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공감’현상이 콘텐츠·행동양식·경제에까지 영향
‘머리로 보다 심장으로’소통하는 기술이 세상 이끄는 힘

 

박혜선 기자│ keisen@binews.co.kr

 

오늘날 사람들은 유독‘나와 같은 것’을 선호하고 있다. 정치인, 기업인들도 과거의 신비감, 권위주의를 벗고 대중과 공감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공감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온라인에서 이같은 공감 현상은 콘텐츠, 사람들의 행동 변화, 경제적 현상 등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의 본능이기도 한 공감을 새삼스럽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먼저 현대적 삶의 방식이 공감 형성의 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 감정적 소통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도 오늘날 공감이 중요해지는 원인이다.

 

공감은 과거와 같이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개인의 공감 표출 행위는 경제적, 사회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착한소비, 공정무역, 사회적 기업과 같은 개념들도 공감경제의 확대와 관련이 깊다. 공감의 컨셉은 많은 산업 영역에서 혁신과 변화의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다.

 

대중문화에서 신제품과 신기술 개발에 이르기까지 고객과의 공감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혁신, 공감형 인재의 발굴과 육성, 그리고 공감의 컨셉이 담긴 기술, 학문 등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투자로 미래 공감경제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나와 같은 것을 찾는 사람들


요즘처럼 정치인들이 눈물을 자주 보여준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여자 연예인들은 보통 사람들도 꺼리는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을 서슴없이 보여준다. TV 토크쇼에서는 성형고백이 줄을 잇는다. 대기업의 CEO가 블로그나 트위터를 통해 취미나 소소한 일상을 공개하기도 한다.

 

직원은 물론이고, 소비자들과 격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이제 별다른 뉴스감은 아니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나도 너와 같다’는 것으로 대중과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신비감, 권위, 냉철함보다는 인간적이고 때로는 나약한 모습에서 사람들은 공감의 포인트를 찾게 된다.


웹에서는 나와 비슷한 것,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온라인 문화를 주도한다. 웹 2.0의 대표적인 문화현상인 UCC(사용자제작콘텐츠)도 한 예다. 비전문가인 인터넷 사용자들이 손수 제작한 글, 이미지, 비디오 등은 다른 사용자들의 공감을 얻기 쉬우며, 이를 통해 빠르게 확산 및 재생산된다.

 

포털 사이트 뉴스에서는 기사 자체 보다 베플(베스트리플)을 먼저 확인하기도 한다. 뉴스 내용에 대해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추천한 의견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웹툰의 주제로는 유독‘공감 가는 상황’이 자주 다루어진다. 온라인 공간은 수많은‘나’들이 연결되어 있다. 이 때문에 나를 중심으로 나와 비슷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나 정보를 찾는 모습이 훨씬 두드러지는 것이다.

 

이미 일상 속에서 공감은 많은 부분에 스며들고 있다. 공감이라는 표현이 명시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다른 표현으로 가려져 있기도 하다. 중요한 점은 사회문화 영역뿐 아니라 기업 비즈니스에서도 공감의 컨셉이 활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왜 지금 공감에 주목하는가


공감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능 혹은 본연의 욕구라지만, 현대 산업사회에 이르러 오히려 사람과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또한 급변하는 정보기술로 인해 사람들간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변하면서, 공감하는 방법과 내용도 달라지는 상황이다.


더욱이 오늘날 한 사람 한 사람의 공감은 과거와 같이 내적인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도구를 통해 다른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30대 이상이라면 학창시절IQ(Intelligence Quotient)가 학업과 성공의 중요한 지표라는 얘기를 듣고 자랐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IQ보다는 EQ(Emotional Quotient)가, 최근에는 SQ(Social Quotient)를 길러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요즘 아이들이 EQ와 SQ, 즉 감성지수와 사회지수로 대별되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현상은 공감이 꼭 필요한 역량임에도 사람들간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 대가족, 집단 중심의 생활환경속에서 이 같은 능력들은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것이었다.


작은 마을에서 주민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으며, 굳이 내놓고 말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생각이나 느낌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반면 오늘날 우리는 하루에도 서로를 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사회적 활동을 공유한다. 도시의 일상은 바쁘고 다른 사람들에게 진지한 관심을 가질 여유는 없다. 공감할 수 있는 여건과 역량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는 것이다.


공감경제의 시대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공감은 정치, 문화에 가까운 개념으로 과학이나 기업 비즈니스와 거리가 있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미 변화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다. 문화연구가 마르코 비숍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를 전망한 <두려움 없는 미래 (Future comes from Crisis(2009)>라는 책에서 ‘이성의 논리학에서 심장의 논리학으로’라는 주제로 감정적 소통과 공감이 주가되는 미래의 사회와 학문연구의 미래를 예견한다. 나아가 성장과 효율 중심의 현대 경제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오프라인 산업에서도 공감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들어 부쩍 관심을 받고 있는 착한소비, 공정무역, 사회적 기업 등도 공감경제의 한 단면이다. 착한소비는 판매금액의 일부가 기부되는 소비
행위다. 공정무역은 비용절감 보다 생산자의 생존권, 인권에 주목한다.

 

사회적 기업은 비영리와 영리의 중간 영역에서 취약계층 등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현상은 효율과 이성에 기반한 경제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값싼 제품을 구매하는데 따르는 다양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는 새로운 경제행위인 것이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의 고통, 나의 소비로 고통 받을 사람과 지구환경에 대한 공감이 이러한 새로운 경제현상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래의 기업과 공감의 의미


공감 콘셉트는 우리 사회와 비즈니스의 여러 부분에서 새로운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많은 기업들이 벌이고 있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공감의 경제가 가져온 변화로 볼 수 있다. 20세기 초중반만 하더라도 사회는 기업들에게 사회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기업은 환경, 평등, 인권, 지역 사회와의 공존 등 비경제적 영역에까지 관심과 책임을 강조하며, 또 사회로부터 이러한 것들을 요구 받고 있다. 기업의 규모나 비즈니스 형태에 관계없이 기업 홈페이지에서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내용이 일종의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CSR과 같은 활동은 비본질적, 사업 외적 성격이 강하다. 공감경제 시대의 소비자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와 대응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성장과 효율, 이윤과 같은 물질적 가치를 넘어, 공감이라는 소프트하고 감성적인 영역의 가치를 주목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기업들은 먼저 기존의 고객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공감을 형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변화하는 공감 형성 방식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과거 공감은 좁은 지역에서의 지속적인 관계, 꾸준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연결성이 확대되는 오늘날의 공감은 장소의 제약에 관계없이 신속한 피드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앞서 살펴본 트위터가 좋은 예다. 팔로우 하는 대상에 공감하지 못할 경우 언제든 삭제가 가능하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또 다른 상대를 찾는 것이 매우 쉽다. 이는 기업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많은 기업들이 블로그나 트위터를 통해 고객과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지만, 기존 조직의 관성이나 의사결정 체계의 특성상 신속한 대응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은 오늘날 기업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고민이다.

 

반면 소비자들은 더욱 개인적 자기중심적이 되어가고 있으며 참을성도 줄어들고 있다. 또한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기업과의 직접 커뮤니케이션이 늘면서 기업이 나와 1:1의 감정적 소통이 가능한 대상이라고 여기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업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진정성과 투명성이 있는 피드백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고객들도 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기업들이 강조하고 있는 소통의 본질은 바로 고객과의 공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공감형 조직과 인재


조직 및 인재측면에서도 공감 역량은 중요하다. ‘ 미래는 여성의 시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래에는 경제, 사회 전반에서 여성의 역할이 늘어나고, 또한 중요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한 여러가지 이유 중에서, 여성들의 공감 능력도 중요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생리적으로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공감하는 능력이 강하다. 이것은 모성의 본능이다.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아기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공감 능력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업의 고객상담센터에는 유독 여성 상담사들이 많다. 여성들이 고객의 문제에 공감할 가능성이 남성들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미래의 기업 전반에서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다.

 

또한 조직의 다양성이 공감 역량과 직결될 것이다. 모든 것이 전문화되고 파편화되는 오늘날 세계에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경험이야 말로 공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휴대폰 소비자 커뮤니티를 이끌어본 중학생이 공학이나 마케팅을 전공한 대학졸업자보다 휴대폰에 대한 기술적 문제와 사용자들과의 감정적 소통, 공감대 형성에 더 능숙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과학과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는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옛날 인재는 똑똑한 사람, 이젠 남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래의 인재는 단순히 문제해결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고객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자료제공-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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