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영 약사(전북 군산시 아이약국)

아홉시 쯤 약국을 마감하고 집에 도착하면 아홉시 반 쯤 된다. 보통은 아내가 TV를 보다가 문 앞으로 와서 반갑게 맞아준다. 그런데 가끔 문을 열었을 때 거실의 불이 꺼져있을 때가 있다. 보통 이런 경우 아이들을 재우다가 아내가 함께 잠들어 버리는 경우이다.

힘들게 일하고 왔을 때 웃으면서 맞아주는 아내의 미소를 봐야 진정한 하루 일과의 마무리인데 간혹 이렇게 아내를 못 보게 되면 뭔가 아쉬운 기분에 방에 들어가서 기어이 잠자고 있는 사람에게 가벼운 입맞춤이라도 하고 다시 씻으러 나와야 뭔가 끝낸 기분이 든다.

어둑 깜깜한 거실을 지나서 아이들과 아내가 자고 있을 안방에 들어갔는데 내가 누워있을 자리에 아마도 칼을 든 기사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5살 첫째 아들의 그림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잠들기 전에 아빠한테 보여줄 때까지 안 잔다고 집사람에게 고집을 피우다가 적당히 내 자리에 두어서 내가 들어오면 볼 수 있게 할 테니 안심하고 자는 것으로 합의를 봤을 것이다.

뿔 달린 투구를 쓰고 큰 칼과 방패를 들고 있는 것 같은 거의 추상화에 가까운 그림의 뒷면에는 편지가 쓰여 있었다. “아빠 약사 왜 했어요? 아빠 사랑해요”

아침에 아내에게 물어보니 아빠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아내에게 적어주라고 했다고 한다. 무슨 말을 할 것이냐고 물어보니 온 집을 방방 뛰어다니면서 큰 소리로 외치며 적어주라고 했다고 한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들의 편지에 그대로 자리에 누워서 내일 아침에 아들에게 어떤 답을 해줘야 할까 생각을 했다.

왜 약사가 되었을까? 음….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멋진 약사 아빠가 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결론도 못 내리고 그날은 씻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왜 약사가 되었을까? 사실 나는 처음부터 약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수능 점수 맞춰서 안정적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고르고 싶어서 어쩌다보니 약대에 왔고 약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아들이 태어나서 아들과 처음 만난 순간, 절대로 아들과 아내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나 아주 작은 사소한 일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맹세를 했고 지금껏 잘 지켜오고 있다.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약사가 되었다는 틀에 박힌, 사실 거짓말에 더 가까운 이유를 들려주기도 싫었다.

정말 아주 기초적인 5살 아이의, 아마 본인은 나중에 기억도 하지 못할 질문에 내가 이렇게 고민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근무약사 시절에 겪은 아주 못되고 비상식적인 약사들을 떠올리며 적어도 아빠는 나쁜 약사가 아님을 알려주고도 싶었다.

왜 약사가 되었냐는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못 떠올리다 보니 생각의 나무의 가지가 무한대로 펼쳐 나가면서 주제와 상관없는 나쁜 약사와 심지어 라오스에서 봉사활동을 하시는 경상도의 어느 훌륭한 약사님의 사례까지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다 아침이 되었고 결국은 예상하긴 했지만 아침이 되자 아들은 자기가 뭐라고 쓴지도 모르고 그냥 그림 이야기만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아들이 또 물으리라.
“아빠, 약사가 왜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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