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경영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재고를 쌓아둘 수 없다는 것이다. 고객이 갑자기 많이 오게 되면 기다리게 할 수 밖에 없다. 나름대로 수요와 공급을 맞추려고 하지만 그 노력도 한계가 있다. 극장의 조조할인, 고급 레스토랑들의 주중 점심 할인 티켓 등은 피크 타임에 고객이 몰리지 않게 하려는 시도들이다. 아울러 외식업체들은 언제 고객이 몰리는 지를 통계프로그램을 통해서 예상해 서빙하는 종업원을 피크 타임에는 많이 배치하고 아닐 때는 적게 배치하고자 노력한다.


의료기관의 경우도 환자가 몰리는 a시간에는 공간도 부족하고 인력도 부족하지만, 또 어떤 시간에는 환자가 없어서 대기실이 텅텅 빌 때도 있다. 피크 타임을 소화해 내기 위해서 직원, 공간, 시설을 늘리면 한가한 시간 때문에 적자가 나게 된다. 반면, 피크 타임에 최대한 환자들을 진료해내지 않으면 그 환자들은 다른 의료기관으로 발길을 돌리거나 아니면 치료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의료 서비스 경영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것이다. 이 것을 서비스 경영에서는 Supply-Demand Match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제 아무리 Supply-Demand Match를 위해 노력해도 한계가 있게 된다. 그 때 고객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러한 고객을 덜 지겹게 할 의무가 있다. David H. Maister 교수의 The Psychology of Waiting Line은 고객의 기다림을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쓰여진 가장 훌륭한 논문 중 하나다. 그가 소개하는 첫 번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제 1법칙


Satisfaction(고객만족)=Perception(고객경험)-Expectation(고객기대치)
고객이 기대한 것에서 고객이 실제로 느낀 것을 뺀 만큼이 만족도이다.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기대치를 어느 정도 낮추는 것도 역설적으로 만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제 2법칙


처음에 잘해라. 나중에 따라잡는 것은 더욱 힘들다. (It is hard to play catch-up ball)
첫인상이 잘못되면 그 다음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소용이 없다. 따라서 처음에 어떻게 하는 지가 제일 중요하다.
그럼 이 두 가지 법칙을 실제로 어떻게 적용하는 지에 대해서 몇 가지 원칙을 살펴보겠다.

 

1.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시간은 더 지겹다.


이제는 대기실에 다양한 책자를 갖다 놓고 TV를 틀어 놓은 것은 기본이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으면 더 지겹기 때문이다. 가급적 이러한 매체들은 치료와 관련되어 병원을 선전할 수 있으면 좋다. 예를 들어서 치과를 방문할 때 시술 전 겁을 내는 환자들이 많다. 두려움에 떠는 환자들에게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하나도 아프지 않다면서 만족스러움을 표현하는 화면을 보여준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 기다리는 환자를 달래준답시고 병원직원이 건강식품을 선전하거나 원치 않는 새로운 서비스를 소개하는 것은 오히려 더 환자를 짜증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환자의 궁금증에 대해서는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서 답해주면서 자연스럽게 환자들과 대화하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2. 일단 진행이 되면 덜 지겹다.


식당에서 오래 기다리게 될 때가 있다. 그런데 식당 밖에서 기다릴 때와 식당 안에 들어가서 기다릴 때는 그 느낌이 다르다. 식당 안에 들어섰더라도 웨이트리스가 물을 한잔 갖다 주고 메뉴를 주면 그제서야 '아, 이제 일이 진행이 되는 구나' 하고 안심하게 된다. 흔히 응급실에 갔을 때 triage에서 간호사가 묻고 그 다음에 인턴이 또 묻고 마지막에 레지던트가 또 물으면 환자들은 왜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게 만드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이렇게 질문을 할 때 마다 환자들은 뭔가 이제 진행이 되는 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만약에 응급실에 가서 triage에서 전문의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게 되었다면 그 환자는 더욱 더 크게 화를 냈을 지도 모른다. 따라서 기다리는 환자에게 뭔가 진행이 된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3. 불안하면 더 지겹다.


공항이나 터미널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 항상 남의 줄이 빨리 가는 것 같다. 길이 막히면 옆 차선이 항상 더 빨리 진행이 되는 것 같다. 내가 하필 느린 차선을 선택한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더 지겨운 법이다. 그래서 은행이나 대형병원 대기실에서는 번호표를 뽑게 한다. 진료가 밀려서 외래시간이 거의 마감이 되는 순간이 올 때, 간호사가 “저희 원장님은 아무리 늦더라도 진료시간 내에 일단 접수를 하신 분은 성심성의를 다해 진료합니다.” 라고 이야기하면 그것만으로도 많이 안심이 된다.

 

4. 무한정 기다리는 것은 더 지겹다.


응급환자 때문에 혹은 의사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환자가 기다릴 때 30분 혹은 1시간이라는 시간을 정해서 환자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환자는 다른 개인적인 일을 보고 다시 시간에 맞추어서 올 수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환자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정해지면 기다리는데 마음이 편하다. 목표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5분만 더 기다리면 됩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되요.” “거의 다 오셨어요.” 같은 상투적인 표현은 오히려 환자를 더 화나게 한다. 그리고 환자에게 이야기하는 시간은 꼭 지켜져야만 한다. 예를 들어서 친구와 약속을 하고서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갔다고 가정하자. 약속시간이 될 때까지는 지겨움이 크지 않다. 하지만 일단 약속시간을 넘겨서 기다리기 시작하면 약속시간 이전의 1분과 약속시간 이후의 1분은 다르다. 자기가 좋아서 먼저 일찍 와 놓고서 나는 한 시간이나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하고 엉뚱한 화마저 나게 된다.

 

5. 아무 이유 없이 기다리는 것은 더 지겹다.


늦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 사람들이 기다리게 되면 불안하기도 하지만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상대방 의사가 무례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따라서 예기치 않게 환자를 기다리게 되었을 때 왜 진료가 진행이 더디게 되는 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냥 “응급환자가 있어서요.” 하는 것 보다는 상대방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러저러한 사정의 환자 때문에 응급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하고 설명을 하고 의사가 그 응급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어떠한 잘못된 결과가 다른 환자에게 생길지를 진지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기다리는 환자는 의사가 힘들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상대방 환자에 대해서 동정도 느끼면서 기다리게 된다.

 

6. 부당하다고 느끼면 기다리는 것은 더 지겹다.


응급실 근무를 할 때 인턴들이 야간 근무가 끝나고 새벽에 쉬고 있으면 왜 쉬면서 환자를 봐주지 않느냐고 따지는 환자나 그 가족들이 꼭 있다. 저 사람은 근무시간이 이미 끝났다고 이야기해도 환자들은 이해해주지 않는다. 관공서에 갔는데 내가 처리해야 하는 민원창구에는 줄이 길고, 옆의 다른 민원창구 직원이 쉬고 있으면 화가 난다. 불공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기 위해서 온 의료진이 다 매달려 있어도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서 응급실에 온 환자가 자신이 먼저 순서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내 앞에서 줄이 딱 끊어지는 것처럼 화가 나는 상황도 없다. 그래서 대개 줄을 끊게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1번에서 25번 입장, 26번에서 50번 입장, 이런 식으로 숫자로 끊어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누구나 납득하는 불공정함도 있다. 슈퍼마켓에 있는 5가지 아이템 이하인 고객에 한해서 따로 계산을 하는 코너는 누구나 인정한다. 피부관리만 받거나 물리치료만 받는 환자가 먼저 진행이 되는 것도 대개는 이해한다.


하지만 VIP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 먼저 진료 받는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일반 환자들이 납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 피부과, 성형외과, 치과와 같은 비급여 진료 과목의 경우 남들보다 훨씬 자주 고가의 치료를 받는 단골 고객은 특별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 이루어지면 큰 불만을 야기한다. 따라서 비행기가 1등석, 2등석이 나뉘어 지듯이 VIP를 위한 별도의 대기실을 만드는 것도 방법일 수도 있다. 백화점에 가면 발레파킹 고객을 위한 별도의 대기실이 있고, 별도의 주차장을 운영하듯이 말이다.

 

7. 값진 서비스를 위해서라면 기다릴 수 있다.


환자를 길게 면담하면 오래 기다린 환자들의 불만이 크다. 하지만 환자들이 오래 기다리는 만큼 자신의 순서가 되었을 때 자신도 증상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고 설명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다리는 것에 상관하지 않게 된다. 짧게 진료하는 환자도 별 불만은 없다. 언젠가 자신도 상태가 나빠지면 오래 면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0분 대기 1분 진료는 환자를 화나게 하지만, 10분 대기 30분 진료는 환자를 화나게 하지 않는다. 기다리는 시간은 꼭 같은 10분이지만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시간은 다른 법이다. 바꾸어 말하면 오래 기다린 환자에게는 더욱 더 많은 신경을 써 주어야만 한다.

 

8. 나홀로 기다림은 함께 기다리는 것보다 더 지겹다.


월드컵 길거리 응원을 할 때 사람들은 본 경기가 시작하기 몇 시간 전부터 시청 앞 광장에 모여서 응원을 한다. 아무도 경기가 언제 시작하는지 지겨워하지 않는다. 혼자서 경기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응원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기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드컵 경기를 집에서 혼자 보는 사람은 언제 텔레비전에서 경기를 시작하나 지겹게 기다린다. 특히 수없이 많이 광고가 진행될 때 지겨움은 극대화된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기실에서 힐끔힐끔 상대방을 쳐다보면서 기다리는 것은 지겹기 짝이 없다. 그런 점에 있어서 시골 외래는 참 다르다. 어차피 동네 사람들이고 동질감이 있기 때문에 서로 친구나 친척이 아니더라도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고 물어보면서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동질감을 sense of group community라고 표현한다. Shouldice Hospital이라는 캐나다 병원의 경우를 보면, 수술을 위해서 첫날 입원해서 기다리는 환자들을 수술을 끝내고 퇴원 예정인 환자들이 만나러 가서 수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면서 이야기하도록 한다. 함께 기다리면 덜 지겨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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