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논의 논란 뭇매, 회원에 공개는 ‘시기상조’
회원 우려에 협의체 중지 가능성, 탈퇴는 안 해

“의료계와 한의계를 통합하는 의료일원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은 맞지만 합의 단계는 아니다”

지난 31일 서울 모처에서 정부와 의사단체, 한의사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의·한·정협의체’에서 비밀리에 의료일원화 협의가 진행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자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밀실논의’는 아니라며 극구 부인하고 나섰다.

심지어 ‘의료일원화’는 지난 39대 추무진 회장 집행부 때도 문제가 됐던 사안이다. 당시 추무진 회장은 ‘의·한방 일원화’를 찬성하면서 불신임안이 올라왔었다. 때문에 현재 관련 논의가 과거를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일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일원화’ 합의문 초안 인정
특히 이번 논란은 회원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의료일원화’ 협의에 나선 것이 문제가 됐다. 의료일원화는 현재 의료계 내부에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한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협 시도의사회장단과 대의원회 운영위원회가 의료일원화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자 의협 역시 의료일원화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의협 집행부가 시도의사회장단과 대의원회 운영위에 공개한 회의 자료에는 ‘오는 2030년까지 의료일원화를 한다’, ‘사전에 면허통합과정을 거친다’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일자 의협은 의료일원화 합의문 초안의 진위를 인정했다.

의협 정성균 대변인은 “최근 의·한·정협의체에서 의료일원화가 논의가 있었으며 합의문 초안이 나온 것은 사실”이라며, “합의문 초안을 대의원 및 시도의사회장단에 전달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협의체에서는 합의문의 외부 공개를 바라지 않았다. 내용이 유출되어 혼란스럽지만 적극적인 합의 단계는 아니다.”며 “내부적으로 아직 논란이 있고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보니 의견을 좁히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밀실논의’라는 여론에는 다소 예민한 입장을 피력했다.
정 대변인은 “회원과 국민들이 겪을 혼란을 사전에 막기 위한 발전적인 안을 내부에서 미리 조율하려는 의미였다. 결코 밀실에서 숨어서 논의한 것은 아니다.”며 “요즘 같은 세상에 비밀 논의는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회원들에게 알리면 ‘혼란만 가중’
그러면서 의협은 다수의 의사 회원들이 동의할만한 합의안이 나올 때까지는 이를 ‘공론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현재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마자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됐고, 회원들에게 일찍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큰 혼란을 야기해 합의하는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는 이유에서다.

정 대변인은 “의·한·정 협의체는 전향적으로 국민들에게 최선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 서로 앞으로의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장이기 때문에 회원들을 설득시키고 국민들에게도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모든 회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협의체 내에서 최종 결론이 나기 이전에는 회원들에게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 회원들의 우려가 큰 나머지 혼란스러움을 설득할 수 없다면 합의는 잠정적으로 중단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정확한 의견을 전달하고 회원들 의견을 수렴할 생각이다.”며 “그러나 집행부가 옳은 논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회원들의 혼란을 야기 시키면서까지 협의체를 진행할 생각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한·정 협의체를 탈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의료계의 의견이 배제된 채 한의사협회의 의견대로 진행될 가능성을 우려한 표명이다.

정 대변인은 “비판적인 회원들 중에는 협의를 계속하면 의료계의 입지가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여론도 분명히 있긴 하지만 협의를 하지 않으면 의료계의 의견이 배제될 수 있다.”면서 “협회는 국민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해야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잘못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협의체 참여는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한의학, 효과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먼저
한편 다른 의료계는 ‘의료일원화’ 문제는 그동안 꾸준히 논란이 됐던 사안인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일원화 논의는 자칫 한의사들에게 의과의료기기 사용의 빌미를 제공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방과의 일원화 논의는 아직까지도 의료계 내부에서 근본적인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법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의료계 내부의 의견도 정리가 되지 않은 사안을 의·한·정협의체에서 논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이와 함께 애초에 ‘의·한·정협의체’의 설립 자체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병의협)는 “의·한·정협의체는 발의되면 안 되는 한의사들에게 의과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의 대안으로 만들어져 태생적인 문제가 있다.”며 “잘못된 법안이면 국회 스스로 파기하면 되는데 논란과 파장이 커지니 책임 회피를 위해 엉뚱하게 협의체를 만들어 공을 넘긴 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병의협은 “존재 자체도 부정되어야 할 의·한·정협의체에서 한의사들의 의과의료기기 사용 문제와 함께 의료일원화 관련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며“의료일원화 논의는 자칫 잘못하면 한의사들의 의과의료기기 사용의 빌미를 제공해 줄 수도 있고, 효과와 안전성 측면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한방 치료를 학문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의료일원화 논의는 의료계 내부적으로도 갑론을박이 치열한 사안이므로 먼저 의료계 내부의 의견수렴 및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어느 정도 결론이 도출된 이후에 정부나 한의계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처럼 협의체 비공개 회의에서 회원들에게 내용 공유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의료일원화 논의를 하게 되면, 그 목적과 결과에 대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의계에도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했다.
병의협은 “현대의학은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검증을 통과해야만 환자에게 적용하도록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진다. 현재 사용하는 의료기기들은 이러한 검증을 통과했고, 학문적으로 의학과의 관련성에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면서 “한의학은 아직까지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았고, 의과의료기기와 한의학과의 학문적 관련성도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그냥 의과의료기기만 사용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한의사가 아니라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한방 치료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검증 논의를 전제로 하지 않는 의·한·정협의체는 불필요함을 분명히 하고, 국가가 국민 건강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한의학의 과학적 검증 작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의협은 지난 39대 집행부에서 추무진 회장이 ‘의료일원화’를 찬성하면서 분신임안이 올라온 것을 겪었다. 과거와 같은 전처를 걷게 될지 아니면 회원과 국민을 설득할만한 ‘策’이 있는 것인지 조금 더 지켜볼 문제다.

한편, 의·한·정협의체 다음 8차 회의는 아직 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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