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과 살해사건에도 대책 없어 범죄에 무방비 노출
의료법 개정안 발의, 약사 포함되지 않아 대책마련 시급

최근 연이은 의료인 폭행사건과 관련해 의료계를 비롯한 국회와 지자체 등에서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한창이다.

의료인에 대한 법 개정은 가속화되고 있는 반면, 약사는 제외되고 있어 약사에 대한 관심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개국가의 약사들은 의료기관과 마찬가지로 약국에서 발생한 폭행에 대해서도 가중 처벌을 비롯해 범죄 방지를 위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각해지는 약사 폭행사건
8월 13일 경기지역 약국에서 약사를 향해 폭언과 폭행을 휘둘러 상해를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약국을 방문한 A 씨는 처방약이 구비되지 않아 두 번째 약국을 방문했고 두 번째 약국에서도 처방약이 없자 B 약사에게 폭행을 가하고 상해를 입혔다.

가해자 A 씨는 경찰의 신고로 현장에서 불구속 입건 됐지만 사건진술 도중 관할 보건소에 피해 약사를 ‘조제 거부’로 민원 고발까지 했다.

약국에서의 폭행은 이번 사건뿐만 아니다.

지난 6월 9일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의 한 약국에 40대 괴한이 침입해 약사와 종업원에게 흉기를 휘둘러 종업원이 사망한 사고도 발생했다.

괴한 정 씨는 이날 오후 5시30분경 해당 약국을 찾아가 C 약사와 D 종업원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C 약사와 D 종업원은 정 씨가 사전에 준비해 간 흉기에 수차례 찔렸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D 종업원은 15일 사망하게 됐다.

정 씨는 난동을 부린 이후 경찰에 의해 5시간 만에 붙잡혔다. 정 씨는 2~3년 전 약사로부터 욕을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거짓으로 밝혀졌다. 또한, 약사와 종업원과는 일면식이 없는 사이로 경찰은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포항 약국 살인사건 용의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이어졌다./ 자료=청와대 국민청원

사건 이후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30대 약국 여종업원이 아무 이유 없이 묻지마 살인을 당했다.”며 “피의자 정 씨가 정신과 진료 이력 때문에 감형이 불가피 할 수 있다는 것에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피의자 정씨의 신상정보 공개와 더불어 강력한 처벌을 부탁한다.”고 청원했다.

또 다른 청원자는 “아무 죄 없는 무고한 시민이 수차레 칼에 찔리고 무기력하게 목숨을 잃었다.”며 “감형 없이 강력한 처벌을 받도록 해달라”고 청원했다.

지난해 12월 5일 경기도에서는 졸피뎀을 요구하던 남성이 약사가 거부하자 같은 달 11일 15cm 길이의 접이식 칼을 들고 조제실 안을 기습해 스킬녹스 2통을 갈취하는 일도 발생했다.

범죄 속 불안 커져가는 개국가
이 같이 수시로 약사들이 범죄의 표적으로 떠오르자 약사들의 불안도 커져가고 있다.

복약지도를 하기 위해 환자들을 대면하고 환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낮춘 카운터의 높이는 약사들이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상황이다.

강력 범죄가 아니더라도 폭언과 폭행에 노출된 약사들은 상당수 존재하고 있으며, 1인약국도 많아 언제든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경기도 신도시에서 1인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는 “다른 약국과 약 값이 다르다는 이유로 욕을 하고 던지시는 분들도 있었다.”며 “늦은 밤까지 운영하고 싶어도 유동인구가 적어 너무 늦은 시간까지는 약국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약사는 “약사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캡스(caps) 같은 보안업체 밖에 없다.”며 “사실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대책이 없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성남시와 대구 수성구 등은 다급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한달음시스템’을 도입으며, 전화기 수화기를 7초 정도 떨어뜨려 놓으면 경찰서 상황실에 정보가 자동으로 전달돼 가장 가까운 경찰관(순찰차)이 곧바로 출동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시스템이 도입된 지역이 제한적이고 편의점 등 다른 상점들과 같이 사용되기 때문에 오류도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 약사는 “지부에서 업무협약을 맺지 않으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 또 실제 범죄 상황에서 수화기를 찾고 떨어뜨려 놓을 정신이나 있을지 걱정된다.”며 “편의점이나 다른 곳에서도 사용해 오류로 출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대한약사회(회장 조찬휘)는 약국 내 폭력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엄중한 처벌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정책 추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약사회는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사명을 갖고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약사들의 약국 내 폭력 피해 당사자인 약사는 물론 약사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국민 모두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이에 우리 8만 약사들은 가해자에 대한 일벌백계 차원의 엄중한 처벌은 물론 약국 내 폭력행위 근절을 위한 관련 법령 보완에 정부가 즉각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경기도약사회는 "생명을 지키는 약국에서 일어난 폭력은 단순히 약사 개인을 향한 폭력이 아니라 약국을 이용하는 다른 환자, 나아가 약사가 지탱하고 있는 지역사회 보건 체계를 향한 폭력"이라며 "폭행사건에 대한 사법당국의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법에서 제외된 약사들

▲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7월 4일 의료진 폭행 사건에 대해 피의자의 엄중한 형사적 처벌을 요구했다./ 사진=한국의약통신 DB

대한의사협회의 경우 7월 8일 의사 폭행 근절을 위한 궐기대회를 열었으며, 8월 5일 청와대에서 의료인 폭행 사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의협 방상혁 상근부회장은 “기존에 의료인 폭행에 대한 법은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지속적으로 의사 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며 “벌금형을 징역형으로, 주취자 폭행은 가중 처벌하는 방향으로 개정될 수 있도록 청와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의 적극적인 움직임 때문인지 8월 17일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서울 성북을, 보건복지위)은 주취자의 의료인 폭행시 가중 처벌하는 ‘의료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9일에는 보건복지위원회 신상진 의원이 ‘의료법 및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현행 ‘의료법’ 및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누구든지 의료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의료행위를 행하는 의료인, 간호조무사 및 의료기사 또는 의료행위를 받는 사람을 폭행·협박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이에 신 의원은 의료행위 중인 의료인과 응급의료 종사자를 폭행해 상해를 입히게 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는 5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폭행사건과 관련해 발 빠르게 법안이 발의되고 있는 의료계와 달리 약사에게 가해지는 폭언·폭행을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은 아직까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는 8월 1일 치과의사, 약사 등 보건의료인 보호장치 강화를 시급히 추진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 이기일 보건의료정책관은 “약사 폭행도 마찬가지다. 약사법 개정도 검토하겠다.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의료인 폭행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에도 약사를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나 법안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의료계에 비해 약사의 폭행 문제는 의료계보다는 빈도수가 적고 최근에 지적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국회에 건의하고 의원들과 접촉하고 있다.”며 “약사들이 안심하고 약국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와 대책 마련에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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