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가 “식약처 똑같은 행위, 혀를 내두를 지경”
대학병원, 적극적 대처 통한 혼란 방지 노력 기울여

지난 7월 전국을 뒤흔든 발사르탄 사태가 발생한지 한 달 만에 또 다시 같은 제품에 대한 발암 물질 사건이 일어나면서 의료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환자의 문의와 항의가 병원과 의사를 향하고 있어, 그야말로 ‘곡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8월 6일 오전 국내 수입 또는 제조되는 발사르탄 품목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내 제조 발사르탄에서도 발암 가능 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현재 관련된 22개사 59개 품목에 대해 잠정적으로 판매와 제조, 처방을 제한하도록 했다.

일선 의료기관의 깊어지는 ‘한숨’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의료기관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고혈압 환자들을 대상으로 과연 어떤 약을 믿고 처방을 해야 할지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이 전무하다는 것이 의료계의 설명이다.

특히 식약처의 발표가 월요일 오전에 급작스레 나오면서 이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식약처는 1차 발사르탄 사건 당시에도 ‘발표 시기’에 대해 한 차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번에는 1차 발사르탄 사태와 비교해서 의료기관 내 사전 안내 등이 먼저 이뤄졌음에도 발표하는 시점이 너무나도 성급했다는 지적이다. 일선에 있는 의료기관에는 월요일 오전부터 몰려오는 환자로 인해 2차, 3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

내과 개원의 A씨는 “정부가 사회적 후폭풍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발표부터 했다. 식약처 발표 이후 환자들이 의료기관에 몰려오면서 진료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직원들도 환자들 전화 상담과 응대로 업무에 발이 묶인 상태”라며 막막한 심정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내과 개원의 B씨는 “후속조치를 해야 하는 것은 의사들인데 지금 식약처의 태도는 마치 발표는 했으니 나머지는 의사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과 같다. 이게 말이 되냐”고 토로했다.

이어 “1차 사건이 터지고 겨우 수습하는 과정에서 식약처가 똑같은 행위를 반복한 것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지난 7월 첫 발표도 주말에 이루어진데다 이번 정부의 발표 역시 환자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휴가철 이후 월요일 오전에 이루어져 그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다고 것”이라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후속처치를 일방적으로 일선 의료기관에만 전가할 사항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이어 “심지어 지난달 발암원료가 포함된 고혈압약 복용을 중지하고 새로 처방받은 약이 이번에 또 금지약이 되었다면 더 이상 국민들이 의약품을 신뢰하고 약을 복용할 수 있을지 의문”라고 부연했다.

의협 김정하 의무이사는 “1차사건 당시 의료기관에서는 의협 지침에 따라 환자들에게 연락해 재처방을 실시하고, 본인부담금 면제 등을 실시했다.”며 “해당 제품을 복용하지 않는 고혈압 환자들에게도 문자를 보내 불안감 해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의료기관이 상당수”라고 주장했다.

또 “하지만 사건 발생 초기부터 노력한 의료기관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전혀 없는 상태”라며 “책임져야할 기관은 따로 있는데 부담은 전부 의료기관의 몫인 불합리한 상황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느냐”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대학병원 ‘1차사건’ 때랑 분위기 달라

당황스러운 것은 대형병원도 마찬가지다. 판매 중지 조치를 받은 고혈압치료제를 처방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유인물로 게재했지만 환자들이 발사르탄 성분이 아닌 다른 고혈압약으로 처방해 달라는 민원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1차사건과 달리 이번 사태에서는 일부 대학병원들이 문제가 되는 의약품이 소수 포함하고 있다 보니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을 안심시키려는 대학병원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림대의료원은 “최근 발암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것으로 확인된 국내 제조의 발사르탄을 사용하지 않고 있어 안심해도 된다.”고 환자들을 안심시키고 나섰으며, 고혈압 환자들에게 안내 문자를 전송하고 산하병원 내 안내판 부착, 의료원 홈페이지 알림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내원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사실을 고지하고 있다.

발사르탄 사건은 ‘공동·위탁 생동성 시험’ 때문
한편 의료계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공동·위탁 생동성시험으로 꼽으며 중지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공동·위탁 생동성 시험 중지 ▲제네릭 품질 관리를 보증할 제도 마련 ▲적절한 제네릭 가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교실 이형기 교수는 “2001년 정부가 의약분업을 강행하면서 대체조제 가능한 제네릭 품목과 생동성시험 인프라가 부족한 것을 갑자기 확대하려다가 생긴 문제”라고 밝혔다.

실제로 생동성인정 품목은 2001년 186개에서 2008년에는 5569개로 늘었다. 또한 2002년 34건으로 시작된 공동·위탁 생동 품목은 2004년 1287건까지 증가했다. 또한 이 교수는 현 우리나라 제네릭 시장에 의문을 품었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약가를 통제하면 가격 경쟁 유인이 발생하지 않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약가 통제에도 불구하고 제네릭 판매량 점유율이 높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편향된 제네릭 가격 우대 정책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경쟁 원리와 무관하게 제네릭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며 “일방적인 국민 부담과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의 도덕적 해이와 무임승차 등 제네릭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협 “관계자 문책 강력히 요구”
한편 의협이 이번 발사르탄 의약품에 대한 판매중지 책임을 식약처에 물었다.

의협은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 및 지속적인 사태 발발에 대한 관계자 문책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식약처는 금번 발사르탄 사태의 연이은 재발에 대해 보다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한 바, 복제약 생동성 실험 및 약가 구조와 더불어 식약처의 전면적 개편과 식약처장의 즉각적인 징계 및 사퇴를 정부 당국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이은 발사르탄 사태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1차적으로 체감하는 일선 의료기관이 불편함 없이 환자 진료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정부는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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