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정신건강 관련 용어 중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팽팽하게 당긴다’는 의미의 라틴어 ‘stringere’에서 기원한 이 단어는 개체에 가해지는 외적인 힘을 일컫는 물리학 용어로 처음 사용되었다.

스트레스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하여 현재는 어떻게 통용되고 있을까? 스트레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알아보자.

‘스트레스’라는 말은 언제 처음 만들어졌을까?
우리가 외적으로 힘든 일을 겪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라고 말한다는 점에서는 과거의 물리학적 개념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스트레스로 인한 몸과 마음의 반응을 표현하고 싶을 때 더 많이 이 말을 사용한다.

모든 생명체는 외적인 변화에 대해 필요한 반응을 한다. 즉, 외적인 압박과 그로 인한 인간의 반응, 이 상호작용이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스트레스’이다.

최근에 사용되는 스트레스의 정의는 현대사회에 출현한 과학적인 사고에 기반한다. 1920년대부터 생명체는 외적인 자극에 대응하여 내적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고자 한다는 ‘항상성’이라는 개념이 대두되었다.

이 개념을 확대하여, 스트레스의 개념을 정립하고 일반인에게 널리 알리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과학자는 Hans Selye이다. Hans Selye는 스트레스를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신체적, 정신적 긴장 상태로 명명하였다.

우리의 몸은 원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한 옷을 입어 체온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타인과 갈등으로 마음이 불편하면, 그 불편감이 없는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어진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분리하여 생각하였다. 물질로 존재하는 육체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성(또는 마음, 감정)을 통합하여 생각한다는 것이 당시의 철학과 종교적 관점에서는 불가능했다. 합리적 사고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조차 마음은 물질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 특별히 창조된 어떤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그리스인의 이원론적인 관점은 여전히 남아있어, 우리도 모르게 몸과 마음을 분리하여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우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유기체이며, 외적인 환경에 동시에 반응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계속해서 환경과 문화의 변화에 반응하고 상호작용하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스트레스 반응의 과학적 본질이다.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
현대인이란 누구인가? 오늘, 즉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이다.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더 많은가?’보다 ‘이전 세대와는 어떻게 다른가?’라고 묻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세대가 바뀌고 사회와 문화도 모두 바뀌어 가고 있다. 게다가 그 변화의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다. 항상성의 개념에서 변화한다는 것은 개체에게 스트레스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를 허우적거리게 하는 스트레스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 번째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라는 점이다.
취업에 대한 부담, 직장생활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워내기 위한 노력, 노년의 부모를 오랫동안 돌보아야 하는 일 등이다. 전쟁이나 사고와 같은 위협적인 사건들은 즉각적이고 극심한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켜 우리 몸은 이 변화를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생명의 위협은 덜하지만, 지속되는 매일의 스트레스는 느린 속도로 서서히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직장생활에서 경험하는 ‘번 아웃’ 증후군이 한 예이다.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지속적으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상대적으로 신체 능력을 증가시키는 운동, 충분한 휴식, 긍정적 사고 전환을 위한 에너지를 키울 시간은 매우 부족하다. 설상가상으로 이러한 상태에서 새로운 스트레스를 마주하게 되면 우리 몸은 대항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두 번째는 통제 불가능한 스트레스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통제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게 되는’ 스트레스이다. 노동한 만큼 결과가 눈에 보이는 농경 사회에서 점차 결과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사회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지식과 정보의 접근은 너무 쉽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경쟁력을 갖추기는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

다양한 정보는 우리가 미래의 상황에 대처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과다한 정보는 일찌감치 포기하게 만들거나 학습된 무기력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SNS를 하며, 우리는 타인과 나의 삶에 대해 끊임없는 비교하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경험한다. 실제적인 경험이 아닌 간접 경험을 통해, 나의 통제 범위 밖에 있는 타인의 삶을 내 삶과 연결 지어 버리고 만다.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간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있다. 만약 인터넷상에서 ‘헬조선’을 접하게 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한국 사회에서 이미 내 능력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감에 빠지게 된다.

과거 부두교 신자들이 아무런 건강의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큰 병에 걸려 죽을 것이라는 주술적 믿음만으로 차례로 사망한 사건은 인간이 통제 불가능하다고 믿게 된 스트레스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집단화보다 개인화가 지향되고, 직접 경험보다 간접 경험의 양이 더 많아지는 사회일수록 자칫하면 이러한 스트레스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 양상이 보다 복잡하고, 지속적이고, 때로 통제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복잡하게 보일수록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다시 스트레스의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외적인 자극을 극복하기 위한 생명체의 노력이다. 우리 몸은 새로운 자극에 대해 신체적, 정신적 긴장을 느끼며 반응한다. 그 자극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도 중요하지만, 내가 그에 대한 긴장을 얼마나 유지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개체를 단련시켜 미래의 스트레스에 대항할 힘을 만들어 준다. 평소 간과하였던 신체의 건강과 안정된 휴식, 자극적이고 불안을 가중시키는 인터넷 기사가 아닌 풍부하고 유연한 사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간접 경험을 찾아보는 것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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