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김경희 원장의 생전 진료 모습. 사진=보령제약 제공

지난 22일 향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상계동 슈바이처’ 김경희 은명내과 원장의 발인식이 24일 오전 7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거행됐다.

1920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세브란스의전(현 연세대 의대) 의전 2학년생 때인 1941년 서울 답십리 조선보육원 어린이들의 무료 진료를 시작으로 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의 삶을 살았다. 일본 교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고인은 광복 후 서울역에서 중국 만주, 일본 등지에서 귀국한 동포들을 치료했다.

고인은 서울 판자촌을 돌며 무료 진료를 이어가다 1984년 서울 노원구 수락산 자락 당시 판자촌에서 평생의 봉사 터전이 된 ‘상계동 은명내과’을 열었다. 문을 열고 1년간은 무료로 진료 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자존심 때문에 무료 진료를 기피하거나 진료의 질이 낮을 거라 생각해 환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1000원 진료’를 시작했다. 당시(1980년대) 돈 가치를 따지자면 택시 기본요금이 800원이던 시기였다. ‘1000원 진료’는 건강보험 제도가 실시되기 전인 1989년 7월까지 계속됐다. ‘상계동 슈바이처’ 별명도 여기서 얻었다.

고인은 사회사업도 열심히 했다. 은명장학회(1985년), 은명심장수술후원회(1986년), 은명무료독서실(1990년)을 운영하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학업과 진료를 도왔다. 대통령 선행 시민상, 아산사회복지대상, 보령의료봉사상 등을 받았다.

1996년 4월에는 모교인 연세의료원에 평생 모은 전 재산인 토지(21만4876m²)를 기부했다. 그 당시 감정가로 53억 원이었다고 하니 요즘 가치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땅이다.

고인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1000원만 받고 진료를 한 것은 어떤 재산도 개인이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며 “잠시 관리했던 재산을 이제 같은 마음으로 사회에 돌려주려고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인규 씨와 아들 교인, 교철 씨, 딸 교진, 교영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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