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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반동은 반동아니다”

닉네임
반동
등록일
2020-11-19 15:53:22
조회수
273
“말 반동은 반동아니다” 새 유행어로 (북한 이모저모)


1970.01.01




○김정일 「통큰정치」 선전



○…북한 주민들사이에 「말반동은 반동이 아니다」라는 유행어가 확산되고 있다.


귀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유행어는 북한이 김정일의 「광폭정치」(통 큰 정치)를 선전하는 영화를 제작,상영한 이후 주민들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북한은 최근 『노동당은 복잡한 계층도 품에 안아들인다』는 김정일의 통치스타일을 선전하는 영화 「보증」을 제작,동평양극장과 중앙TV 등을 통해 방영한 바 있다.


이 영화는 한 학자가 상점 물품판매원과 실랑이속에서 『왜 상점에 치약·치솔이 없는가』라고 항의했다가 초급 당비서로부터 반동으로 몰리게 되고 이에 반발하여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 왜 반동인가』라며 중앙당에 제소하여 오히려 김일성까지 만나게 된다는 내용으로 「당은 어느 계층에도 관대하다」는 소위 김정일의 광폭정치·인덕정치를 선전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 상영 직후 주민들 사이에 「말반동은 반동이 아니다」라는 의식이 확산돼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은 반동이 아니다』 『이제 초급당비서에게도 따질 것은 따지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말 반동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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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특별한 말이 있죠. ‘말 반동’입니다. 수령을 신으로, ‘영원한 태양’으로 모셔야 하는 상황에서 생긴 특별한 체제의 산물입니다. 김정일시대 한 때는 좀 완화되고 느슨해지는 것 같았는데 요즘 말 반동들에 대한 숙청, 처벌이 또 가혹해 지고 있다면서요?


대표적으로 리영호 군 총참모장, 변인선 작전국장이 그 피해자들인데요, 2012년 7월부터 자취를 감춘 리영호 총참모장은 평양의 유명 점집을 찾아 ‘내가 어디까지 올라 갈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고, 이 사실이 김정은에게 보고돼 숙청됐다는군요. 변인선 국장에 대해선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도 역시 말실수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리용호는 당중앙 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당시 군 1인자 직인 총참모장으로 있으면서 어디까지 더 올라갈 수 있느냐에 관심을 가졌으니 아마도 자기 바로 위에 있는 유일한 사람인 김정은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고 오해도 받을 수 있었겠네요.


북한군 내에서 포병 전문가로 꼽히던 그는 2007년 평양방어사령관 재직당시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갓 졸업하고 포병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한 김정은의 직속상관으로 그와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죠.


결국 김정일 사망 후 그의 시신을 김정은과 함께 운구한 군 장군들인 리영호, 김영춘, 김정각, 우동측은 모두 핵심 자리에서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인민무력부장 직이 총참모장보다 먼저 호명되는 등 군 서열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죠.


2013년 8월부터 북한군 핵심 보직인 총참모부 작전국장을 맡은 변인선은 지난해 3월에 상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하기도 했죠.


2012년 한 인터뷰에서는 ‘우리 군단 장병들의 심장마다에는 이명박 역적패당에 대한 치솟는 증오와 복수의 일념이 펄펄 끓어 번지고 있다’며 ‘청와대이건 인천이건 다 불바다에 잠기고 역적패당은 단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었습니다.

북한기준으로는 이렇게 말을 잘하던 그가 김정은을 비난하는 말도 잘 한 모양이죠?



말 반동으로 치면 사실 김정은의 친부 김정일이 원조입니다. 공개된 60분짜리 그의 육성녹음을 들어보면 참 기가 찹니다.

‘우리 사회주의에 자체 모순…, 국가가 먹여 살려 주니까 인민은 의욕이 없다…, 남(南)은 대학생인데 우리는 유치원 수준…, 이대로 가다간 꼴지 중에서 1등 할 것.’ 모두 김정일이 자기가 납치한 영화감독 신상옥, 최은희 부부 앞에서 한 말입니다.

요즘 북한 사법당국은 범죄자 소탕을 위한 ‘100일 전투’를 하고 있다면서요. 아마도 이것도 맨 위쪽에서부터 실시해야 하지 않을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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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용소) 수감자 중 약80% 이상이 ‘말 반동’ ... 초상화(김일성·김정일 사진)를 손상했거나 하는 등 ......

..... 3명 중 1명은 보위부에서 심은 정보원이라 할 만큼 ...... ]



“인권이란 게 뭐냐” 개념조차 잘 모르는 北주민들


By DailyNK -
2016.03.29 11:32 오전



북한이 얼마 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북한은 이렇게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시스템을 거부하면서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인권상황을 맹비난하며 북한이야 말로 ‘세상에서 인권이 가장 존중되고 있는 복지사회’라 강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과연 인권이 가장 존중되는 사회일까? 결론적으로 보면 북한은 김정은과 상위 1%의 측근들에 의해 주민인권이 가혹하게 유린당하는 사회다.


일단 인권이란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북한 주민은 드물 것으로 평가된다. 김일성은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란 독재정권을 수립하면서 이를 ‘진정한 인민의 정부’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인권이란 개념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70여 년간 우상화 교육에만 치중해왔다.


또한 북한 당국은 공민(公民)이라면 누구나 다 선거권이 있다는 점을 강조, 선거에 빠짐없이 참가해 100% 찬성 투표하는 것이 인민 주권을 공고히 다지는 길이라고 선전해 왔다. 이처럼 선거 참여에 대한 자유를 무시하면서 불참시 ‘반동’으로 몰아갔고, 심할 경우 처형까지 했다.




특히 북한 주민들은 자기 선거구의 입후보자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선거당일 투표장에 나가 맹목적으로 찬성투표를 해야 한다. 모두 다 피선거권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우리의 국회에 해당) 대의원 후보자를 중앙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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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북한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묵살된 사회다. 북한헌법에는 당연히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 신앙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지만, 이는 한갓 체제 미화(美化)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북한주민들은 ‘말(語) 반동’ ‘예수쟁이’ 죄목에 따라 툭하면 체포·처형당하기 일쑤다.


현재 국가안전보위부의 ‘관리소’(정치범 수용소) 수감자 중 약80% 이상이 ‘말 반동’, 즉 김 씨 일가(一家)를 언급하는 등 현 체제에 불만을 표출했거나, 초상화(김일성·김정일 사진)를 손상했거나 하는 등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로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사람들이다. 특히 ‘정치범’으로 몰린 당사자의 가족들도 같이 수감되거나 고강도의 감시 속에서 생활한다는 점에서, 대다수의 주민이 ‘정치범’으로 취급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문제는 ‘정치범’ 중엔 당국을 대놓고 비판한 사람은 드물다는 데 있다. 친구들끼리 모인 술좌석에서 취중 혹은 무의식 중 내뱉은 말이 보위부 귀에 들어가면 영락없이 체포된다. 심지어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 상황을 놓고 ‘백성들은 다 굶어 죽으라는 거냐’, 이런 말 한 마디도 불평불만 유포죄로 감옥신세를 져야 한다. 그만큼 표현의 자유가 말살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3명 중 1명은 보위부에서 심은 정보원이라 할 만큼 북한은 정보정치로 유지되는 사회다. 이 뿐 만이 아니라 대학졸업생들도 자유의사로 일자리를 선택할 수 없으며 당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이처럼 북한주민들은 3대째 이어진 김 씨 일가의 세습 독재정치로 오직 ‘수령’의 명령·지시를 맹목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대한민국에 입국한 후에야 인권의 개념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이처럼 세상과 동떨어진 곳, 폐쇄된 사회에서 살다보니, 자신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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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량미 납부에 의견 부린 농근맹 위원장 ‘반동’으로 몰려 체포



By 정서영 기자 -
2020.11.11



최근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에서 군량미 납부에 의견을 부린 조선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 위원장과 농장원들이 ‘반동’으로 몰려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황해남도 소식통은 11일 데일리NK에 “얼마 전 연안군 읍 협동농장 농근맹 위원장 한 씨와 농장원들이 올해 농사 형편에서 군량미를 전부 바칠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가 이것이 사건화돼 보위부에 체포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연안군 읍 협동농장은 지난해에도 농사가 잘 안돼 고생했는데 올해에는 장마와 홍수피해까지 겹쳐 더 말할 것도 없이 작황이 한심해 최근 군량미를 내는 문제가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농장원들은 올해 식량을 조금이라도 더 타가려면 어떻게든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농근맹 위원장 한 씨를 찾아가 허심탄회하게 사정을 털어놓고 문제를 풀어달라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보다 농장원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잘 알고 있었던 농근맹 위원장 한 씨는 식량 부족으로 한 해를 어떻게 견딜지 몰라 낙망하는 농장원들에 대한 측은지심과 책임감에 직접 나섰는데, 이것이 도리어 화를 불러오고 말았다는 게 소식통의 이야기다.


실제 농근맹 위원장은 농장관리위원회를 찾아가 “자연재해로 올해 농장원들에게 줄 분배가 막혔다. 뙈기밭(소토지) 농사도 못 하게 해서 개인이 걷어 들인 것이 없다. 그런데 분배량이 작년보다 더 적으니 농장원들이 격분하지 않겠는가. 내년 보릿고개까지 어떻게 먹고살란 말인가. 군대는 국가가 먹여 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그는 농장에 군량미 상무로 식량을 걷으러 나와 있는 책임군인들을 찾아가 농장의 힘든 사정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리당(里黨)에도 농장원들의 어려운 형편을 전하는 등 앞장서서 발 벗고 뛰어다니기도 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그러던 중 지난달 하순께 해당 협동농장의 농장원 여러 명이 군량미 미납운동을 벌였다는 누명을 쓰고 보위부에 잡혀갔는데, 그로부터 며칠 뒤 농근맹 위원장까지 정식으로 체포돼 도 보위부 예심과에 끌려가는 일이 벌어졌다.


소식통은 “농근맹 위원장은 군량미 미납운동을 모략하고 농장원들을 선동한 자로 몰렸다”면서 “끌려간 다음 날 농근맹 위원장의 안해(아내)가 음식과 옷가지를 챙겨서 도 보위부에 면회를 갔는데 ‘말 반동 노친네의 아내가 왔다’며 문전 박대하는 통에 결국 면회도 못 하고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농근맹 위원장은 끌려간 첫날에 벌써 머리를 깎은 상태로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한다”며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거나 무기징역으로 교화소에 갈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하기도 했다.












공채 매입 거부한 탄광 실소유주 ‘말반동’으로 체포돼 처형

소식통 "체포·처형 하루에 이뤄져"…공채 강매 불만 억누르기 위한 '시범껨'인듯



By 하윤아 기자 -
2020.05.07 4:02 오후




북한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가중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17년 만에 공채를 발행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근 공채 매입을 거부한 평양의 한 탄광갱 실소유주가 공개체포 및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내부 소식통은 7일 데일리NK에 “강동지구탄광연합기업소에 이름만 걸어두고 있던 탄광갱의 실제 주인 리모 씨가 6일 기업소 노동자회관에서 공개 체포된 뒤 바로 실내처형된 사건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리 씨는 앞서 지난달 말께 강동지구탄광연합기업소 소속 판매과장의 부름을 받아 다른 탄광갱 소유주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공공연히 공채 매입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표출한 것이 문제가 돼 강도 높은 처벌을 받게 됐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기업소 판매과장은 탄광갱주들을 불러모아놓고 ‘딸라(달러)를 내고 기업소 국가공채 매매계획을 일률적으로 수행해야한다’는 포치를 전달했다. 그런데 이 같은 지시를 군말 없이 들은 다른 탄광갱주들과 달리 리 씨는 ‘공채를 안 사면 어떻게 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기업소 판매과장이 ‘그렇다면 당 정책을 관철 안 하는 반동이 아닌가’라고 답하자 리 씨는 즉각 ‘국가나 기업소는 내가 일해서 탄광을 먹여 살릴 때 보태준 것이, 해준 것이 뭐냐’며 반발했고, 이것이 곧 싸움으로 번지면서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는 것.


소식통은 “판매과장은 그날로 즉시 이 일을 기업소 당위원회에 보고했고, 당위원회에서는 안전위원회를 열어서 이 사람(리 씨)을 보위부에 꽂아 넣었다”고 말했다. 안전위원회는 도·시· 군 각급별로 당위원회 위원장과 인민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 보안기관 총책임자 등이 모여 긴급 사안을 논의·의결하는 회의체로 알려졌다.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상황이 잠잠해진 듯 했으나 지난 6일 국가보위성이 돌연 기업소 노동자회관에 전체 노동자들을 모이게 한 뒤 이른바 ‘말 반동’으로 리 씨를 공개 체포하고, ‘당 정책 비난죄’라는 죄목을 씌워 예심 등 재판 절차도 모두 생략한 채 그를 즉결 처형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체포와 처형이 이처럼 같은 날 속전속결로 이뤄진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이는 공채 판매라는 당국의 조치에 반발할 경우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내부의 불만을 억누르려는 일종의 ‘시범껨’(본보기)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번 처형으로 탄광갱주들 사이에 공포감이 조성됐다는 전언이다. 소식통은 “지금 탄광주들은 ‘우리가 관리소(정치범 수용소)에 가려고 외화를 벌었나’ ‘이래도 저래도 죽기는 마찬가지니 목숨만은 부지하자’ ‘죽은 뒤에 돈이 무슨 소용이겠나’라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기업소 공채 매매계획을 받아들이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편, 북한 당국은 이번 처형 이후 리 씨가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탄광 갱들을 모두 회수했으며, 그가 개인 돈으로 사들였던 대형 상용트럭들도 무상 몰수해 국가에 귀속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도 북한 당국은 처형이 이뤄진 당일 저녁 리 씨가 살던 가정집에 들이닥쳐 기본적인 살림살이들을 걷어가고, 그의 아내와 두 자녀를 관리소로 끌어갔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리 씨 아내의 친정에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이혼하겠느냐고 물어보는 것이 기본적인 절차인데 이번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며 당국의 조처에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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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기준 문제에 대한 대토론

(진리 기준 문제 대토론 개혁개방)



Fecha de publicación:2018-11-02 | Publicado por:中国网




진리 기준의 문제에 대한 토론은 40년 전 덩샤오핑 등 원로 혁명가의 지도와 지지 아래 전당과 전국 범위 내에서 전개된 대토론이었다. 주로 실사구시와 '두개의 판시' 사이의 논쟁으로 표현했다.




20세기 70년대 중후반 중국은 '두개의 무조건'(마오주석이 결정한 것이라면 우리는 모두 무조건 옹호하고 마오주석의 지시라면 우리는 무조건 시종 어김없이 따른다)의 과오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 대해 덩샤오핑은 여러차례 '두개의 무조건'은 마르크스주의에 부합하지 않아 우리는 완전하게 정확하게 마오쩌둥사상을 이애하여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1978년 5월 10일 중앙당교의 내부 간행물인 <이론동정>에 <실천만이>이라는 글이 발표되었다. 이 글은 사회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며 어떤 이론이라도 부단히 실천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근본적으로 '두개의 무조건'을 부정했다. 5월 11일 이 글은 <광명일보>에 공식 발표되었고 신화사는 다시 전국에 내보내 당 내외와 광범위한 간부 민중 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전국 범위내에서 '진리의 기준'에 대한 대토론이 전개되었다.




덩샤오핑 등 원로 지도자들은 이 토론에 대해 즉시 강력한 지지를 보내 토론의 과정을 민중들이 국가가 어디로 나가야 할지에 대해 사고하는 과정으로 유도했다. 이 대토론은 '2개 무조건'의 울타리를 타파하고 전국적인 마르크스주의 사상해방운동을 추진했다. 이것은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의 개최를 위해 중요한 사상적 준비를 해놓았으며 중국공산당이 마르크수주의의 사상노선, 정치노선, 조직노선을 확립하기 위해 사상적 기반을 닦아놓았다.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단호하게 '두개의 무조건'을 비판하였고 진리 기준 대토론에 대해 높이 평가했으며 마르크수주의의 정확한 노선을 재차 확립했고 개혁개장의 새로운 역사 시기를 열었다.
작성일:2020-11-19 15:53:22 1.233.1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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