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가 뭐하는 짓이야, 그 나이에 별걸 다 하네”

민화(民畵)작가로 활동하는 이은숙 약사(경기도 시흥시 녹십자약국) 김이슬 기자l승인2019.06.17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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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살에 허망한 일 겪고 시작, 지난 5월 첫 개인전 열어 호평
55작품 전시, 봐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대부분 팔려 수익금은 기부 
매력을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일단 손잡으면 밤새우고도 남아

경기도 시흥시 녹십자약국 이은숙 약사(80)는 지난 5월 20일부터 24일 총 5일간 시흥시청 지하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성황리에 마쳤다. 민화를 시작한지 15년 만이다. 

이번 전시회는 병풍, 가리개 등 총 55작품의 대작들을 선보이며 방문객들을 매혹시켰다는 후문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그는 왜 새로운 길에 도전을 했을까? 오랜 노력의 결실을 맺은 이은숙 약사의 열정과 도전에 대한 소회를 들어봤다.

Q. 최근 시흥시청에서 전시회를 가지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시작하기 전에는 주로 약사사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니 약사들이 주중에 나오기도 힘들고, ‘사람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대신 광고를 버스 정류장과 주민센터에 했죠. 그랬더니 약사 이외의 사람들도 많이 오고, 약사님들도 간부들한테만 연락했는데도 불구하고 또 회원들에게도 알려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저로서는 만족하고 감사한 전시회였습니다.

총 55작품을 전시했는데 8쪽짜리 병풍 3개, 2쪽짜리 가리개 5개 등 대작이 많았습니다.

찾아와서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건 내가 사겠다.”며 꽤 많은 작품이 예약이 됐습니다. 그래서 시흥이 시골지역이지만 ‘이 지역의 문화 수준이 높구나’하고 생각했어요. 관람자가 수준이 높아야지, 그린 사람만 높아서는 화합이 되지 않습니다. 

Q.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특별히 없었어요. 왜냐면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고, 제가 좋아서 한 전시회였으니까요.

특히 민화는 세필이기 때문에 붓으로 그리기에는 눈이 너무 어두워졌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못할 것 같아서, ‘더 늦기 전에 작품이 모였을 때 해보자’ 해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마침 올해 팔순이 되는 뜻 깊은 해여서 날 좋은 5월에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번 전시회가 마지막 전시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민화는 붓 하나만 잘못 그어도 이상한 그림이 되는데 노안이 되면서 민화에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만 그려야 된다는 의미에서 마지막 전시회를 연 것이죠. 

Q. 오랜 시간 공들인 작품이 팔렸을 때 서운하지 않으셨나요.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조금 서운한 감정도 들었습니다. 병풍 8쪽은 그리는데 1년이나 걸리는데, 그런 작품이 내 곁을 떠나는 것이 쓸쓸해지더라고요. 처음에 작품을 사는 사람이 서운하지 않겠냐고 물었어요. 그때는 “뭐가 서운하냐. 헤어질 때가 됐다.”고 했는데, 긴 시간 호흡을 했던 작품들이다 보니 상당히 서운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애착을 두는 ‘병풍’은 팔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병풍 하나 남겼구나’ 생각해요.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곁에 있어서 섭섭함이 덜합니다. 

Q. 민화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60살에 허망한 일을 겪었습니다. 그때부터 약국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취미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문학도 하고, 음악도 하고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약학도로서 취약점이 많기 때문에 세상 교양을 쌓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수필 문학에서도 당선해서 책을 하나 썼고, 책을 쓰고 나니 시를 하고 싶어서 시를 했습니다. 이후 그림에 관심을 가졌는데 민화가 비교적 초보에게 쉬운 과목이라서 선택해 시작했습니다.

친구 6명이 매주 목요일 4~5시간씩 즐겁게 배웠습니다. 너무 행복했어요. 이렇게 살면 되는 것을 왜 인생을 어렵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또 민화는 해가 갈수록 결과라는 성과가 눈에 보이다 보니 ‘이게 진짜 내가 할 일이었구나’ 하고 시작했습니다.

Q. 민화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민화가 할수록 매력이 있습니다. 민화의 매력을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일단 손잡으면 밤을 새우고도 남아요. 내일 약국 볼 사람이 오늘 밤을 새울 정도로 계속 그리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민화는 ‘나의 밤을 새우게 하는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약학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해 봤지만 민화가 가장 재밌었습니다. 힘든 적도 한 번도 없었어요.

Q. 미적 감각이 없으면 어려울 것 같은데.
아닙니다. 저는 감각도 없고, 고지식해요. 그런데 솔직하면 더 잘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가면을 안 쓰고 봐야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정직한 사람이 잘 그릴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Q. 처음 민화를 시작하셨을 때 약사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별종 약사’라고 해요. 친구들은 ‘약사가 뭐하는 짓이야, 그 나이에 별걸 다 한다’는 반응도 있었죠. 그런데 저는 예술에 늘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전시할 만큼 많은 작품을 그리지 못하지만, 주변에 그림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작은 그림들은 그들을 위해 그릴 생각입니다.

Q. 해외 전시회도 많이 하셨는데, 해외 전시회 당시 반응은 어땠습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하기 전에는 주로 외국에서 7~8회 정도 전시회를 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단체전을 했는데, 우리나라의 인기가 최고로 좋았습니다. 

민화를 아주 신비로워 했는데, 설명까지 곁들이면 더 호응이 좋았습니다. 서양화를 그리면 뜻은 속에 있고 표현이 안 되는데, 우리의 민화는 설명을 많이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아했습니다. 민화가 우리 마음속에 공감대를 형성해 주니까 보는 사람도 즐겁고 그린 사람도 즐거운 거죠.

Q. 개인전 수익금을 기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은 같이 살아야 합니다. 나 혼자 그렸다고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죠. 제 그림에 호응해 주는 사람이 그림을 사가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나만의 그림이 아니구나…나눠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흥시1%복지재단에 150만 원, 성당에 100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평소에 봉사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베푸는 것이 몸에 배었습니다. 또 저는 벌기만 하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쓰면서 봉사를 해야 좋은 작품이 구상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이슬 기자  medi@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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