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서울지역의 업무용(오피스) 빌딩 임대료가 지난 2001년 조사가 시작된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서울지역 업무용 빌딩의 공실률은 3.1%에 불과하다. 그리고 2008년 6월 말 기준 서울지역 업무용 빌딩의 임대료는 m2 당 1만 8600원, 즉 3.3m2 당 약 6만 1400원이다. 30평을 임대한다면 약 184만 1400원이다. 강남지역은 더욱 높다. 30평을 임대한다면 약 201만 9600원이다. 가시성과 접근성이 좋은 장소의 경우 30평을 기준으로 할 때 그 임대료는 수백만원에 달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현상은 가장 임대료가 비싸다는 강남역 삼성타운 주변과 테헤란로 일대의 업무용 빌딩 중 가시성과 접근성이 좋은 곳에는 여지없이 피부과, 성형외과, 라식 전문 안과 같은 비급여 의료시설이 입주해 있다는 것이다.

 

접근성-가시성 고려해 입지 선택


불황에도 불구하고 임대료는 올라가고 공실률은 낮아지는 기이한 현상에 비급여 의료기관들도 일조하고 있다. 이렇게 비싼 임대료를 내고 이익이 남는다면 다행이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경기침체와 경쟁의 격화로 비급여 진료과목도 진료비를 지난 2-3년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인건비와 물가 상승을 고려할 때 대부분 비급여 의료기관은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임대료를 물고 강남의 오피스 빌딩을 고집하는 이유는 상권과 입지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고소득자가 많이 몰려 살고 유동인구가 많으면 그것만으로 좋은 입지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져본다. 그래서 좋은 입지를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한다.


일단 접근성과 가시성이라는 용어를 이해해야 한다. 접근성은 환자들이 얼마나 접근하기 용이한 가를 뜻한다.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와야 하는 환자의 입장에서 지하철 역에서 2분 거리인 곳은 지하철 역에서 10분 거리인 곳에 비해서 접근성이 뛰어나다. 하지만 지하철 역에서 10분 거리인 곳에 마을버스 정거장이 있다면 지하철 역에서 10분 거리인 곳도 그 접근성은 역시 뛰어나다.

가시성은 환자가 얼마나 쉽게 병원을 식별할 수 있나를 의미한다. 대로변에 위치한 병원은 이면도로에 위치한 병원보다 가시성이 뛰어나다. 똑같은 80평이라도 40평이 도로에 접해 있는 병원은 20평이 도로에 접해있는 병원보다 가시성이 뛰어나다. 흔히들 접근성과 가시성이 전부 뛰어나면 A급지, 접근성과 가시성 중 하나는 양호하지만 다른 한가지가 문제가 있으면 B급지, 접근성과 가시성 모두가 문제가 있으면 C급지라고 한다.

 

급여-비급여 따라 판단기준 달라


비급여 의료기관이 강남의 대로변 오피스 빌딩을 선호하는 이유는 유동인구가 많은 특급 상권의 A급지에 입주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술위주의 서비스업의 경우 B급지 이상이면 충분하다. 유동인구가 많다고 꼭 좋은 상권은 아니라는 점도 고려한다면 강남 대로변 오피스에 천문학적인 임대료를 내고 입주하는 것이 꼭 최선은 아니다.


오히려 접근성과 가시성이 모두 뛰어난 입지가 필요한 것은 동네 환자를 많이 진료해야만 하는 보험과다. 보험과는 1차 상권의 비중이 매우 크다. 상권은 주택가에 위치하더라도 입지가 우수할수록 유리하다. 일반적인 내과진료, 소아과진료, 정형외과 진료는 우수한 B급지 혹은 재정적으로 임대료를 부담할 수 있다면 주택가 상권의 A급지가 좋다.


그런데 보험과의 경우 동네에 입소문이 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작은 상권의 C급지 상가에 나 홀로 개원을 하는 수도 있다. 어떤 경우는 10평 내외의 좁은 면적에 개원을 한다. 안 돼도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형태의 개원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설혹 어느 정도 유지된다고 해도 성장잠재력이 매우 작다.


반면에 비급여 진료과목의 경우는 상권만 잘 선택한다면 보통 B급지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다른 서비스 산업의 예를 보자. 전화로 예약을 하고 소문을 듣고 가게 되는 고급레스토랑의 경우 청담동 골목이나 서래마을의 C급 입지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즉 비급여 진료과목은 입지도 중요하지만 상권도 중요하다.


다시 한번 식당을 예로 들어보자. 어느 정도 주민들이 모이게 되면 먹자골목이 만들어진다. 먹자골목의 A급지는 임대료가 비싸다. 그러니까 계속적으로 주변 C급지로 먹자골목이 확장된다. 먹자골목보다 조금 더 고급스럽고 그 상권이 큰 경우 전문상권이라고 부른다. 서초동 법조타운은 변호사들이 모여 있는 대표적인 전문상권이다.

 

클리닉 빌딩 시너지 효과 의문


방배동 노동청 근처에는 노무사 사무실이 밀집되어 있다. 압구정동, 청담동, 신사동은 성형외과와 피부과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비급여 의료 벨트다. 이러한 곳은 전문 서비스 업체들이 몰려 있는 대규모 전문상권이다. 이러한 전문상권은 고객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이 있다. 하지만 이런 전문상권의 A급지에 병원을 개설할 때는 권리금, 보증금, 임대료가 큰 부담이 된다. 따라서 B급지나 C급지로 진입해 개원하게 된다. 그렇게 개원한 후 환자가 확보되고 임대료가 부담이 되면 그 때는 기존고객과 환자가 연계될 수 있는 다른 상권으로 이동하거나 아니면 상가를 매입하게 된다.

새로 형성된 주택가 상권의 신축 클리닉 빌딩에 입주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클리닉 빌딩은 거품이 많다. 클리닉 빌딩에 입주하는 경우 흔히들 여러 진료과목이 있기 때문에 환자들이 내과를 왔다가 피부과에도 들리고, 피부과에 들렸다가 안과에도 들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분이라면 내과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같은 건물에 있다는 이유로 단골 이비인후과 대신 그 빌딩에 있는 모르는 이비인후과 선생님에게 가겠는가? 그렇지 않다. 클리닉 빌딩의 시너지 효과가 실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외적인 경우는 이미 환자가 많은 근처의 의원이 옮겨 오는 경우다. 일일 내원 환자가 많은 내과의원이 클리닉 빌딩에 있으면 새로 개업하는 다른 과 의원이 덕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적다. 오히려 경영이 어려워지면 서로의 진료영역이 파괴되어 보완효과는커녕 경쟁효과에 따른 환자분산 효과가 커진다. 병원만 있는 클리닉 빌딩은 다른 상가에 비해서 고객을 유치하는 힘이 작다. 병원은 대부분 저녁 때가 되면 문을 닫고 간판도 꺼진다. 저녁 시간이 되면 죽은 건물이 된다.


병원만 있는 건물은 가시성이 떨어진다. 지하에는 슈퍼, 1층에는 화려하고 사람들을 끌 수 있는 화장품과 의료업종, 4층과 5층에는 학원이 있는 상가건물의 2층이나 3층을 생각해 보자. 다양한 사람들이 건물 내외에 왔다 갔다 하면서 그 건물에 내 진료과목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따라서 아직 형성되지도 않은 상권의 클리닉 빌딩에 입주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특히 분양을 받는 것은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남들 안하는 곳은 이유 있다


보험진료건 비보험 진료건 특정 상권에 최초로 진출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남들이 안 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특히 비급여 진료과의 경우 경쟁이 심한 곳을 피해서 아직은 해당 진료과가 적은 상권에 개원을 하는 분도 계시다. 하지만 그런 경우 낭패를 보는 수가 적지 않다. 상권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강한 상권과 약한 상권이 있으면 사람들은 강한 상권으로 가게 된다.


예를 들자면 어떤 성형외과 선생님이 압구정동의 C급 입지와 아직 성형외과가 없는 ●●상권의 A급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성형외과가 없는 ●●상권도 강남의 고급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다. 그럴 때 ●●상권에 입주했다가 처음 몇 년간 고전을 면치 못하는 분이 많다. 강남에 사는 성형수술을 하고자 하는 고객은 ●●상권 보다 강력한 압구정동 전문상권으로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압구정 B급지나 C급지에 개원을 해서 어느 정도 고객을 확보한 후 임대료가 너무 부담이 되면 이미 두 세 곳의 성형외과가 개원해서 잘 되고 있는 ■■상권으로 옮기면서 세 번째 성형외과가 되는 것이다.

이미 고객들은 접근성이 더 용이한 성형외과가 근처에 있다는 것도 알고 ■■상권 내의 성형외과나 압구정동의 성형외과나 수술결과에 있어서 비슷하게 만족스럽다는 것을 인지한 후다. 따라서 앞서 ●●상권에 최초로 진출했을 때와 같이 고전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흔히 대형 상권의 C급 입지와 중소 상권의 A급 입지를 비교하면서 고민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올바르지 않다. 거대 상권의 C급 입지가 어울리는 진료과목이 있고, 중소 상권의 A급 입지가 어울리는 진료과목이 있다. 의료 서비스의 난이도와 고객이 지불하는 가격에 따라서 각각에 어울리는 진료과목이 있다. 어디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 내게 맞는 입지를 선택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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