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 의료경영학과에서 내가 하는 대학원 강의의 피날레는 학생들의 케이스 발표다. 피부과, 치과, 소아 전문 한의원, 양한방 협진 의료기관, 항문수술전문 병원, 척추수술전문 병원, 대형종합병원, 스포츠 클리닉 등 다양한 성공사례들을 학생들이 발표하고 함께 토론한다. 반복된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성공병원의 8가지 습관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좋은 습관도 있고 나쁜 습관도 있다.

 

1. 경쟁 병원들과 다른 포지셔닝을 선택한다.


1980년대 후반 전국민의료보험이 시행되면서 저수가 때문에 많은 일반외과 의원들이 수술을 포기했다. 수술실은 폐쇄하고 대신 외래에서는 물리치료를 주로 하고, 병동은 교통사고 입원 환자를 받았다. 그 때 송도병원을 비롯한 일부 외과 의원들은 오히려 항문수술이라는 영역에 대해서 집중하면서 수술전문 병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들병원의 경우도 다른 신경외과 의원들이 교통사고 환자 입원으로 병동을 유지할 때, 척추수술이라는 영역을 선택해서 수술전문 병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른 신경외과의원들이 준종합병원으로 덩치를 키워나가는 전략을 선택할 때, 우리들 병원은 척추수술 전문병원이라는 방향성을 잃지 않고 추구했다. 


송도병원이 다른 일반외과 의원들과는 다르게 항문수술 전문병원을, 우리들병원이 다른 신경외과 의원들과는 척추수술 전문병원울 선택한 것이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니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여겨지지만 당시의 시점에는 결정하기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성공을 원한다면 남과 다른 포지셔닝을 취해야 한다. 남들이 고도 근시 교정에 대해서만 신경을 쓸 때 원시 교정에 대해서 신경을 써야 하고, 남들이 노인병원에만 신경을 쓸 때 응급실과 중환자실이 있는 종합병원에 신경을 써야 한다. 수가가 낮고 이익이 안 남는다고 모두가 외면하는 영역이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다시 귀해지게 되어 재평가 받게 된다.
 
2. 경시되는 영역에 진출한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에 개원가들은 대학병원을 비롯한 종합병원이 계속 세력을 확장하는 것 때문에 큰 위기감을 느꼈다. 수도권 도시에 대학종합병원이 하나 생긴 후 개원의 수가 몇 개 줄었다는 소문이 괴담처럼 퍼지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에 대학병원을 비롯한 종합병원과 경쟁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것처럼 여겨졌다. 반면에 전문병원은 대학병원이 경시하는 진료분야에 집중해서 성과를 얻었다.


척추수술은 정형외과에서도 신경외과에서도 주된 치료 영역이 아니다. 정형외과는 고관절, 무릎관절의 인공관절 수술과 같은 영역이 주된 관심사다. 신경외과는 뇌수술이 주된 관심사다. 대학병원에서 척추수술은 주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따라서 전문병원들이 대학병원과 경쟁하기가 용이했다. 항문수술도 마찬가지다.


일반외과에서 위 수술, 간담도 수술, 대장 수술은 관심 분야였다. 하지만 치질 수술은 대학병원의 입장에서 관심의 영역이 아니었다. 대학병원, 종합병원이 모든 수술을 장악할 때 상대적으로 경시되는 영역이었던 척추수술, 항문수술 분야에서 전문병원이 생겨날 수 있었다.


피부과 네트워크의 성공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비급여 피부과가 병원에 큰 수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대학병원들도 많은 투자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 피부과란 콘설트를 주로 하는 과였을 뿐 주목 받는 영역이 아니었다. 강력한 경쟁자들이 신경 쓰지 않는 시장을 공략하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

 

3. ‘시간’을 줄여 고객만족을 추구한다.


병원 운영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투자비 비중이 크다. 임대인 경우는 병원의 공간이 커질수록 임대료가 많이 들 것이고, 자신의 건물이라면 그 만큼 건축비와 관련된 금융비용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고가의 의료장비를 리스하는 경우 그 금융비용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입원 병동이 있는 경우는 병실 회전률을 최대화해야 하고, 외래 위주인 경우는 짧은 시술 시간에 높은 이익을 올려야만 한다.


우리들병원의 내시경을 이용한 척추수술 법은 비급여라는 이점 뿐 아니라 병실 회전률을 올린다는 점에 있어서도 장점이 있다. 항문치질 수술도 병실 회전률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항문치질 수술의 경우 시술 하나 하나를 보면 수가가 낮아서 이익이 많이 남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지만, 투자라는 관점에 있어서는 병실 회전률이 높기 때문에 큰 이득이다.   


짧은 수술시간은 짧은 예약 대기로 이어진다. 예약 후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어떤 환자가 경쟁 병원으로 가게 된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예약 후 사흘 만에 수술을 받을 수 있다면 그 환자는 경쟁병원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환자가 많고 적음에 따라서 건물을 늘렸다 줄였다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짧은 수술시간, 짧은 입원기간은 효율적인 경영으로 이어지는 필수 조건이다.


평균 수술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아무래도 각각의 수술 시간도 들쭉날쭉 된다. 만약에 평균 수술시간이 30분이면 그 평균편차가 5분 내외일 수 있겠지만, 두 시간이 걸리는 수술이면 평균편차는 30분 내외로 늘어 날 수도 있다. 대기 시간이 불규칙해지면서 고객의 만족도는 떨어진다. 수술이든 외래든 회전률을 올리는 것은 경영에 있어서도 중요하고, 고객 만족도라는 관점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4. 제한된 영역에 집중한다.


수술은 반복해서 자꾸 하는 이가 잘하게 되어 있다. 동일한 수술을 여러 번 시행한 의사가 의료사고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은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서 증명이 되었다. 일단은 수술자체가 익숙해서 실수가 덜 일어나는 것도 있고, 수술 적응증을 보다 명확하게 하는 부분도 있다. 수술 도중에 예기치 않은 사태가 닥쳐도 잘 대처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어려운 수술도 쉽게 행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의사의 경험곡선과 학습곡선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수술팀, 치료팀의 학습곡선과 경험곡선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거즈, 모스키토 같은 수술도구 카운트가 잘못되어서 제거하지 않고 봉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환자가 바뀌어서 수술하는 사건도 생긴다. 수술팀의 학습곡선과 관련된 문제다.


우리들병원이나 송도병원 같은 전문병원의 경우 지금은 네트워크를 구성해 있지만, 처음 수년간은 상당기간 단일병원을 유지하면서 척추면 척추, 항문질환이면 항문질환을 반복적으로 수술하면서 학습곡선과 경험곡선을 높게 유지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수술을 하면서 높은 양질의 진료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노하우를 가지고 새로운 분원을 개설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5. Quality를 나타낼 수 있는 기술에 집중한다.


영동세브란스와 강남성모병원은 강남의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선발주자였다. 서울아산병원은 후발주자였다. 하지만 선두주자들을 빠른 시간 안에 추월하는 것이 가능했다. 소비자 위주의 병원 건물을 비롯한 양질의 인프라, 올림픽 도로 바로 옆에 위치한 접근성도 주된 성공요인이었지만, 소비자에게 서울아산병원이 서울대에 버금가는 우수한 진료능력을 지녔다고 확신을 준 것이 가장 큰 성공전략 중 하나다. 그러면 서울아산병원은 어떻게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진료의 질이라는 점에서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었을까?


서울아산병원은 MRI, 감마나이프와 같은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최신의료기기를 그 누구보다 빨리 갖추고, 심장이식, 간이식, 췌장이식과 같은 수술을 남보다 앞서서 시행했다. 이러한 최신 의료기기 도입과 수술 시행이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면서, 의료소비자는 서울아산병원의 진료의 질이 강북의 서울대와 연세대에 못지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영동세브란스와 강남성모병원 같은 기존의 강남의 경쟁자들을 제칠 수 있었다.


우리들병원은 계속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한다. 효과에 대해서 논란이 있지만 계속해서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고객들에게 의학적으로 발전하는 병원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송도병원은 대학병원이 아닌데 암수술로 그 치료영역을 넓혔다. 암도 수술하는 항문질환 전문 병원은 그 진료의 질이라는 점에 있어서 다른 일반외과 의원들과 차별화를 가진다.


고운세상피부과도 손이 많이 가고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서 타  피부과에서 꺼려했던 모발이식, 자가지방이식 등의 시술을 행했다. “원장님이 오늘은 수술 하시는 날이어서 외래는 안 보십니다” 라는 설명은, 소비자들에게 이 피부과는 수술도 하는구나 하는 메시지를 주면서 차별화를 시키는 계기를 주었다.
고객에게 계속적으로 앞선 의료기술을 시도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호 ‘성공하는 병원의 8가지 습관(下)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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