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건강 챙겨라’소리 듣지만 지역주민 건강도 소중
중국 동포 위해 회화 익혀 소통, 밤 12시 30분까지 근무
설 연휴 고향을 찾아간 귀성객들로 한산해진 거리, 밤 9시 30분이 훌쩍 넘었지만 환하게 불이 켜진 채 자리를 지키는 한 곳이 있다. 2012년부터 7년째 365일 오전 12시 30분까지 열려있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W-store청와약국’은, 공공심야약국으로서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치의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자신의 삶을 중시하는 시대지만 W-store 청와약국의 송경희 약사는 요즘 시대와는 정 반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약사의 의무감으로 365일 약국 지켜
송 약사는 “늦은 시간까지 약국 문을 열어두는 것은 1974년 개국부터였다. 개국 시 의약분업 전이었기 때문에 늦은 저녁 갑자기 찾아온 환자들을 위해 시작됐던 것”이라며 “다만 7년 전부터 365일 약국 문을 열어 놓는 것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안전상비약이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지만 W-store청와약국은 늦은 시간까지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다음날 숙취 해소를 위한 간장약부터 급성 알레르기가 일어난 아이까지 다양하다.
사실 낮 근무시간에 비하면 손님이 많지는 않아 주변에서는 매출이 얼마나 늘겠냐며 일찍 문을 닫으라고 하지만 송 약사는 약국 문을 일찍 닫는 법이 없다. “약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의무라 생각하고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고 있다.”며 “야근까지 할 정도로 바빠 병원에 못간 직장인이나, 한밤 중 아이가 아파 달려온 엄마 같이 편의점 약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늦은 저녁 평범한 환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취객이 방문 한다던가 카드 단말기에 자신의 카드가 결제되지 않는다고 난동을 부려 경찰에 신고해 해결해야 하는 등 야간 업무가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송 약사는 “약국은 모두에게 열린 곳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만날 수 있죠. 매번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만날 수 없는 직역이 약사입니다.”라며 “약국에 온다는 것은 약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약사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먼저 다가가는 약사로 중국동포 사로잡아
365일 오전 9시부터 오전 12시 30분, 내지 1시까지 약국 문을 여는 생활이 나만의 시간이 없는 단조로운 생활 같지만 송 약사는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은 중국동포들의 거주 밀집지역으로 길거리의 간판들은 중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W-store청와약국 창에 커다랗게 붙여져 있는 药(약)의 모습만 봐도 그렇다. W-store청와약국은 그간 지나온 세월만큼 송 약사와 중국동포들 간의 정도 두터워지게 됐다.
또한, 건강기능식품에 관심이 많은 중국 동포들을 위해 그들의 취향에 맞춰 제품을 들여다 놓고 있다. 중국동포들에게 한약제제가 익숙하기 때문에 각종 환 제품과 홍삼액 등 그들의 입맛에 맞췄다. 홍삼액 경우 명절을 맞아 선물용으로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들여놔 개인 취향에 맞게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건강보조제도 매출에 한몫을 차지한다. 평소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제품을 복약상담 자리 부근에 배치해 방문객들의 시선을 끈다. 다이어트 보조제부터 비타민, 맥주 효모 등 제품들을 진열했으며 한국어가 서툰 동포들을 위해 제품의 간략한 설명과 가격을 적어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도왔다.
중국어로 써 놓지 않아도 판매는 가능하다. 중국어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간단한 회화와 의약품 이름은 중국어로 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이다. 나라도 따뜻한 인사 한마디, 간단한 단어로 대화하면 그들의 마음도 열리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설 명절 당일에도 그녀는 과일들을 약국에 두고 고향으로 가기 어려운 중국동포들에게 나눠주며 정을 나눴다. 이렇게 약사로 44년을 달려온 송 약사의 바람은 처음 개국했을 때와 비교해 변함이 없다.
그는 “내 힘이 다 할 때까지 이 자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것”이라며, “오랜 세월 함께한 이들이 필요로 하는 순간에 항상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