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나 기업의 CEO들이 경영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내게 좋은 경영전략을 알려달라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서점에 가보면 전략의 홍수다. 그런데 좋은 전략이란 무엇일까? 우선 아무리 좋은 전략이라도 내 몸에 맞아야 한다. 그 전략을 시행할 배짱, 리더십, 자금, 조직이 있어야 하고 그 전략이 우리 병원 문화에 맞아야 한다. 좋은 전략이 있느냐는 CEO들의 질문은 좋은 약을 써달라는 환자들의 막연한 요구와 일맥상통한다. 좋은 약과 나쁜 약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환자에게 효과가 있고 부작용이 없으면서 가급적 가격이 낮으면 그것이 좋은 약이다. 새로 나왔다고 무조건 좋은 약이고, 비싸다고 무조건 좋은 약이 아니다. 전략도 그와 마찬가지다.


게다가 전략적 경영은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병원의 금전적 인적 지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를 하게 되면 병원이 도산할 수도 있다. 즉 위험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전략적 경영이 맞지만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전략적 경영 자체가 맞지 않는다. 이들이 남의 말만 믿고 성공했을 때 보상이 큰 고위험의 전략을 도입했다가 사소한 어려움에 짓눌려 중도하차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본다. 이도저도 아닌 셈이다.

 

차별화보다 영역 확장이 도움 되기도


그리고 전략이라는 것은 누군가 이미 이룬 것을 토대로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남이 이미 이룬 성공공식을 베끼는 경우 원인과 결과를 착각하는 오판을 하기도 한다. 식당을 예로 들면 잘되는 식당은 메뉴가 하나밖에 없고 안 되는 식당은 모든 메뉴를 다 취급한다면서 이른바 ‘맛집 이론’을 펼치는 경영전문가들이 많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해석한 것일 수도 있다. 강남역, 종로 등 거대 상권의 경우 메뉴가 하나만 있어도 유지가 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상권에 위치한 경우 대부분의 식당들은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를 맛있게 해야 버틸 수 있다.


학교 앞 분식점을 가보면 대부분의 식당들은 여러 가지 요리를 맛있게 해낸다. 대학생들이 모이면 입맛에 맞는 여러 가지 요리를 동시에 시킬 수 있는 집에 찾아가게 된다. 동네 상권에서는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는 메뉴를 제공해야 한다. 반면에 하루 몇 만명의 유동인구가 있는 거대상권에서는 특별한 메뉴 하나만 잘해도 된다.


그런 점에 있어서 마케팅 전문가들이 무조건 찬양하는 차별화 전문화가 항상 고수익을 보장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차별화라는 것은 결국 현재의 우리 병원의 진료영역 또는 환자군 중 일부를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원의에게 있어서 실질적으로 더 나은 소득을 올리는 길은 매출을 날리는 길이다. 따라서 다른 진료과목들에도 관심을 기울여 진료영역을 넓히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전략, 실행력 수반돼야 성공


즉 대다수 개원의들에게 있어서는 차별화 전문화보다는 진료영역을 넓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 환자가 처음에는 정신과 진료 때문에 왔다가 고혈압 약도 원외처방전으로 발부받게 되면 그 환자는 고혈압약을 처방받기 위해서라도 더욱 규칙적으로 병원에 올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 엄마 혼자 감기 때문에 오지만 나중에는 그 주부환자의 시아버지, 남편,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모두 우리 병원으로 오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기초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진료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열심히 진료를 하다 보니까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특정진료를 원하는 환자들이 전국에서 오면서 자연스럽게 차별화가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를 하는 것은 넌센스다. 자기가 잘하는 것으로 차별화를 한답시고 뛰어드는 경우 자기가 잘하는 것이 아닌 못하는 초보분야로 차별화를 하는 셈이 된다. 결과가 좋을 수가 없다.


아무리 좋은 전략도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한다. 그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좋은 전략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강력한 실행력과 지속적인 학습조직이다. 아무리 좋은 전략이더라도 실행력이 강력한 이가 계속 밀어붙이면 효과가 있다. 특히나 의료기관의 경우 수술을 많이 한 사람이 잘하게 되어 있다. 환자를 많이 대해 본 이들이 예후가 안 좋은 환자를 제외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환자와 상황에 대처하는 위기관리 능력도 지니게 된다. 이러한 경험 곡선의 효과 때문에 강력히 꾸준히 집중하는 이들이 나중에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재테크에 복리의 법칙이 있듯이 고객 로열티에도 시간의 법칙이 적용된다. 한 자리에서 꾸준히 친절하게 환자를 대하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환자들이 계속 다른 환자를 소개시켜주면서 갑자기 환자가 늘게 된다.

 

고객 트렌드 기민하게 반응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조직의 학습능력이다. 대부분 전문병원들이 처음부터 미래를 예측하고 전략을 꾸민 것은 아니다. 현재 성공한 비급여 피부과 네트워크도 1990년대 처음 개원했을 때에는 여드름 치료, 점 제거 등 당시에 주로 오던 고객들을 주치료 대상으로 고려했다. 하지만 피부관리를 위해 레이저 시술을 받고자 하는 일들, 제모환자, 탈모증 환자 등이 한명씩 늘어날 때마다 관심을 기울였다. 더 많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고객이 어떤 이들인지 살펴보면서 지금의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성공한 네트워크들 중에는 대외적으로 치밀한 계획과 예측에 기초한 전략적 경영으로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남보다 빠르게 성장한 네트워크는 현제 병원을 찾는 고객들의 트렌드 변화를 남보다 기민하게 경영에 반영했을 따름이다. 즉 주위 환경의 변화를 학습해서 경영에 반영하는 능력이 탁월할 때 계속적으로 기존 고객을 만족시키면서 성장할 수 있다. 성장이 가능한 고객층을 놓치지 않고 경영에 반영을 할 수 있는 능력. 그 고객을 만족시킬 새로운 방법을 파악하는 능력이 학습능력인 것이다. 이 학습능려깅 강한 실행력에 의해 뒷받침된다면 현재의 시장이 변하지 않는 한 강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처음부터 좋은 전략과 나쁜 전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맞는 전략과 나에게 맞지 않는 전략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전략적 경영 자체가 맞는 사람이 있고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전략적 경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강력한 실행 능력과 끊임없는 학습 능력이다. 때로는 대응하기보다 기다리면서 시장에서 철수할 시기를 고려해야 할 경우도 있다. 획기적인 전략일수록 성공했을 때 그 보상도 크지만 실패했을 때 지불해야 하는 대가도 크다.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를 온전히 예측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겸허하게 성공의 상당 부분이 운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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