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 오는 손님에게 누가 봐도 합리적(?)인 설명을 해도 약사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상황 그리고 제약회사가 수개월간 시장조사와 연구개발을 통해 출시한 제품의 타깃 고객이 움직이지 않고 전혀 다른 타깃 고객이 움직이는 상황들을 우리는 계속 보아 오고 있다.

아무리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화두인 세상이라지만 우리의 일상은 어림짐작이나 주먹구구식으로 결정하거나 과거의 기억에 의존해 판단하는 게 보통이다.

이득보다 손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손에 쥔 걸 내놓기 싫어한다. 경제학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상정한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면 무엇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또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움직인다.

▲ <왼쪽은 심리학, 오른쪽은 행동경제학>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행동경제학의 아버지’ 리처드 세일러(국내 번역된 책에는 리처드 탈러 라고 소개됨)는 2008년 공저 『넛지』에서 기존 경제학에 이런 야유를 보냈다.

“경제학 교과서를 보면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할 줄 알고, IBM의 빅 블루에 해당하는 기억 용량을 갖고 있으며, 간디 같은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행동경제학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그다지 합리적이지도, 언제나 이기적인 것도 아니라고 본다.

전통 경제학 입장에서는 인간의 욕망과 선택이 전적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행동 경제학의 관점은 다르다. 사전에 이성과 합리주의(전통 경제학)라는 계산기를 두드려 A라는 답을 정해놓았다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 감정(행동 경제학)에 따라 B를 선택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게 만든 것은 ‘할인’ 문구일 수도 있고, ‘누가 이걸 샀다 하더라’ 하는 소문일 수도 있고, ‘한번 손에 들어온 것’에 대한 일종의 애착일 수도 있다. 우리는 리처드 세일러의 행동경제학에 관한 책들을 통해 그런 행동주의 관점을 완벽하게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선택설계의 힘을 '넛지'라 부르며 새롭게 정의한다. '넛지(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라는 뜻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 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여기에서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한다. 옆 사람의 팔을 잡아 끌어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단지 팔꿈치로 툭 치면서 어떤 행동을 유도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암스테르담 공항에서는 소변기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여놓는 아이디어만으로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80%나 줄일 수 있었다. 이곳에는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라는 경고의 말이나, 심지어 파리를 겨냥하라는 부탁조차 없었다.

어떠한 금지나 인센티브 없이도, 인간 행동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바탕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그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결과는 훌륭했다. 이것이 바로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힘, 넛지nudge의 좋은 사례이다.

약국에 오는 손님들에게 약사들도 이제 넛지 정신의 부드러운 개입을 해야 한다. 스스로 건강을 예방, 유지 및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의미하는 셀프케어(self-care) 와 본인이 알고 있는 질병이나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직접 약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셀프메디케이션(self-medication) 의 시대에 필요한 것이 바로 ‘넛지’ 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 증대와 더불어 강화된 개인 역량, 높은 교육수준, 정보의 접근성 증가가 주된 원인으로 이제 우리 약사와 같은 보건의료전문가 들은 Communicator, Health promotor 의 역할을 통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는 전문가의 역량이 필요한 시점에 리처드 세일러의 행동경제학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에 충분하다.

소비자는 좋은 제품을 구매한다는 생각 혹은, 소비자는 좋은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는 것은 소비자에 대한 편견과 오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우리 제품보다 못한데 어떻게 그렇게 잘 팔릴까?" "우리 가게 음식이 더 좋은 재료를 쓴 것이고 맛도 좋은데 왜 옆집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까?" "이제껏 잘 구매하던 고객이 왜 갑자기 다른 상표로 바꾸었을까?" 아니면 "늘 옆집만 가던 사람이 이번에는 어쩌다가 우리 가게에 들어왔을까?” 소비자는 좋은 제품을 구매하기 마련이고 좋은 제품은 팔리기 마련이라는 편견과 오만은 리처드 세일러의 행동경제학으로 말끔히 해소된다.

리처드의 최신작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에서 거래 효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똑같은 맥주를 똑같은 장소에서 마시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어디서 샀느냐에 따라 다른 가격을 지불하고자 함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판매점에 신경을 쓰는 것일까? 한 가지 이유는 기대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비용이 훨씬 더 높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리조트의 고급 바에서 파는 맥주 가격이 더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 리조트에서 파는 맥주 한 병에 7달러를 지불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예상했던 바다. 그러나 간이매점에서 7달러를 요구한다면 틀림없이 화가 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래 효용의 핵심이다.

우리 약국이라는 공간도 마찬가지 이다. 소비자는 약국이라는 판매점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다. 거기서 도대체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 우리는 찬찬히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 볼 문제이다.

뉴욕 이타카 근처에 있는 작은 스키 리조트 그릭픽은 근처 대형 스키장에 밀려 심각한 매출부진에 빠져있었다. 리처드 세일러는 이 리조트의 매출 구조를 검토했고 그 결과, 이용료를 높여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의 반발 없이 이용료를 올리면서도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까? 리처드 세일러는 행동 경제학의 관점을 적극 반영해 문제 해결에 나섰다. 주변 스키장만큼 이용료를 올리되 대신 매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사로운 서비스를 적극 무료로 전환해 고객들에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특히 식스팩, 텐팩 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할인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할인가라는 이미지 덕에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심어 주었고, 또한 사전구입을 한 것이기 때문에 매몰비용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고객들은 구입한 패키지 상품을 모두 이용하지 못했기에 다음과 결심을 하게 됐다. ‘내년에는 진짜 제대로 이용할 거야!’ 덕분에 매출은 다음해에도 계속 이어졌다. 고객들에게 만족감을 주면서도 매출부진을 해결한 것은 행동 경제학적 관점이었다.

지금 매출부진을 겪고 있는가 아니면 제품이 팔리지 않는가? 행동경제학 관점으로 한번 바라보면 전혀 다른 곳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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