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젊은의사들과 의대생·대학원생 합의 불복, 국시 거부 등 내홍
의약계, 의-정 합의 내용대로 한방급여 시범사업 재검토 촉구 나서
여당은 의료계 정부 합의에 노골적 불만 표출하며 정책 강행 주장

▲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지난 9월27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대한의협회 대의원회 임시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동안 정부는 의료계의 반대로 추진하지 못했던 한방급여 사업과 원격의료 정책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코로나19 사태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한 해결책으로 의사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이라는 정책도 함께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대한의사협회가 주축이 된 의료계는 정부의 한방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원격의료 사업, 공공의대 설립 사업, 의대 정원 확대 사업을 ‘4대惡’이라 명명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정부에 총력 투쟁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코로나19 상황과 논의 부족 등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코로나19 후 재논의를 통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정책 철회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7월 의료계와 약계, 병원 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한방급여화 시범사업 연내 추진 결정을 내렸다. 이어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의대 정원 확대와 신규 공공 의대 추가 설립에 대한 세부계획을 발표하고 추진에 나섰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에 대해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추진 반대 입장을 발표했던 대한의사협회는 대회원 투표 결과를 발표하고 정부에 정책추진에 대해 강력한 조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8월 의료계는 정부에 5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8월 14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정부와 의료계 간의 대화는 번번이 크고 작은 이슈들로 결렬됐다.

의료계는 14일 1차 24시간 총파업, 8월 26일 72시간의 2차 총파업을 벌였고, 9월 7일 3차 총파업을 예고했다. 의료계가 못 박은 3차 무기한 파업을 앞둔 9월 4일, 의협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부와 차례로 극적으로 합의문에 서명했다.

그동안 문제가 됐던 의료정책은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협의체를 구성해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젊은의사들과 의대생들은 의협과 정부 간의 합의에 불복하고 의사고시 불참을 선언하는가 하면, 일부 여당의 국회의원들은 이번 합의에 불만을 드러내고, 합의를 부정하는 발언 들을 하고 있어 의료계가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청하는 등 9·4 합의를 두고 갈등도 지속되고 있다.

 

젊은 의사와 의대생들 의협과 불협화음

의협이 민주당, 복지부와 합의했지만, 이번 파업을 주도하고 단체행동에 앞장선 전공의, 전임의, 의대·대학원 학생들은 선뜻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합의에 의협 최대집 회장에게 합의 전권을 일임했지만, 의료계의 요구였던 철회가 아닌 원점에서 재검토라는 결과를 받아들였다는 것, 게다가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젊은의사와 학생들에게 논의조차 없이 독단적으로 합의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최대집 회장은 협의 당일 대회원 담화를 발표해 "'철회'라고 하는 두 글자를 얻는 과정에서 얻게 될 것과 잃게 될 것을 냉정하게 고민하고 설령 오해와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협회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이미 고발조치 된 전공의를 비롯하여 복지부가 고발을 미루고 있는 수백 명의 전공의, 오늘을 마지막으로 시험의 기회를 잃게 될 의대생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젊은 의사들이 주축이 되어 일궈낸 소중한 성과를 반드시 가시적인 결과로 만들어 낼 것"이라며, 대한의사협회에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사실상 의정 협의를 통해 투쟁의 명분을 잃은 젊은의사들은 격론을 벌였고, 전공의 비대위와 전임의 비대위는 8일 현장 복귀를 선언했지만, 전공의 협의회 박지현 회장을 비롯한 전공의 비대위원 전원이 사퇴하고 비대위원을 다시 선출하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

의대·대학원생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의협이 의대와 대학원생들의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 주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받아냈지만, 이번 합의에 반발한 의대생들은 의사 국가고시 불참을 선언하고 정부가 최종 기일로 지목한 6일까지 응시하지 않았다.

마감 시한을 앞두고 의협은 정부에 재연기 요청을 했지만, 정부는 더이상의 연기는 할 수 없다고 못 박았고, 예정대로 8일 응시대상 3,172명 중 14%인 446명 만이 응시한 채로, 의사 국시 실기시험이 시작됐다. 의료계는 이번 합의 전제조건으로 의사 국가고시 응시에 의대 및 대학원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응시거부로 인해 정부에 지속적으로 구제책을 요구하는 한편,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의 합의 부정 발언, 사과와 재발 요구

9·4 합의 후 정부의 지지층에서는 “사실상 의료계에 백기 항복을 한 것과 같다”며 여당과 복지부를 비난하기도 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정부가 추진하던 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의협은 8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일부 정치인들의 발언은 “잘못된 정책 추진을 반성하고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개선을 위해 의료계와 함께 노력하기를 기대했던 의료계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다. 코로나19 시국에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 전공의, 전임의들의 등에 또다시 칼을 꽂는 일”이라고 비난하고, 재발 방지와 사과를 요구했다. 만약, 이런 발언들을 중단하지 않으면, 합의 철회를 할 수밖에 없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한방급여 시범사업 추진 중단 논란

한방급여 시범사업은 정책 추진과정에서 의약계가 한목소리로 반대의 목소리를 냈지만, 지난 7월 건정심(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을 통과시켜 올해 11월 사업 추진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의약계는 이번 의료계와 정부의 합의에 적용된 4대악 정책에 한방 급여 사업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 사업도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복지부는 이미 건정심을 통과한 사안이라 복지부로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지만, 의약계 7개 단체로 이뤄진 '첩약 과학화 촉구 범의약계 비상대책위원회‘는 9일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10일에는 한방급여 사업 원점 재검토를 촉구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원점 재검토를 촉구하기 위한 주장의 강도를 높이 겠다고 예고했다.

9·4 합의로 코로나19 재확산과 사상 초유의 의료대란을 막고 그동안 쌓였던 오해를 풀고 협력과 합의를 통해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료계와 정부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

의료계는 이 결정에 따른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있다. 정부 역시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했지만 모처럼 이룬 합의를 지키기 위해 내부 단속을 해야 하고, 의료계뿐만 아니라 의약계 모두 한목소리로 약속대로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한방급여 시범사업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게다가 의대생들의 구제 문제는 또 한 번 의-정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어렵고 먼 길을 돌아서 겨우 합의에 이른 정부와 의료계, 이들이 과연 어렵게 이룬 합의를 지켜 낼 수 있을지, 이들의 행동과 결정에 국민들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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