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의 점막에 만성적인 염증이나 궤양이 생기는 난치병 ‘궤양성대장염’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분변(糞便)을 이식해서 치료하는 임상연구가 일본 게이오대학과 쥰텐도대학 연구팀에 의해 추진 중이다.

대장에는 많은 세균이 서식하지만 장에 문제가 생긴 환자의 경우 그 숫자와 종류가 적고 장내세균의 밸런스가 무너져 발증을 촉진하는 요인의 하나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의 세균을 활용
대장에 서식하는 세균은 500~1000 종류. 그 숫자는 500조~1000조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등 대장 속의 분변은 세균의 보물창고이다. 그러나 사람이 섬유질이 적고 지방질이 많은 식사를 즐기고 운동 부족에 항균제 남용, 스트레스 등 때문에 세균총 구성의 밸런스가 무너지면 염증성 대장병이나 알레르기, 비만, 메타볼릭신드롬(내장비만증후군), 당뇨병 등 다양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건강한 사람의 장내세균을 환자의 장 속에 이식해주는 것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이 치료법은 이런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 ‘분변 이식’이나 ‘분변미생물이식’이라고 불리며 구미지역 의료계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척되어 왔다. 건강한 사람의 변을 대장에 이식함으로써 밸런스가 정상화되고 증상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단숨에 주목을 끌게 된 동기는 2013년도에 네덜란드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 때문이다. 원내 감염성 설사의 원인으로 알려진 ‘크리스트리듐 디프실 감염증(CDI) 가운데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재발환자를 대상으로 종래의 항균약 치료법과 분변이식법의 두 가지 치료 효과를 비교한 결과, 항균약으로 치료율이 20~30%인데 비해 분변이식은 80~90%의 놀라운 효과를 나타냈다.

이를 계기로 일본 내에서도 임상연구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2014년 3월 게이오대학병원은 궤양성대장염을 앓고 있는 40대 남성에게 첫 번째 이식치료를 실시했다. 임상연구에서는 우선 배우자나 부모, 자식 등 가까운 혈족의 변을 제공 받는다. 이를 생리식염수와 섞어서 식품섬유의 찌꺼기 등을 제거하기 위해 필터로 여과한다. 처리된 액체를 내시경을 이용해서 대장 내에 주입한다.

임상시험 계획으로는 궤양성대장염 말고도 과민성장증후군, 장관 베체트병, 재발성 CDI 등을 대상으로 총 45명의 환자에게 이식할 예정이다. 가나이 다케노리 소화기내과 교수는 “효과보다도 안전성 확인을 중요시하면서 2~3년간 신중히 진행시키겠다.”고 밝혔다.

한편 쥰테도대학 부속병원도 작년 7월에 첫 이식을 실시했다. 쥰텐도대학은 궤양성대장염만을 대상으로 총 30명에게 실시할 계획이다. 제공자의 조건이나 이식방법은 게이오대학과 거의 비슷하지만 환자가 분변이식요법의 단독 실시 방식과 3종류의 항균제를 2주일간 내복한 뒤에 이식받는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미 20명 가까이 이식을 실시했다.

책임자인 이시가와 소화기내과 교수는 “궤양성대장염은 호전됐다가 악화됐다가를 되풀이하기 때문에 오랜 관찰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많은 환자들의 증상 개선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두 대학팀 모두 이식에 따르는 감염을 막기 위해 제공자의 건강상태와 분변 속에 함유되는 유해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을 엄격하게 체크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분변이식의 치료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질환이 CDI 뿐이다. 그리고 타인의 변을 자기 몸속에 삽입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저항감이 따르게 마련. 이 치료법이 통상적인 의료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로 남아 있는 이유이다.

다만 기존 치료법으로는 고칠 수 없었던 난치병 환자를 구원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법이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두 대학팀의 향후 연구 성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장내 세균총 균형이 무너지는 것과 관련된 주요 질환
- 비만증
- 메타볼릭신드롬
- 당뇨병
- 염증성 장질환(궤양성대장염, 크론병, 장관베체트병 등)
- 비알콜성지방성 간염
- 알레르기질환(천식, 아토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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