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산업에서 성공한 기업인들이 쓴 책들이 요사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저수가와 치열한 경쟁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의료인들이 늘어나다 보니 그런 책들을 읽는 의료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병원 서비스에 대한 책도 늘어나고 있는데 프랜차이즈나 의료 컨설팅 회사를 선전하려고 관계자들이 쓰는 책도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른바 핵심 성공 요소가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다.

 

친절은 차별화 요소 안 돼


그들의 주장은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군을 파악해서 완벽한 서비스로 감동을 시킨다는 것이다. 의료서비스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친절교육 전문가들이 많아지면서 완벽한 고객만족으로 성공한 의료기관의 사례는 점점 확대 재생산된다. 하지만 의료기관이 성공하는 이유가 단지 친절해서는 아닌 것 같다. 내 주위에는 친절하지 않지만 잘되는 의료기관도 심심치 않게 있고 사실 내가 아는 대다수 의료기관의 의료인들은 불친절하지 않은 이들이지 과도하게 친절한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도한 친절에 도리어 부담을 느끼는 고객들도 많다.


친절경영의 밑에 깔려 있는 기본전략은 이른바 벤치마킹이다. 서울아산병원, 삼성병원, 고운세상피부과, 우리들병원, 예치과, 함소아한의원과 같이 이름이 알려진 의료기관을 가보면 대게 친절하다.


유명의료기관의 공통점이 친절이어서 ‘친절해야 성공하다’는 식의 논리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마치 성공한 이들은 모두 외제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기 때문에 성공하려면 외제 고급 승용차를 몰아야 한다는 논리만큼이나 비합리적이다.


실제로 대기업, 중소기업, 의료기관의 성공요인은 한마디 말로 요약될 수 없다. 남보다 다 친절해야 남보다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제 친절은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친절로 차별화를 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가는 지도 모른다.


한 예로 욕쟁이 할머니가 운영하는 불친절한 식당이 맛집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한다. 아무리 친절해도 값이 너무 비싸면 가지 않는다. 유명하면 불친절도 하나의 서비스로 생각하면서 고객은 스스로를 합리화시킨다. 우리 마음 어딘가는 학대받고 싶은 욕망이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버드 경영대학의 마이클 포터는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경쟁론’에서 운영효율성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운영효율성은 유사한 활동들을 경쟁자보다 더 우수하게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보다 더 친절하게 해서 고객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운영효율성에 해당된다. 하지만 운영효율성의 문제는 결국은 누군가 따라잡는다는데 있다. 모두가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차별화된 성공의 요소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앞서 기술한 의료기관들이 지속적으로 우위를 보이는 성공의 요소는 무엇일까? 또는 기존의 기득권자들을 제치고 나갈 수 있는 전략은 어디서 싹튼 것일까?

 

서울아산병원의 포지셔닝 전략


1980년대까지만 해도 환자들이 병원에 오는 가장 주된 방법은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대학종합병원들은 버스 정거장과 가까운 교통의 요지에 밀집해 있었다. 서울아산병원이 풍납동에 처음 생겼을 때 많은 이들이 환자들이 오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올림픽도로 바로 옆에 위치한 서울아사나병원의 위치는 자가용을 가진 이들의 입장에서는 강북의 서울대병원이나 세브란스 병원보다 접근성이 뛰어났다. 주차여건도 뛰어났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송파구 올림픽아파트 등에서 거주하던 강남의 중산층들이 자가용을 몰고 서울아산병원에 와서 진료를 받았다. 중산층 이상의 고객들이 주된 환자들이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다 보니 자연적으로 다른 병원에 비해 고객만족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단일병원으로 1000병상 병원은 강남에는 서울아산병원이 유일했다. 고객들을 위한 공간이 많은 서울아산병원의 병원 설계는 고객만족도를 높였다. 수술을 비롯한 임상수기의 숫자가 다른 병원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학습곡선과 경험곡선이 올라가면서 수술 케이스가 적은 다른 대학병원들에 비해 성공률이 올라갔다. 간이식, 심장이식 수술 같은 프로젝트가 성공하고 MRI, 감마나이프와 같은 고가 의료기기에 대한 투자가 성공하면서 90년대 중반부터 서울아산병원이 최고의 병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강남이라는 입지조건과 고객을 위한 공간이 많은 하드웨어라는 점에 있어서 서울아산병원은 다른 병원들이 따라할 수 없는 독특한 전략적 포지셔닝을 가졌다.


현재 강남에 1000병상이 넘는 병원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 강남에 1000병상이 넘는 병원은 서울아산병원을 제외하면 삼성병원, 강남성모병원밖에 없다. 누가 따라하고 싶어도 대지 구입을 위한 액수도 천문학적이며 땅이 없다. 따라서 서울아산병원의 최고 경쟁력은 공간과 입지다. 이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냈다. 다수의 환자가 유입되면서 학습곡선, 경험곡선이 극대화되었다. 그러면서 ‘치료의 서울아산병원’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만들어졌다.


즉 서울의 중심이 강남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던 80년대 말 아직 주요 병원이 강북에 있을 대 강남에 최고급 병원을 만들었던 것 자체가 기존의 병원과는 다른 병원이었다. 대학병원은 불가능한 막대한 투자를 모기업인 현대그룹 차원에서 했다. 즉 친절에 의한 고객만족은 부수적인 요소였다.

 

‘오버슈팅’ 오류 빠지지 말아야


1990년대부터 미용전문 피부과가 많이 늘어났다. 과거에 피부과는 주로 여드름, 알레르기 등의 질환을 치료했다. 미용과 관련된 부분은 점을 제거하는 정도였다. 피부과에서 볼 때 1990년대 이전 미용을 위한 피부관리를 원하는 이들은 비소비집단이었다. 과거의 피부과 의사들은 미용을 위한 피부관리가 의사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사들이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던 부분에 진출한 의사들이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에 피부관리사나 미용사에게 가던 이들이 네트워크 피부과 의원으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피부과 의원들 사이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소비자가 원했던 것 이상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키려고 하는 오버슈팅이 발생했다. 경쟁자들보다 더 좋은 제품을 제공하여 더 높은 가격과 이윤을 얻기 위해 공급자들이 시장을 오버슈팅하는 경우가 있다. 공급자는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을 제공하거나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기꺼이 지불하려는 것 이상의 가격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즉 고객이 이용 가능한 성능범위를 벗어나면 안된다. 과도한 친절, 경영자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고객만족은 이를 벗어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환자’ 만족시켜라


흔히 서비스라고 하면 “환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한다”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 “환자를 위해서는 손해가 되는 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린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은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무리한 요구를 하고 무한정 시간을 잡아먹는 환자들을 꾹 참으면서 끌려간다. 이런 자세가 병원 서비스를 향상시킬까?


얼마 전에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은 투표가 있었다. 맛은 있지만 불친절한 음식점, 친절하기는 하지만 맛은 없는 음식점 중 어디를 선택하겠느냐는 것이다. 네티즌의 리플을 보면서 나는 친절도 서비스의 한 항목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맛, 친절, 깨끗한 모두 버릴 수 없는 중요한 서비스의 측면이다.


고객의 기대치를 능가하는 경험을 제공해 주는 것이 좋은 서비스다. 그런데 그런 좋은 서비스를 꾸준히 제공해야 한다. 어떨 때에는 고객의 기대치를 확 뛰어넘는 기가 막한 서비스를 제공했다가 어떤 때에는 형편없는 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된다. 고객이 원하는 기대치가 평균 5점이라면 꾸준히 평균 6점을 제공하면 항상 고객을 만족시키지만 때로는 2점 때로는 110점을 제공하면 결국 일부 고객만을 만족시킬 뿐이다. 일부 고객보다는 모든 고객이 어느 정도 괜찮다고 느끼는 것이 고객만족에서는 더 중요하다.
예를 들면 한 의원에 오는 환자들이 대부분 당뇨, 혈압, 감기 등의 질환으로 평균 5분정도 진료시간을 요하는데 검사를 해도 이상은 없는데 온몸이 쑤신다는 기이한 통증을 30분 내내 이야기하는 환자가 세 명 있다고 가정하자. 어떻게 해야 전체 고객만족도가 올라갈 수 있을까? 현재도 그냥 만족하는 듯한 대부분의 환자에게는 여태까지와 같이 5분 진료를 하고, 30분 내내 같은 소리를 하는 환자의 이야기를 한 시간 들어준다면 고객만족도가 올라갈까?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 평균 5분의 진료를 기대한 환자에게 한마디라도 더 이야기해야 대부분 환자의 고객만족도가 올라가게 된다.

 

수술 표준화로 효율 높여라


환자에게 같은 만족을 줄 수 있다면 평균 진료시간을 줄여야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할 수 있다. 하지만 평균을 줄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변동 폭을 줄이는 것이다. 많은 시간을 요하는 수술을 그 변동 폭도 더 크다. 평균 2시간이 걸리는 수술을 A의사는 1시간 반~2시간 반, B의사는 1시간~3시간에 한다고 가정하자. 오후에 다섯 시간 정도 수술방이 운영된다. A의사의 경우 스케줄을 두 개씩 잡아도 대개 문제가 없지만 B의사의 평균 수술시간만 믿고 스케줄을 짜면 며칠에 한 번 씩은 펑크가 나게 된다. 오늘 수술할 줄 알고 준비를 한 환자가 스케줄이 미루어져 하루 더 입원을 하면 전체 수술팀이 초과근무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초과근무수당 지출과 직원들의 만족도 떨어질 수 있다.


수술의 표준화는 단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대체적으로 긴 수술시간은 나쁜 예후와 연관이 된다. 예후가 나쁜 수술은 장기 입원으로 이어져서 병상 가동률을 떨어뜨리고 병원의 평판을 나쁘게 한다. 의료소송이 걸리게 되면 비용도 발생한다. 의료사고와 관련된 문제는 개원의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책임 문제로 병원과 의료진 간의 갈등이 발생하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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