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재원 약사(인천시 중동구약사회 대외협력이사)

21세기는 인공지능 로봇이 요리를 하고 인간과의 바둑에서 승리를 하고, 나아가 수술까지 하는 일이 현실화 된 세상이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생활을 부척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기본조건인 의식주의 기본 혜택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의식주에서 식생활은 인간의 즐거움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느긋하게 식사를 할 시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업무에 쫓겨 허겁지겁 먹거나 식사를 건너뛰는 경우도 많다. 가정주부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바쁜 아침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타이밍을 놓쳐 입맛이 사라져 아이들이 남긴 밥을 억지로 먹거나,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많다.

특히 우리 약사들도 현실적으론 병원 점심시간에 맞춰 식사를 해야 하지만, 그 시간에 환자들이 일반약을 사러온다면 상담을 해야 하거나, 뒤늦게 접수된 처방전을 조제하다 입맛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입맛은 없지만 허기를 채우기 위해 남은 밥은 맛도 모른 채 그냥 입으로 넣게 되는 것이다. 특히 나홀로 약국인 경우, 약국을 비울 수 없어 간단한 식사로 컵라면에 물을 붓고, 정신없이 환자를 상대하다보면 퉁퉁 불어버린 라면을 마주한다. 그러다보면 환자들의 건강 상담은 해주면서도 막상 나의 체력은 바닥으로 향하는 느낌에 “내가 이러려고 약국을 하나?” 하며 허탈한 웃음을 짓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아이들 셋을 데리고 필리핀에 7개월 정도 거주하던 적이 있다. 필리핀은 인건비가 저렴하다보니 메이드를 두고 생활했었다. 필리핀 메이드들은 ‘아떼’라고 불리는데, 그들에게는 통조림 문화가 발달 되어 있었다. 왜 그런가 하니, 일이 많으니 급하게 통조림으로 한 끼를 때운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기에 통조림으로 한 끼를 때우면 영양 부족이나 불균형으로 아떼들이 날씬할 것 같았으나, 의외로 그들은 풍채가 굉장히 옹골졌다.

‘아떼’와 대화를 나눠보니, 필리핀의 날씬한 여성들은 거의 부유층이고 통통하거나 뚱뚱한 사람들은 거의 운동할 시간도 없고 먹고 살기 바쁜 본인처럼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들 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살짝 아이러니를 느꼈지만 지금 와서 곱씹어보면 그것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이나 필리핀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에 쫓길수록 식사를 급하게 하게 된다.

이럴 경우 우선적으로 Insulin 저항성이 발생하게 된다.

음식을 먹으면 포만감을 느낄 때 최소 15분~30분이 필요하다. 즉 급하게 먹을수록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이미 과식을 하게 된다. 또한 음식이 들어오면 Insulin이 분비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식을 하게 되면 이미 만들어져 있던 Insulin으로는 양이 부족하니 급하게 Insulin을 추가로 만들게 된다. Insulin은 과잉의 당분을 중성지방으로 바꾸며, 과잉당분과 중성지방은 다시 콜레스테롤 합성 증가로 이어져서 비만과 고지혈증을 유발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Insulin을 급하게 만드는 과정 자체가 췌장에 무리를 주게 되며, 또한 과량의 Insulin이 만들어지면 결국 Insulin 수용체의 민감도가 저하되는 Insulin 저항성이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결국 당뇨, 고지혈증 등 대사성 질환을 유발하며 그 외에도 많은 증상을 초래 한다(그림1).

이는 결국 필연적으로 Leptin 수용체 저항성을 초래하게 된다.

급하게 먹으면 인슐린이 필요한 시점에 적절량이 분비되지 못한다. 과잉의 인슐린은 공복감을 유발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편하게 먹을 시간이 없으니, 영양 보충을 위해 고열량을 급하게 섭취하게 되고 결과적으론 Leptin에 의해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더 많이 먹게 되고, 점차 살이 찌게 된다. 체중증가로 인해 지방세포가 증가하며 Leptin 분비량이 계속 늘어나고 그러다보면 Leptin 수용체의 감수성이 떨어지게 된다.

Leptin 수용체 감수성 저하는 지방 식이로 포만감을 못 느끼게 되며 따라서 더욱 지방을 섭취하고 살이 찐다. 이는 결국 전신 염증반응 등 비만에 의한 악영향을 발생시키게 된다.

비만은 단순히 외관상 문제만이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국민의 전반적인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이다.
결국 비만을 줄이기 위해서는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고 적당량의 운동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식사량을 자체적으로 조절하고, 식사문화를 좀 더 편안하고 느긋한 분위기로 개선하는 것이 가장 기본일 것이다.

비만을 단지 개인적인 의지의 문제가 아니며 서로의 시간 배려가 필요한 사회적 질병이다.  식사시간을 배려하는 문화가 확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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