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경영 환경 아래서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양손잡이 조직을 통해 고객의 내면 속에 존재하는 잠재 니즈를 파악하여 혁신적인 신제품과 신사업으로 연결하는 고객창조 R&D를 함께 실행해야 한다.
 
고객중심 R&D의 중요성


R&D의 궁극적인 목적은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고객과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효과적으로 개발·출시하여 이들에게 필요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R&D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 시장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여 모든 활동의 지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시장 및 기술의 변화속도가 매우 빨라 R&D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투자규모가 대형화되는 상황에서는 고객 중심 R&D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각 기업들의 고객 중심 R&D 진행 실태를 조사해보면,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호에 비해 실행수준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겉으로는 고객 중심 R&D를 부르짖지만 궁극적인 목표를 매출 확대에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기보다는 경쟁사를 따라하거나 조직 내부의 강점에 고객의 니즈를 끼워 맞추는 경향이 있다.   


만약 고객의 니즈와 상관없이 R&D를 진행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살펴보자. GE의 설립자인 에디슨은 1868년 자신이 개발한 '전자식 투표용지 카운트기'가 성능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제품의 주고객은 정치인들로, 신속한 개표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개표를 고의로 지연시킴으로써 의사진행을 방해할 필요가 있던 그들의 니즈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에디슨은 이 사건을 통해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난 제품이라 할지라도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 아니면 개발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였으며, 이 사건 이후 고객 중심의 R&D 철학은 GE가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는 기초가 되었다. 
 
고객중심 R&D의 유형과 특징

고객 중심 R&D의 유형은 고객의 표출된 니즈를 기반으로 신제품개발 활동을 전개하는 고객대응 R&D와, 고객의 내면 속에 감추어진 잠재 니즈를 찾아서 혁신적인 신제품과 신사업으로 연결하는 고객창조 R&D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 고객대응 R&D  


고객대응 R&D에서는 고객이 표현한 니즈를 충실하게 이해하고 반영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삼는다. 고객으로부터 직접 들은 명시적인 요구 사항을 신제품 개발시 적극 반영하기 때문에 신제품개발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개량·개선 신제품개발은 고객대응 R&D를 통해 이루어진다. 즉, 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제품의 품질을 높이거나 가격을 낮추는 등 기술 및 시장을 부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경우가 그것이다. 개량·개선 신제품은 대부분 1년 안에 단기성과를 가져오는 것이 많으며, 아이디어 생성에서 상업화까지 연속적이고 정형화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고객대응 R&D는 기술의 변화가 크지 않은 안정적 환경일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환경이 안정적일수록 고객들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유추하여 미래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해 비교적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대응 R&D를 수행하는 기업의 성패는 목표고객이 요구하는 사항을 신제품개발에 얼마나 충실히 효율적으로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실제로 이 전략은 조직 내에 보유하고 있는 기술역량이나 마케팅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실행이 용이하고 조직구성원들로부터 환영받는 전략이다. 


그러나 고객대응 R&D에는 큰 약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고객대응 R&D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게 되면 기존에 없는 혁신적인 신제품개발을 추진하기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기존 고객의 표출된 니즈에 집착하게 되면 고객의 잠재 니즈를 알아내기 어렵게 되고, 결국에는 새로운 고객이나 신시장 선점 기회를 놓치는 우(愚)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고객창조 R&D


고객대응 R&D의 추구로 인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기업이 지속적으로 경쟁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객창조 R&D를 통해 새로운 시장 및 고객층을 만들 수 있는 혁신적인 신제품개발이나 신사업 창출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고객만족 수준을 넘어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혁신적인 신제품은 오랜 기간(대부분 1년 이상)의 R&D 활동을 통해 수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술, 시장, 자원, 조직 측면에서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며 아이디어 발의에서 상업화에 이르는 과정이 불연속적이고 가변적이다. 


고객창조 R&D를 전개하는 기업은 고객대응 R&D를 전개하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러나 명시적인 고객니즈를 파악하는 차원을 넘어 고객의 내면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잠재 니즈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점은 고객대응 R&D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소니의 워크맨, 애플의 아이폰 및 아이팟 등은 고객의 잠재 니즈를 간파하여 혁신적인 신제품으로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소니(Sony)의 CEO였던 모리타 아키오는 '고객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기보다는 기업 스스로 신제품을 만들어 고객을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고객창조 R&D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한 것으로, 단순히 고객니즈 조사결과를 맹신하거나 현재의 고객니즈 충족에만 만족하지 말고 고객에 대한 애정과 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신시장이나 신제품을 창조·설득하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고객 창조 R&D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하는 말보다는 행동을 주시하여 고객의 내면에 있는 잠재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고객의 잠재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FGI(Focus Group Interview)나 설문조사와 같은 구체적인 조사방법론을 적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있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 직접 행동을 관찰하고 살펴보는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개발자와 마케터의 직관력과 통찰력이 결합할 때, 고객의 필요와 숨겨진 니즈를 제대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고객대응-고객창조 R&D 함께 실행해야


최근의 경영환경은 불확실성이 매우 높고 기술변화도 빠르기 때문에 고객대응 R&D를 통한 개량·개선 위주의 신제품개발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 언제든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 전통의 강자기업들을 위협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고객창조 R&D를 통해 혁신적인 신제품을 개발·출시하여 고객을 감동시키고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기 위해서는 고객대응 R&D와 고객창조 R&D가 함께 실행되어야 한다. 이 2가지 전략을 야구게임에 비유하면 고객대응 R&D는 안타, 고객창조 R&D는 홈런으로 비유할 수 있다. 최강의 야구팀을 보면 대개 안타와 홈런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 만약 안타 위주로 점수를 이끌어가는 팀이 있다면 9회말 상대팀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할 경우 역전을 당할 수도 있다. 따라서 안타와 홈런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연전연승하는 최강의 야구팀이 될 수 있듯이,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발전을 위해서는 고객대응 R&D와 고객창조 R&D가 병행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양손잡이 조직을 통한 실행


그렇다면 기업이 고객대응 R&D와 고객창조 R&D를 동시에 실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양손잡이 조직(Ambidextrous organization)의 도입을 고려해 볼만하다.


기존조직에는 오른손잡이 조직의 역할을 부여해 조직 내에 이미 보유하고 있는 역량과 시스템을 최대

한 활용하여 고객대응 R&D를 철저히 실행한다. 이와 더불어 기존조직과는 다른 조직구조, 운영프로세스, 조직문화 등을 갖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왼손잡이 조직을 신설하여 고객창조 R&D를 추진한다.

 
왼손잡이 조직은 조직구조의 분리는 물론 평가·보상에 있어서도 기존조직과는 다른 차별화된 제도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성과 평가기간을 1년이 아닌 3~5년으로 늘리고 활동기간 동안에는 전사평균 성과와 연동하여 보상을 하되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했을 때 파격적인 보상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앞으로 기업들이 치열한 생존전쟁에서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R&D 활동을 통해 차별화된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출시해야 한다. 특히 성공적인 R&D를 위해서는 고객의 요구를 경청하는 한편 경우에 따라서는 고객의 요구를 무시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고객은 대개 현재 상태에서의 개선을 원하지만, 기존에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혁신적인 신제품으로 고객을 감동시켜야 할 책임은 궁극적으로 기업에게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양손잡이조직을 통해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고객대응 R&D와 고객창조 R&D를 조화롭게 실행할 수 있는 기업이야말로 불확실한 경쟁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게 될 것이다.

 

<자료제공: LG경제연구원>
박혜선 기자 keisen@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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