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외국인 영리병원 ‘녹지병원’ 허가 결정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서귀포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 김대중 대통령의 ‘동북아 의료중심’ 구상에 따라 2002년 영리병원 허용을 포함한 경제자유구역법이 제정된 지 16년 만이다.

외국인 환자만 받고 진료과목도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4개뿐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결정에 대해 의료계의 분위기는 냉담하다.

영리병원은 이윤을 남겨서 외부 투자자가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의 건강회복이라는 병원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이윤창출이 우선시 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 영리병원으로 인해 의료비는 더욱 높아질 것이며, 수익 중심의 병원 운영이 환자안전에 얼마나 큰 해악을 미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공론조사위원회의 60% 가까운 불허 권고가 나온 상황에서도 국내 첫 영리병원 개설을 허가했을까.

녹지병원, 관광 활성화 도움 되지 않아
제주특별자치도 원희룡 지사는 12월 초 녹지국제병원과 관련해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진료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개설허가’를 했다고 밝혔다.
원희룡 지사는 조건부 개설허가를 한 이유로 건전한 외국투자자본 보호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투자된 중국자본에 대한 손실 문제로 한.중 외교문제 비화 우려, 외국자본에 대한 행정신뢰도 추락으로 국가신인도 저하 우려, 사업자 손실에 대한 민사소송 등 거액의 손해배상 문제, 현재 병원에 채용돼 있는 직원(134명)들 고용 문제, 토지의 목적 외 사용에 따른 토지 반환 소송의 문제 등을 꼽았다.

그러나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를 수용하겠다던 원희룡 지사가 조건부 개원으로 방향을 틀면서 시민단체 반발 등 후폭풍이 거세다.
제주시의사회 관계자는 “녹지병원은 외국자본이 유입된 것으로 환자들이 해당 병원 영역 내에서만 생활하고 귀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역의료기관 뿐만 아니라 관광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어 “의료산업화 측면에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들이 다시 일차의료기관을 찾거나 주변지역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최대집 회장 면담 통해 ‘부작용’ 언급
한편 원희룡 지사는 녹지병원이 내국인 진료를 강행하면 허가 취소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실제 제주도가 녹지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막을 수 있을지는 법적,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한의사협회나 시민단체들은 의료법 제15조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는 조항을 들고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영리병원이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를 당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원희룡 지사를 만나 해당 조항을 언급했다.

최대집 회장은 “만일 녹지병원이 내국인 진료를 거부해 의료법 위반으로 형사고발을 당하고 법원에서도 위법 판단을 내린다면 진료 대상을 내국인으로 확대할 수밖에 없을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무엇보다 건강보험제도의 내실화가 중요하다고 최 회장은 강조했다.
그는 “영리병원 개설 허가 이전에 기존 건강보험제도의 내실화가 선행돼야 한다. 법적으로 건강보험제도가 내실화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우리나라 의료 현실은 동남아시아 등에서 값싼 의사를 수입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보험제도에 문제가 많다 보니 핵의학과의 경우 올해 전공의 모집 결과 1명밖에 지원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다가 10년 후에는 핵의학과 전문의가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면서 “적정한 수가가 보장이 되도록 해 미달되는 전공의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리병원을 견제하고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원희룡 지사는 “의협이 제기하는 문제를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충분히 보완하는 장치를 만들었고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할 것이다. 앞으로 조례 제정이 남아있는데 의협과 의사회에서 전문가적 의견과 자문을 많이 해주면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내국인 피해 없도록 하겠고 진료범위를 넘어 내국인을 진료할 경우 개설허가를 취소할 것이다. 의협 주장대로 건강보험제도 내실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부연했다.

원희룡 지사 ‘퇴진’ 요구 잇따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허가를 내준 것에 대한 반발로, 제주도민과 시민단체들은 원희룡 지사의 퇴진과 영리병원 허가 철회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과 무상의료운동본부는 12월 21일 오후 6시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영리병원 개원을 허가한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퇴진과, 영리병원 철회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현장에는 100여명이 참석해 1시간가량 “모르쇠 문재인 정부”, “영리병원 단한개도 안 된다”,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수위 높은 ‘반대 투쟁’을 이어갔다.

이날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과 무상의료온동본부는 현 문재인 정부의 모순적 행보를 지적하기도 했다.

건강보험 보장성강화정책과 커뮤니티케어 등 의료의 공공성을 제시하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영리병원 설립을 묵인하고, 원격의료와 첨단의료기기 안전성 검사 간소화를 추진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성원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상임대표는 “촛불 항쟁의 성공으로 일어선 정권 하에서 다시 촛불을 들고 영리병원 반대투쟁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아주 견고한 둑도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진다. 영리병원은 독버섯이다. 둑이 무너지듯 전국으로 의료영리화, 시장화 광풍이 불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녹지병원과 공공의료원이 맺은 응급의료 MOU만 철회시켜도 막을 수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영리병원 방조를 넘어 전면적 민영화 추진의사를 밝힌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또한 이날에는 ‘영리병원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함께 진행됐다.
한편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 오후 6시 제주시청 앞에서도 ‘영리병원 철회, 원희룡 퇴진 2차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도민 배신’, ‘민주주의 파괴’, ‘원희룡 퇴진’을 슬로건으로 한 이날 촛불집회는 영상 상영 및 시민발언대, 정당발언, 자유발언 순으로 진행됐다.

김덕종 민주노총 제주본부장은 “99대 1의 사회를 넘어 99.9대 0.1의 사회로 만들어버릴 것이 영리병원”이라며 “영리병원 허용이라는 것은 마지막 보루였던 공공의료를 무너뜨려 의료에도 사회양극화를 만들어낼 괴물과도 같은 존재”라고 비난했다.
이와 함께 이날 참가자들은 촛불집회가 끝난 오후 8시부터 원 지사에 퇴진을 요구하는 자발적 행진을 이어갔다.

행진은 제주시청에서 도남우체국을 거쳐 제주도청까지 2시간가량 진행된다.
도민운동본부 관계자는 영리병원 개원 허가 철회 및 원희룡 지사가 퇴진할 때까지 촛불집회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정부가 이번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영리병원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는 촉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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