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돌보기보다 질병 특효약만 찾는 환자들, 결국 더 많은 약 필요
‘약사’ 복용약의 한계를 알리고 환자 스스로 치료하도록 돕는 직업

평균연령이 80세를 넘어선지 오래되었고, 영아가 사망하는 경우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이제는 심심하지 않게 들려오는 말이 100세 시대이다. 100세 시대를 맞이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간단히 살펴보면, 문명의 발전으로 의∙식∙주의 개선과 더불어 현대의학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100세 시대와 더불어 우리는 정말 많은 질병을 앓고 있다. 암, 관상동맥질환, 뇌졸중, 폐질환, 신부전 등 생명에 심각한 질환부터 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등 만성 대사성 질환과 신경통, 관절염 등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러한 질병을 지인이나 자신이 겪으면서 ‘현대인은 과거보다 건강하지 못하다’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1) 삶과 죽음의 그 어디쯤

과거 인류는 맹수와 기아 그리고 세균성 질환이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맹수와 기아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문명의 발전은 맹수와 기아로부터 탈출을 가능하게 하였다. 하지만 세균성 질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으로서 신의 저주, 괴질로 불리었다. 유럽의 페스트는 유럽의 중세문명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알렸고, 문둥병(한센병)은 신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 여기며 사회에서 쫓겨나기도 하였다.

두창(천연두는 일본식 표기)은 어린아이의 사망률을 높이는 대표적인 질환이었으며, 건강한 성인이라도 결핵 같은 전염병에 감염이 되면 생을 마감하기도 하였다.

인체는 무균이고 외부에서 온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이론인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질병 세균설은 19세기 서구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

질병 세균설을 기반으로 병리학, 생리학, 면역학 등이 발전하였고, 세균을 죽이기 위한 항생제의 개발은 지속되었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에 의해서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분리, 정제되었고, 1941년 처음으로 임상 실험에 성공한 이후 현재까지 세균성질환을 치료하는데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항생제의 발견과 더불어 현대의학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마취제와 수술이다. 과거 수술은 엄청난 고통 때문에 수술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고, 수술을 한다고 하여도 쇼크를 일으켜 사망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현대적인 외과수술은 모턴(William Thomas Green Morton, 치과 의사)에 의해서 에테르(ether) 마취법을 이용해서 통증 없이 이를 뽑는데 성공하면서 발전하였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 vs 항생제와 수술

과거에 우리는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하여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는 하늘에 있다 생각하고, 사고나 예기치 못한 질병 등으로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해 상당히 무기력하였다. 이제는 사고나 예기치 못한 질병이 나타나면 응급실을 찾고, 인체에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면 약물치료나 수술을 먼저 고려하게 되었다.

의학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수술실과 응급실은 극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는 장소이다. 생사의 기로에 있는 사람들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당연히 죽음을 맞아야 하는 상황에서 생명을 살려내는 장소이고, 비록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에도 생명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이 존재하는 장소이다.

현대의학의 놀라운 능력은 마법의 탄환이라 불리는 항생제와 신의 영역에 도전한 수술에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수많은 약물의 개발 및 발전은 평균수명을 늘리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2) 질병은 인체에서 일어난다

파스퇴르와 동시대의 사람으로 베르나르(Claude Bernard)라는 생리학자가 있다. 파스퇴르의 질병 세균설과 반대로 베르나르는 내부 환경설을 주장한다. 베르나르의 이론에 의하면, 미생물이란 인체의 내부 환경이 균형을 이루는 한 질병을 일으키지 않으며 병을 진전시키지도 못한다. 즉, 어떤 세균이라도 병을 일으키기 이전에 인체 내부 환경이 병들어야만 몸에 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인체는 외부 변화에 끊임없이 움직이며, 인체의 내부(체액, 체온 등)는 아주 제한된 범위 내에서 변하고, 항상 일정하게 유지가 된다는 것이다. 베르나르는 인체의 내부 환경이 일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 ① 반드시 올바른 영양소 섭취와 체액을 유지할 것, ② 변환되지 않는 것은 배설할 것, ③ 과잉은 배설할 것을 주장하였다.

베르나르의 이론은 캐넌((Walter Bradford Cannon, 생리학 교수)에 의해서 항상성(homeostasis) 이론(1920년대 중반)으로 정립이 된다. 항상성이란 ‘인체에서 최적의 일정 상태를 유지하는 협조적인 생리 과정’으로 인체는 내분비계에서 호르몬을 분비해서 인체의 일정 상태를 도와 동적 평형을 유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파스퇴르의 질병 세균설과 베르나르의 내부 환경설 모두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중요한 이론이다. 파스퇴르는 세균에 의한 질병이 나타나는 원리를 발견함으로써 과거 인류의 역사를 바꿀 정도로 위력적인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현대의학에서 질병의 예측 및 조기 발견을 위해서 하는 많은 검사(혈액, 소변)는 베르나르의 내부 환경설에 기초를 두고 있다.

3) 환자는 없고 질병만 있다

환자들은 약국에서 가벼운 증상부터 중증 질환까지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의약품을 처방을 받아오기도 하고, 직접 구매하기도 한다. 그리고 환자들은 자신이 구입한 의약품에 대해서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상처에는 마데카*연고가 제일 좋죠.

난 머리 아플 때 타이레*이 제일 잘 들어.

케토*파스가 효과가 제일 좋아.

또, 전문의약품을 처방 받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감기약을 그냥 사먹으면 효과가 없고, 주사 맞고 처방받아서 먹어야 효과가 있어.

내가 먹는 혈압(당뇨, 심혈관 등)약은 대학병원에서 그 질병에 권위 있는 선생님이 처방한 것이라 다른 것보다 좋은 것이야.

난 안구건조증이 있어 히아레*(히알루론산제제)안약을 써야 돼.

무릎에 문제가 있었는데 주사 한방 맞고 몇 달 동안 아무 문제가 없어.

속이 불편해서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별 이상은 없는데 위염이 조금 있대, 그래서 약을 좀 먹으면 좋아진대.

건강기능식품을 구입해서 먹을 때도 오메가3, 글루코사민, 유산균제제 등을 유행에 따라 구입해서 먹고, 요즘은 TV에 누가 나와서 하는 얘기에 따라서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해서 먹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서 오메가3는 혈액순환에 좋고, 머리에도 좋아, 글루코사민은 관절에 좋고, 유산균제제는 변비약이나 아토피에 좋다면서 먹는다.

이렇게 의약품을 구매하면서 자기 스스로 자신이 선택한 약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환자들이 부여한 의미는 자신이 선택한 의약품이 가장 좋은 치료제이고 자신들이 선택한 방법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치료제와 치료법으로 질병을 치료하면 건강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도 같이 가지고 있다.

이런 치료제나 치료법에는 문제가 있다. 환자는 없고 질병만 있다는 것이다. 환자는 두통, 위장병, 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심장병, 관절염, 신경통, 안구건조증에 특효약을 찾지만 정작 자신의 몸 상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혈압만 없으면 좋겠다, 당뇨에 뭐가 특효약이야, 난 무릎만 안 아프면 살겠는데 등등 자신의 몸 상태는 돌보지 않고 이 질병만 낫게 하는 치료제만 찾는다.

현대의학은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세균성 질환으로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항생제를 가지고 있으며, 응급상황에서 수술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의 마지막 보루이다. 환자들은 현대의학의 놀라운 능력을 알고 있으며 경외한다. 그리고 현대인은 현대의학만 믿고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는다.

4) 치료제는 없다

언어란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단어가 있으면 우리는 그것이 있다고 믿기도 한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용, dragon이 대표적인 것이다. 어른이 돼서는 유리구두, 용, dragon이 단지 판타지(fantasy, 공상)라는 것을 안다.

Drug, medicine은 약(藥), 의약품(醫藥品)으로 번역이 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약들은 현대의학의 산물이 많다. 가장 많이 처방 받아서 오는 약이 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위장계, 진통제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혈압(다른 약들도 마찬가지이다)을 예로 들어 살펴보겠다.

고혈압은 교감신경계, 레닌-안지오텐신 기전(renin-angiotensin system) 등에 문제가 발생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혈압이 높은 경우 혈압을 낮추는 약물을 사용하는데 주로 사용하는 약물이 복지부 분류로 혈압강하제인 β-adrenergic receptor blockers(베타차단제), angiotensin converting enzyme inhibitors(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 angiotensin Ⅱ receptor blockers(안지오텐신Ⅱ수용체 길항제), calcium channel blockers(칼슘채널 차단제) 등을 사용한다.

혈압강하제를 영어로 찾아보면 antihypertensive drugs이다. 이 말을 직역하면 항고혈압약(항고혈압제)이다. 그런데 우리는 혈압강하제 또는 항고혈압제라는 말 대신에 다른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혈압약, 고혈압약, 그리고 고혈압치료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 말(혈압약, 고혈압약, 고혈압치료제)에는 상당히 위험한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고혈압을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고혈압이라는 것은 한번 걸리면 고칠 수 없고 평생 약을 먹어야 된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의미는 환자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단지 혈압이 높으면 약만 먹으면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혈압강하제, 항고혈압제에는 혈압약이나 고혈압치료제가 가지고 있는 뜻이 없고, 단지 혈압을 일시적으로 낮추는 뜻만 가지고 있다. 당연히 혈압약, 고혈압약, 고혈압치료제라는 약은 아직 없다. 단지 혈압강하제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혈압강하제라고 환자에게 정확히 알려주면, 현대의학이 가지고 있는 정확한 한계를 알려줌과 동시에 환자 스스로 환자의 몸을 치료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 엄청난 큰 차이를 가진다.

비록 당신이 지금 혈압이 높아서 혈압강하제를 사용하지만 다른 약이 추가되는 것을 막고 몸이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당신과 우리가 함께 노력하면 반드시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것이다.

약을 먹는 이유는 단순하다. 건강해지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기인한다. 약을 먹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더 많은 약이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환자가 자신의 몸을 돌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먹는 약의 한계를 알 때 가능해진다. 약의 한계를 알려주고 환자 자신의 몸을 돌볼 수 있게 도와주는 직업이 바로 약사가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약국신문, 2008/5/5, 질병의 원인-세균설과 다형태설
팜클래스 강의, 질환별 영양치료 전문과정, 곽재욱 약사
나무위키 검색, 수술
새로운 의학 새로운 삶, 창작과비평사, 전세일 외
100세 시대 도래의 경제․사회적 영향 및 대응방안 연구, 2011/12월,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저작권자 © 한국의약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