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알아보는 사실혼 부부의 상속

한국의약통신 440호, 삼성생명헤리티지센터 임태석 팀장 한국의약통신l승인2020.07.11 05: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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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법률혼 대신 사실혼관계로 부부관계를 맺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렇다면 사실혼관계에서 배우자가 사망했을 경우, 상속이 가능할까.


최근 대법원판결(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10823 판결) 중에 사실혼 부부의 애환이 섞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성 A씨는 2004년 12월 29일 무렵부터 여성 B씨와 사실혼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는데 2015년 1월 8일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2016년 3월 26일 병원에 입원했죠. A씨는 B씨의 향후 생활이 걱정됐나 봅니다.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트랙터 등 차량 2대를 팔아 생활비로 쓰라고 말하고, 2016년 3월 28일 차량 매매상인 C씨에게도 전화를 걸어 차량을 팔아 그 대금을 아내인 B씨에게 주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C씨는 2016년 3월 31일 남편으로부터 차량 매매에 필요한 매도위임장, 신분증을 받아 차량 매매를 진행했고, B씨가 대리로 발급받은 A씨의 인감증명서도 2016년 4월 4일 받았습니다.

A씨는 2016년 4월 5일 사망했습니다. C씨는 2016년 4월 6일 차량 매도대금 4,200만 원을 B씨 계좌로 입금했고, B씨는 이 돈을 생활비로 사용했죠. 그런데 A씨에게는 딸이 있었고, 그 딸이 법률상으로는 상속인이었습니다. B씨는 아내이지만 사실혼관계라서 상속권이 없고요.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딸은 자신이 받아야 할 상속대금을 횡령했다면서 검찰에 B씨를 고소하면서 재판까지 이어졌습니다.

1심 법원은 사실혼 아내 B씨에게는 횡령죄에서 요구되는 불법영득의사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은 비록 망인의 의사로 차량이 매도됐다고 하더라도 망인이 사망한 이상 차량을 포함한 망인의 재산은 상속인인 딸에게 상속됨으로써 사실혼 아내 B씨는 더 이상 차량을 매도할 권한이 없으므로, 매도대금을 송금받아 보관 중인 사실혼 아내 B씨가 상속인인 딸에게 이를 반환하지 아니하고 이 돈을 인출한 것은 상속인에 대한 횡령행위가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사실혼 아내 B씨가 오랜 기간 망인과 사실혼관계에 있으면서 병원 치료비와 장례비 등을 지출해 취득한 이익이 크지 않아 선고유예 판결을 했습니다. 선고유예란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에 대해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2년간 특정한 사고 없이 경과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입니다.

이에 대법원은 A씨와 B씨는 차를 팔아 생활비로 사용하기로 합의한 것이므로 이는 차량에 관해 증여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봐야 하고, 따라서 사실혼 아내 B씨가 송금받은 차량 판매대금을 생활비로 썼더라도 상속인의 돈을 횡령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이 항소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환송했습니다.

혼인의 의사로 부부 공동생활을 하고 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생활하는 것을 사실혼이라고 하죠. 판례도 “사실혼이란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의사가 있고, 객관적으로 사회 관념상으로 가족 질서적인 면에서 부부 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 생활의 실체가 있는 경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대법원 1995. 3. 10. 선고 94므1379, 1386(반소) 판결].

 

사실혼의 한계성

법과 제도는 사실혼의 경우에도 법률혼과 비슷한 효력을 주려고 하는데 예외적으로 사실혼 배우자에게는 상속을 받을 권리가 없습니다. 이번 사례에서 사실혼 아내 B씨는 갑자기 암에 걸린 사실혼 남편 A씨를 간병했고, 진정한 부부였기에 A씨는  B씨의 여생을 걱정하면서 차량 매도를 결정했겠죠. 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관계로 생활했는지는 모릅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죠. 만약 혼인신고를 했었다면 빨리 처분하려고 애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구요. 이번 사안에서는 그래도 남편은 아내의 여생을 걱정했습니다.

만약 남편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경우 안타깝지만, 비정한 변호사로서는 아내에게,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원에서 남편을 간병하지 말고 가정법원에 사실혼이 파탄됐다고 하면서 재산분할을 청구하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혼 관계의 부부에게도 재산분할청구권은 있고 사실혼은 일방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관계 종료를 선언할 수 있으니까요. 혼인신고를 한 법률혼은 일방적으로 혼인의 종료를 선언할 수 없는 것과는 매우 다르죠.

이렇게 사실혼 배우자가 재산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배우자의 도리를 다하기보다 사실혼관계가 파탄됐다고 선언해야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불합리합니다. 그래서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불행히도 헌법재판소는 이런 점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했지만요(헌법재판소 2014. 8. 28.자 2013헌바119 결정).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지와 같이,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은 상속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파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고, 상속으로 인한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시키며,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혼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상속권을 가질 수 있고, 증여나 유증을 받는 방법으로 상속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근로기준법’, ‘국민연금법’ 등에 근거한 급여를 받을 권리 등이 인정돼 어느 정도는 보호를 받고 있는 것도 맞습니다.

법원에서 재판을 해 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실혼이 파탄됐다면서 재산분할청구를 하는 사실혼 배우자에 대해 상대방이 사실혼관계가 아니라고 다투는 경우 양 당사자가 생존하고 있음에도 사실혼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사자 역시 혼인의 의사라는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요소를 객관적인 사실, 파편적인 사실들로 퍼즐 맞추기처럼 꿰어서 입증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따라서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받을 권리를 인정한다면 다른 상속인이 사실혼관계를 다투는 한 상속 자체가 진행되지 못해 법률관계 확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난점이 있습니다.

 

사실혼 상속 지위 적극 고려돼야

또 사실혼 부부에 대해 획일적으로 법률이 정한 상속권을 인정하게 되면 경우에 따라 당사자들이 혼인신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의미에 반하게 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동의합니다. 저는 당사자가 설계한 혼인관계의 형태가 공서양속(公序良俗)에 반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당사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혼인신고를 할 수 있음에도 자유로운 의사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부부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법률에 규정돼 있는 혼인의 효과를 배제하고 특히 언제든지 자유롭게 부부 공동생활을 중단할 수 있다는 사실혼 부부의 장점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 법률혼 대신 사실혼을 선택한 부부가 그런 경우입니다.

만약 사실혼 배우자에게 획일적으로 상속권을 인정한다면 이런 법률 효과를 원하지 않는 사실혼 부부로서는 사실혼의 외양을 감추는 노력을 할지도 모릅니다(실제 사실혼으로 판단 받을까 봐 걱정돼 한 집에서 거주하지 않고 마주 보는 아파트에서 따로 거주하는 사실혼 부부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법적 권리 의무의 구속을 받지 않으려고 자발적으로 사실혼을 선택한 부부에게 당사자가 예상하지 않았던 상속권을 인정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각자 여생에 필요한 생활비가 있고 각자의 재산은 각자의 친족에게 상속하길 원하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관 조용호의 보충의견과 같이,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에 관한 권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생전에 사실혼 관계가 해소된 경우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는 것과 비교해 간과할 수 없는 불균형이 발생하고,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권이나 복리를 침해하는 결과가 초래될 소지 또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유족의 사후 부양과 상속재산에 대한 기여의 청산이라는 상속제도의 존재 의의에 비추어 볼 때 사실혼 배우자와 법률혼 배우자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으므로, 사실혼 배우자에 대하여도 일정한 경우 상속에 관한 권리를 인정하도록 입법적 개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대책을 세워 놓지 않고 사실혼 배우자가 사망했고, 사실혼 부부의 재산이 사망한 사실혼 배우자 명의로만 돼 있다면 난감한 일이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회가 변하고 혼인을 하는 주체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남녀관계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혼인신고제도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혼인관계보다 약간 느슨한 생활공동체를 인정하고 그런 경우에는 이른바 생활동반자로서 등록할 수 있도록 해 등록한 커플에게는 법률혼과 유사한 보호를 받는 사실혼, 혼인관계에 비견할 수 있는 준혼(準婚)관계로서 인정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실혼은 일응 당연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혼관계인지 여부는 공시가 이루어지지 않아 당사자 이외의 자가 쉽게 알 수 없으므로, 법률혼과 유사한 보호를 받는 사실혼의 경우에는 이른바 생활동반자로서 등록할 수 있도록 해 사실혼인지 여부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선택한 사람들을 법과 제도로서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런 논의는 생존배우자의 부양 문제로 귀결됩니다. 저는 최소한 관계를 공시한 커플 중 일방이 사망하고 남은 생존배우자는 그들의 노동과 협력으로 취득한 재산에서 부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혼인의 모습, 사실혼관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사실혼 배우자에게도 장례 절차를 주관할 수 있는 지위가 인정됐습니다. 이제 나아가서 상속제도가 재정비될 필요가 있고 많은 분들이 배우자가 사망한 후에도 생존배우자가 그전과 같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을 원하고 있습니다. 저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생존배우자의 부양을 염두에 두고 상속제도가 재정비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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