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보다 소중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존중받는 것
보험·비보험과 각각 애로 있어…긴 안목으로 행복 추구해야

 

 

최명기


부여다사랑병원 원장
경희대학교 의료경영학과 겸임교수
Medigate·동아비즈니스리뷰 칼럼 연재
저서 <심리학테라피>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의사하기 힘들다는 한탄뿐이다. 보험과를 하는 선생님들은 수가는 오르지 않고 삭감은 점점 많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현지 확인이다,

 

현지조사다 해서 병원을 수사하듯이 뒤져간다. 아무 일 없을 것처럼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니 몇 달 뒤에는 떡하니 영업정지다, 의사면허정지다, 행정조처가 날아온다. 그렇다고 비급여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다. 청구를 하지 않으니까 공단, 심평원 눈치 볼일은 없지만 가격을 올려본 것이 까마득한 옛날이라고 한다. 나름대로 가격을 정해놓지만 실제는 환자 개인별로 할인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고소득 개인사업자를 조사한다면서 어느 정도 매출이 되는 비급여 의료기관은 정기적인 세무조사는 기본으로 각오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 의사는 너무 힘들어, 옛날이 좋았어”라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돈, 버는 만큼 쓴다


그런데 지금보다 여건이 좋았던 옛날에 병원을 했던 의사들이라고 다 여유 있는 것도 아니다. 병원이 잘된다고 꼭 잘사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주위를 보면 병원이 크게 잘되는 것은 아닌데 잘사는 선생이 있는가 하면, 병원은 잘되는데 항상 돈에 쪼들려 사는 분들도 있다. 도대체 왜 그런것일까? 우선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쓰게 마련이다.

 

병원이 잘 되면 병원이 돈을 계속 잡아먹는다. 그러다 병원이 기울기 시작하면 투자금을 회수하기가 요원하다. 병원을 할수록 이것저것 재테크 차원에서 투자를 하면서 막상 현찰이 없어서 궁색해진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잘되는 병원 못지않게 잘사는 인생이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레지던트 때에는 ‘전문의가 되어 봉직의만 되면 평생 돈 걱정 안할 것’ 같다. 봉직의들은 잘되는 병원을 운영하는 개원의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개업해서 자리만 잡으면 평생 돈 걱정은 안할 것 같다. 개업 초기에 환자가 없어 괴로울 때에는 이미 기반을 잡은 개업선배들이 부럽다. 환자들이 알아서 계속 찾아와 환자수가 늘어나는 병원 하나쯤 있으면 돈 걱정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여유 자금이 생기게 되면 재테크라는 명분으로 뭉텅이로 사치를 하게 된다. 필요 이상으로 넓은 집에 살면서 이자로 상당한 돈을 낭비하지만 집값이 오른다는 명목 하에 합리화한다. 그러나 그 집을 사는 이유는 사실 나는 이렇게 큰 집에 산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러다 매출이라도 감소하기 시작하면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고 아끼는 대신 주식이나 펀드 같은 위험자산에 투자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돈보다 소중한 무엇


잘되는 병원의 원장들은 심리적으로 정상에서 밀려날까 두려워 계속적으로 투자를 하게 된다. 해당 진료분야가 막 성장할 때에는 과감한 투자가 이익으로 환수된다. 하지만 성장이 주춤하면서 환자가 줄기 시작하는 시점에는 아무리 투자를 해도 이익으로 회수되지 않는다. 번 돈을 가지고 빠져나가는 환자를 잡아보려고 계속 병원에 재투자하지만 결국 병원이 돈 먹는 하마 꼴이 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돈보다 소중한 것이 점점 눈에 띄게 된다. 인생에는 병원을 해서 돈을 잘 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이 많다. 우선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돈 많이 버는 의사들의 목소리는 작아지고 공부 잘하는 자식을 둔 의사의 목소리가 커진다.

 

주위에서 자식을 의대에 보낸 이라도 있으면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선 부자 부모들의 또 다른 사치인 고액 과외가 기승을 부린다. 초등학교 아이에게 영어를 익히게 하고 조기유학을 보낸다. 중고등학교 때도 과외에 엄청난 돈을 쓴다. 몇몇 극성인 사람들은 멀쩡한 집 놔두고 전세를 얻어서 대치동으로 이사도 간다.


공부 잘한 아이가 꼭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식이 잘 풀린다고 꼭 부모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보험과? 비보험과?


우리 시대에는 아무리 병원이 잘 되어도 의사에게 있어서 은퇴란 없다. 은퇴하지 않는 것이 살아남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는 나이가 들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레지던트 전임의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대신해 주는 대학병원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진료하고 시술해야 하는 노동 강도가 센 진료과목 봉직의 중 나이 드신 분은 거의 없다. 개업은 어떤 의미에서 내가 나를 고용하는 형태의 평생직장을 만드는 것이다.


개업을 함으로써 종신고용이 이루어진다. 종신보험을 드는 대신 종신고용을 계획해야 한다. 앉아서 환자 진료하고 주로 처방전 발행하는 보험과를 하다가 금전적인 수입이 너무 적다고 생각해서 시술이 많은 비보험과로 가는 분들이 있다. 손이 많이 가고 시술이 많은 비급여는 젊어서 몇 년은 괜찮다. 하지만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될수록 육체적으로 힘에 부친다.


길게 보면 환자들 이야기 잘 듣고 그에 맞춰서 처방전 발행하는 의료인은 60세, 70세까지 너끈히 일할 수 있다. 건강하기만 하고 시력, 청력에 이상이 없으면 80세까지도 할 수 있다. 환자도 점점 쌓여간다. 지금 돈 많이 버는 것 같은 성형외과, 피부과 의사들은 나이가 들수록 힘들다. 환자들도 젊은 의사들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나이 들어 다시 보험과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 인생을 길게 보면 보험과가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비보험과든 보험과든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나이가 들수록 환자 돌보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이다.

 

‘행복’이 ‘장땡’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라는 명제가 나이를 들수록 점점 중요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함께 일하는 직원들로부터 존경받는다는 것, 가족으로부터 존중받는다는 것, 지역사회에서 가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존중과 존경은 자녀가 잘났거나, 골프를 잘 치거나, 돈이 많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순간의 선택이 쌓여서 받게 되는 소중한 보답인 것이다.


그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훌륭한 의사 선생으로 존경받으면서 함께 늙어가는 것처럼 좋은 것이 없다. 부부사이가 좋아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늙어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의사에게는 환자와의 좋은 관계처럼 소중한 것이 없다. 이 고령화 시대에 함께 늙고 병들고 약해지는 과정을 감당할 환자가 있다는 것이 의사에게는 축복이다.


나이 80대인 의사들이 죽는 날까지 진료를 하고 싶다면서 의료봉사를 하는 데는 그 나이가 아니면 깨달을 수 없는 귀중한 교훈이 있다. 나이가 90세, 100세 가까이 되면 걷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인생의 승자다. 돈 많이 벌어도 소용없다. 행복이 장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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