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시니어들은 어떤 취향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이며 이들을 대상으로 어떤 제품, 유통 및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가능할까? 최근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 조사 결과가 발표돼 눈길을 끈다. 분석에는 KDI 국제정책대학원의 정권 교수가 2009년 12월 서울, 대전, 광주, 부산 네 개 도시, 60세 이상 남녀 7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년층 라이프스타일 조사’ 자료가 활용됐다.
 
마케팅 사각지대, 시니어 시장
최근 발표된 국민연금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노인가구의 35.1% 는 소득수준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절대빈곤’ 상태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빈곤률 14.1%보다도 2.5배나 높은 수치다. 
유통업계는 시니어 세대의 소비가 경기가 좋건 나쁘건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증가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2007년 상반기 20~40대 고객들의 매출은 2006년 같은 기간 대비 최대 5%까지 떨어지는 등 주춤했지만 50대 이상은 4~22%의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특히 70대 이상 여성의 경우 22%나 매출이 증가하는 등 실버 세대가 소비 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했다. 
이상이 고령 소비층에 대해 우리가 자주 접하는 두 가지 유형이다. 노인 빈곤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되는 한편, 안정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생을 즐기는 뉴실버세대가 소비 시장의 큰 손으로 주목 받기도 한다. 상반된 내용처럼 이 시장을 보는 시각은 대체로 양 극단에 집중되어 왔다. 물론 양 쪽 모두 부인할 수 없는 국내 시니어 시장의 현실이다. 하지만 마치 이것이 전부인 것처럼 이 시장은 소비력이 약하다는 회의론이나 최고급 VIP 마케팅만이 존재할 뿐, 대중 소비자로서의 시니어들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미 우리나라 전체 인구 10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고 2026년이면 5명 중 1명이 될 전망이다. 상대적인 많고 적음은 있겠지만 어쨌든 누구나 소비는 한다. 이제는 일상적인 소비를 하는 생활인의 관점에서 이 거대 소비 집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日 시니어 대상 연구 활발
일본은 지난 2006년 선진 주요 국가 중 처음으로 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올해는 단카이 세대가 모두 환갑이 된다. 고령화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20년쯤 선배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시니어 시장을 타깃으로 한 연구 조사가 활발했다. 일본 최대 광고 회사 덴츠는 2001년부터 ‘덴츠 시니어프로젝트’를 시작해 시니어 소비자에 대한 시계열 조사 연구 및 사업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제2의 광고회사 하쿠호도도 2000년 ‘엘더비즈니스(Elder Business) 추계실’을 설립해 50세 이상 소비자들과 관련된 조사 업무를 일원화시켰다. 또 HOPE 서베이라는 정기 조사를 통해 시니어 계층의 소비를 이해하기 위한 광범위한 자료를 축적해 오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시니어 대상 소비자 조사, 특히 시계열적으로 비교할만한 연구가 아직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시니어 세대는 지금까지 고령자 대책을 위한 행정 조사의 대상이 된 적은 있지만 극히 일부의 상품을 제외하고 마케팅의 대상으로 여겨진 적은 드물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뛰어 들었다 재미를 보지 못했던 실패의 경험은 기업들을 이 시장에 대해 더욱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시니어 시장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이들 소비 시장에 대한 정보 부족의 한계가 먼저 극복되어야 한다. 
 
시니어의 라이프스타일
 
1. 내 인생은 아직도 발전 중
흔히 황혼기, 여명과 같은 말로 노년기의 삶을 표현하지만 상당수의 시니어들에게 인생은 아직도 발전의 과정에 있으며 지금보다 더 안정된 내일에 대한 기대가 있다. 설문에 응답한 대부분의 시니어들은 현재의 경제적 상황은 빠듯한 편이며(69.5%, ‘매우 그렇다’, ‘그렇다’, ‘약간 그렇다’의 비중. 이하 동일), 돈을 쓸 때도 매우 신중한 편이지만(90.0%) 미래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경우가 많았다.
연령이 낮을수록, 생활수준이 높을수록, 그리고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이러한 낙관론이 두드러졌다. 또 과반수 이상(52%)의 응답자가 ‘현재가 내 인생의 최고이고 앞으로도 계속 좋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동의했다. 이 역시 나이가 젊고 생활수준이 높을수록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2. 누가 뭐래도 마음은 청춘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칭찬이겠지만 시니어들에게는 칭찬이라기보다 너무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응답자의 71.2%는 스스로를 실제 나이보다 젊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흥미로운 것은 연령이 높아지면서 실제 나이와 인지 나이의 격차가 커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즉 60대에는 50대 정도로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10살 이상 젊게 느끼는 사람이 12.3%에 불과하지만, 80대가 되면 10살 이상 젊다고 느끼는 사람이 36%까지 늘어난다. 비록 육체적인 나이는 먹어가지만 마음은 인생의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몇 살로 느껴진다’ 외에 ‘몇 살로 보이는가’, ‘몇 살의 흥미 수준을 가지고 있는가’, ‘몇 살처럼 행동하는가’와 같은 유사한 질문에도 대부분이 스스로를 실제나이보다 젊게 생각하고 있었다. 
또 ‘노령’의 기준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서는 ‘몸이 쇠약해 질 때(78.8%)’에 가장 높은 긍정 응답률을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를 때(74.4%)’, ‘손자, 손녀가 생겼을 때(64.2%)’와 같이 타인과의 관계나 호칭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그 다음을 이었다. 이는 결국 아직 신체가 건강하고 스스로가 나이 들었다고 자각하지 않는 이상, 물리적인 나이 때문에 ‘고령자’로 규정될 수는 없다는 시니어들의 생각을 말해준다. 
 
3. 외모 가꾸기로 젊음을 붙잡는다
나이가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이 되려면 나이보다 젊은 외모와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니어들에게는 ‘운동과 다이어트로 건강을 유지하거나 향상시키는 것(81.1%)’, ‘가능한 한 젊게 보이는 것(75.5%)’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장년과 고령의 경계선 상에 있는 60대 초반(91.8%)과, 젊게 보이기 위한 경제적 투자가 가능한 고소득층(87.5%)일수록 더욱 그렇게 느낀다. 고소득층의 경우 최신 유행 스타일의 패션이나 젊어 보이게 하는 화장품에 관심이 높다. 특히 화장품과 같이 지출 가능한 선에서 하이엔드 소비가 가능한 ‘작은 사치형’ 제품은 고소득층뿐 아니라 중간 소득층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시니오 이들 소비자의 구매 여력에 따라 가격대만 적정 수준으로 맞춰질 수 있다면 젊음을 붙잡기 위한 투자가 지금보다 더 확대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4. 자녀 신세는 no, 도움은 yes
자녀로부터의 독립과 자녀를 지원하는 일에 대한 시니어들의 생각은 어떨까? 응답자의 81%가 ‘비록 내가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게 되더라도 자식들에게 의존하고 싶지 않다’고 응답해 일본 정도는 아니지만 비교적 높은 수준의 독립 의사를 보였다. 반면 ‘나는 내가 모은 재산을 노후를 위해 쓰기보다는 부족하더라도 일부를 자녀를 위해 기꺼이 쓰고 싶다’에는 74.4%나 되는 응답자가 동의했다.
얼핏 보면 시니어들은 무조건 베풀어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녀로부터의 독립 의지가 높으면서도 78.1%라는 상당히 많은 수의 응답자가 ‘자녀들은 부모의 노후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는 데 동의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의견은 전 소득 계층, 전 연령층에서 고르게 높이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상대적으로 젊은 시니어인 60~64세 그룹이 고소득층이 자녀가 부모의 노후를 돕는 것을 더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5. 나이 들어서는 돈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의 가치를 등한시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수의 시니어들이 ‘돈이면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77.9%)’는 생각에 동의했다. 시니어들에게도 소비는 매우 중요한 의미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성향은 특히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고소득층에게서 높이 나타났다. 스스로를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비중도 소득 수준별로 편차가 극명했는데, 이는 인생의 성공을 평가하는 잣대가 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흔히 나이가 들어서는 돈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돈을 움켜쥐고 있는 시니어들은 소비 의지가 약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응답자의 46.7%는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종종 유명 브랜드를 구입하며 65.5%는 쇼핑하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시니어들의 가치관과 욕구를 정리해 보면 이들은 숫자로서의 나이를 거부하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독립적인 삶을 지속하고 싶어 한다. 돈과 소비는 이들을 독립적이고 중요한 존재로 남아 있게 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이들을 계속해서 젊게 남아있을 수 있게 하는 것, 보호가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존경 받는 삶의 주체로 인식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한 고민에서 거대 시니어 시장을 만드는 기회의 싹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료제공: LG경제연구원>
박혜선 기자 keisen@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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