인사의 삶
계획적인 노후 준비로 인생의 ‘해피엔딩’ 준비해야

푸르덴셜생명 최용민 라이프플래너
전) 모여커뮤니케이션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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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1일자에 실린 조선일보 기사를 살펴보자.
“미술평론가 1호 이경성씨의 쓸쓸한 황혼”
“영원히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죠. 혼자 사는 노인 얘기는 남의 일로만 생각했었는데…”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재동 한국병원 노인병동. 한국 미술평론가 1호인 석남 이경성(83세)씨는 퇴원 준비를 끝낸 뒤, 10개월간 ‘집’ 노릇을 했던 병실에 우두커니 앉아 상념에 젖었다. 그가 이곳에 ‘입주’한 것은 작년 2월. 아내와 사별한 지 6년, 외동딸이 미국으로 이민간지 4년만이었다. 여든이 넘어 혼자 남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노후의 삶, 준비에 따라 달라
이씨는 지난 50년간 ‘직업이 미술관장’이라는 말을 들어온 유명인사 였다. 92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기사장, 2000년 예총예술문화상 대상 등을 받았고, 30년간 홍익대 교수를 지내며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두 차례 역임했다. 그러나 화려한 경력과 달리 나이 들어 홀로 된 모습은 노후 대비를 못해 절망하는 여느 노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한탄했다.

이씨는 가족이 자신의 곁을 떠난 뒤 여의도의 한 전세 아파트에서 혼자 살다 입원했다.
“작년 초 어느 날 혼자 아파트에 있는데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졌어요. ‘갑자기 집에서 쓰러지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나더군요”

2평 남짓한 1인용 병실에서 그는 평론 활동을 계속했지만, 한 달에 200만원이 넘는 병원비는 큰 부담이었다. 그림에 빠져 사느라 그가 모은 재산은 아파트 전세금 8,000만원이 전부였다. 입원 10개월간 2,000만원을 병원비로 쓰면서 불안감은 더 커졌다.

그 와중에 병원 측은 운영난을 이유로 노인병동을 닫기로 했다. 이씨는 이날 병실을 내주고 딸집으로 가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했다. 국내에는 갈 곳이 없었다.

이씨를 곁에서 돌봐왔던 미술평론가 김달진씨는 “선생님이 모아놓은 재산으로는 2억원 이상의 예치금을 내는 실버타운이나 매달 500만원씩 내는 노인병원에 들어가기는 불가능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 역시 참담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여생을 아름답게 마치고 싶은 노인들의 마음을 한국 사회는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나라에서 받는 돈이라고는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노인 교통수당 월 1만2,000원이 전부라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제 동년배들은 ‘노후준비’라는 말은 듣지도 못한 체 늙어버렸습니다. 노후의 삶을 조금이라도 준비했다면 충격이 이렇게 크지는 않았겠죠…”


‘해피엔딩’ 준비하고 있는지?
‘그는 22회 석남미술상이 거행되는 2월 하순쯤 돌아올 예정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올 그를 기다리는 안식처는 어디에도 없는 상태다’ <조선일보, 2003.01.01>


필자는 강남 서초동에 위치한 노인복지시설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기억이 있다. 20여분 정도의 할머니들이 계신데 평균적으로 80이 넘으신 분들이다. 모습들이 너무 고우셔서 젊으셨을 때 어떤 일을 하셨는지 여쭤보았더니 주부로 자식들 키우는데 평생을 보내신 분들, 약사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셨던 분들, 사업을 하셨던 분들 등 각양각색이다.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 명줄이 내 맘대로 잘 안 돼. 난 빨리 가고 싶은데 말이야…”

젊으셨을 때 수상스키를 즐기셨다는 할머니는 언뜻 봐도 워낙 건강하게 보이셔서 100세 까지는 족히 사실 것 같았다. 올해로 84세 되셨다는, 별명이 ‘소녀’인 할머니의 말씀이 유독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젊었을 때 아무리 돈 잘 벌면 뭐하누. 인생은 끝이 좋아야 다 좋은 법이여…”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어떠신가. 내 자서전의 마지막 페이지가 해피앤딩으로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고 계신가? 스스로 반문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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