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안전한 진료환경’ 법안 줄줄이 발의
박능후 장관 “의료계와 논의해 방안 마련” 약속
국민 청원 6만 명 이상 동의…인식 빠르게 확산

이번에는 국회의 고질적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행태가 있어서는 안 된다.
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31일 진료 중이던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임 교수의 피살사건으로 의료계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과 슬픔에 잠겨 있다. 정치권과 국민들 역시 충격을 감추지 못한 채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그동안 고질적인 문제였던 ‘의료진 응급실 폭행 문제’에 대해 전 의료계가 한 마음으로 대책을 강구한 결과, 국회에서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통과된 지 며칠 만에 발생해 충격을 더했다.

‘윤창호법’ 선례 따르지 말아야
국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부랴부랴 ‘임세원법’ 법안 추진에 혈안을 올리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 TF(태스크포스)를 구성했고, 자유한국당은 1월 7일 의료인 폭행·사망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또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는 1월 9일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임 교수 사건과 관련 현안보고를 받고, 2월 임시국회에서부터 ‘임세원법’ 논의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국회가 문제 해결을 위해 입법 활동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동안 거북이 행정을 일삼았던 국회에 대한 불신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국회에선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장소에서 의료진을 향해 일어나는 폭행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7건이나 계류돼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그동안 희생자의 이름을 딴 법안은 수차례 마련해왔다. 지난해 말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던 이른바 ‘윤창호법’이 그 중 하나다. 단, 윤창호법과 같은 선례가 있어, 해당 사건에 대한 논의는 진행되고 있지만 이번에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행태가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떨칠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의료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내용을 포함한 ‘임세원법’도 법안이 추진돼야 할 시기인 것은 틀림없다.

국회, 관련법 개정안 앞다퉈 발의
여야는 비상벨 및 비상문 설치, 안전요원 배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관련법 개정안을 앞다퉈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외래치료명령제와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 사례관리를 강화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외래치료명령제 강화와 관련해서는 정신의료기관장이 외래치료명령을 청구할 때 명령에 따른 치료비용을 부담해야 할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절차를 삭제하고 그 비용은 국가가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과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도 외래치료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자·타해 위험으로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정신질환자 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퇴원 후 치료가 중단될 위험이 있다고 진단하는 경우에 한해 본인 동의 없이 퇴원 사실을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의료기관 개설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설치기준에 따라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장소에 비상벨, 비상문, 비상공간을 설치하도록 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이 이에 소요되는 경비를 ‘예산 범위’에서 지원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은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에 일정 규모 이상의 보안장비 설치와 보안요원을 배치하도록 하고 여기에 소요되는 경비는 ‘전부 또는 일부’를 ‘예산 범위’에서 지원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내놨다.
또한 같은 당 윤상현 의원이 진료실 안에 비상벨, 비상문, 대피 공간 등을 설치하고 진료실 가까운 곳에 안전요원 배치를 의무화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근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환자가 흉기를 들고 병원 내에서 활보해도 제재를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위험한 상황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인 점을 고려한 것이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은 사전대책 성격인 청원경찰 등 안전인력 기준의 명문화와 사후대책 성격인 형량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작년 8월 발의했으나 지난해 11월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원회에서 단계적 접근을 제안한 보건복지부의 입장에 막혀 통과가 보류됐다.

고인·유가족 뜻 헛되지 않도록 노력
보건복지부는 안전한 진료환경·문화 정착을 위한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실태조사를 비롯하여 진료 안전 가이드라인 마련, 비상벨 설치·보안인력 배치,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설치, 관련 법령 개정 등이 추진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1월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현안보고 전체회의에서 해당 재정 투입 검토를 약속했다.
박능후 장관은 “안전한 진료환경·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의료기관 내 사고 유형별·진료과목별 특성에 따라 실태조사·예방 대책, 법·제도적 장치 마련, 인식 문화 개선 등을 다각도로 의료계와 논의해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고인·유가족 뜻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고 마음이 아픈 사람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청원, 현재 6만 명 이상 동의
한편 임세원 교수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진이 생명을 위협받지 않을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빠르게 동의를 얻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강북 삼성병원 의료진 사망 사건에 관련한 의료 안정성을 위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병원은 의료진의 일터이자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수많은 환자가 치료를 받고 병마와 치열하게 싸우기도 하는 곳”이라며 “병원에서 의료진을 폭행, 살인하는 것은 의료진과 환자 모두를 위협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의사, 간호사, 의업 종사자들, 환자분들의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안전장치를 구비해 달라”고 덧붙였다.
1월 30일까지 진행되는 해당 청원은 1월 9일 오후 12시 30분 기준 6만3404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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