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부자 증세’ 모토로 법인세율 인상 등 검토
상속가액 높은 구간 세 부담 이미 높아, 공제 혜택 필요

▲ 임태석 팀장(삼성생명 헤리티지센터)

정부에서 상속·증여세와 가업상속공제 등에 대해 사실상 ‘증세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일부에서는 ‘부자 증오세’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의 세제 개편 풍향계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조세정책은 ‘부자 증세, 서민 감세’라는 프레임을 내걸고 있다. 박광온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대변인은 지난 6월 29일 조세 개혁 방향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조세 개혁 방향은 그간의 부자 감세 정책으로 왜곡된 세제를 정상화하는 등 조세 정의 실현을 통해 조세의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해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만드는 것이다.”라며 “대기업, 대주주, 고소득자, 자산소득자에 대한 과세는 강화하되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중산·서민층에 대한 세제 지원은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전한 바 있다. 


이 같은 새 정부의 조세정책 포지션은 박근혜 정부의 과거 정책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2014년부터 향후 5년간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을 담은 ‘중장기 조세정책운용계획’에서 법인세 인하, 상속·증여세제 완화, 부동산세 완화 등의 검토를 언급한 바 있다.

특히 기재부는 2015년 중장기 계획에서 “고령화 진전으로 구조적인 소비 부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로의 부의 이전이 필요하다.”며 상속·증여세 완화 기조를 밝히기도 했는데 한마디로 정권 교체에 따라 조세정책의 운영 기조가 널뛰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최근 거론되고 있는 세제 개편 방향은 ‘부자 증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부자 증오세’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합리적인 정책 효과를 찾기보다는 단순히 국민들을 ‘부자’와 ‘서민’으로 나누는 다소 감정적인 이분법으로 세금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우려다. 

◆ 부자 증세 시동…세수 증대 효과는 미미 
문재인 정부는 증세에 대한 국민 부담 등을 의식해 당분간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에 대한 명목세율 인상은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상속·증여세를 정해진 기한 안에 자진 신고를 하면 일정액을 깎아주는 신고세액공제의 축소나 폐지, 가업의 원활한 승계와 중소기업의 고용 유지 여건을 마련해주기 위한 가업상속공제의 축소나 폐지 등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최영록 기재부 세제실장은 지난 6월 26일 진행된 세제 분야 공청회 관련 브리핑에서 “상속·증여세 차원에서 공약으로 나온 부분이나 국정기획위와 협의하는 내용들은 세율보다는 일감몰아주기 과세 강화, 현재 신고세 제도가 적정하느냐 등에 관한 것이다.”라고 전했다.

납세자의 즉각적인 반감을 불러올 수 있는 무리한 세율 인상보다는 신고세액공제 축소 등을 통해 우선 부자 증세에 시동을 건 뒤 중장기적으로 법인세율 인상, 부동산 보유세 현실화 등의 난제들을 검토해 나가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 등 정책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5년간 178조 원의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다. 내년에는 세수 증대 목표가 8조 원으로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 비과세 감면 축소와 세수 자연증가분 등으로 충당이 가능하지만, 2018년부터는 재원 조달 규모가 2배 이상 급증하게 돼 부자 증세의 칼날은 더욱 날카로워질 것으로 예측된다. 

문재인 정부 첫해부터 칼날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이는 상속·증여세는 사실 증세 효과가 미미한 세목이다. 지난 2011~2015년 중 145만6370명이 상속재산을 받았지만 세금을 낸 사람은 2.2%인 3만2330명에 불과했다.

이는 기초공제(2억 원), 일괄공제(5억 원), 배우자공제(30억 원 한도), 자녀공제(1인당 5000만 원) 등으로 인해 일정 규모 이상 상속재산에 대해서만 과세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국세청 등에 따르면 상속세 과세대상 피상속인 수는 2011년 이후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2016년에 전년 대비 12.6% 하락했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증여세수 비중은 0.32%로, 우리나라의 조세 수입 대비 상속·증여세수 비중은 1.28%에 불과하다.

상속·증여세 강화는 세수 측면보다 정치적·정서적 측면이 강하다.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부자들이 좀 더 희생해야 한다는 ‘부자 증오세’ 논리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때 100만 유로 이상의 연봉에 대해 75%의 세금을 부과하는 부유세를 추진했었다. 하지만 세수 증대 효과가 미미하고 기업 등에 부담만 준다는 비판이 일면서 도입 2년 만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참여정부 때 도입된 종합부동산세도 주택 보유 자체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한 일종의 ‘증오세’였다. 종부세는 도입 이후 거센 저항을 겪었는데 2008년 말 세대별 합산 부분이 위헌판결을 받았고, 1주택자에 대해 종부세 부과는 헌법 불합치 판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상속·증여세제에 대한 감정적인 접근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현재 우리나라의 최고 상속세율은 50%이지만 최대주주가 기업을 상속할 때는 65%까지도 세금을 낼 수 있다.”며 “이는 세계적으로 볼 때도 가장 높은 세율인데 상속·증여세를 인상하거나 공제 범위를 더욱 축소시킬 경우 납세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세금을 적게 내려고 하는 등 강한 조세 저항을 보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상속·증여세제 강화 포석 통할까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 6월 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상속·증여세제 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기재부로부터 의뢰받은 연구용역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날 강성훈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과세관청에서 세원 포착을 위해 다양한 과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어 신고세액공제의 필요성이 약화됐다는 점과 우리나라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적용 범위가 광범위하고 공제 규모 역시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정부당국에서 상속·증여세제 강화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상속·증여세 신고세액공제는 상속은 이뤄진 지 6개월 이내, 증여는 이뤄진 지 3개월 이내에 자진 신고하면 내야 할 세금을 깎아주는 것으로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이 10%에서 3% 축소를 주장했지만 입법 과정에서 7% 선으로 조정된 것인데, 이를 다시 3%로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가업상속공제는 가업 영위 기간에 따라 200억~500억 원 한도로 공제해주는 제도이며, 2007년 이후 지속적으로 대상 범위와 공제액이 확대돼 왔다. 제도 도입 시 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지난 2011년에 중소기업에서 매출액 1500억 원 미만 중견기업까지 확대됐고, 2017년에는 매출액 3000억 원 미만 중견기업까지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며 신고세액공제와 가업상속공제는 과세 형평성을 저해하는 주요 제도로 지목을 받았으며, 심지어 폐지론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총 34개국 중 상속·증여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22개국이고, 상속·증여세가 아닌 다른 소득으로 과세하는 국가는 2개국(호주, 캐나다는 자본이득세 부과), 상속·증여세를 과세하지 않는 국가는 10개국(에스토니아, 체코, 오스트리아, 스웨덴,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이스라엘, 멕시코, 뉴질랜드, 노르웨이)이다.  

이날 함께 소개된 주요국의 상속·증여에 대한 세 부담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상속세의 경우 상속가액이 높은 구간에서 세 부담이 주요국에 비해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증여에 대한 세 부담은 우리나라가 일본 다음으로 높았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매년 110만 엔(약 1100만 원)씩 공제해 이를 10년간 합산하면 1100만 엔(약 1억1000만 원)을 공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10년간 직계존속 공제금액이 5000만 원인 한국이 세 부담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각국의 상속·증여세 부담 수준은 공제 제도에서 갈렸다. 미국은 1인당 연간 1만4000달러(약 1570만 원) 이하의 증여는 과세하지 않고 있었고, 상속재산 중 배우자에게 이전된 재산은 전액 공제 혜택을 주고 있었다.

독일은 거주주택을 배우자, 등록된 파트너에게 이전한 경우 상속·증여세를 면제해주고 있었으며, 자녀나 의붓자식, 손자나 손녀에게 유언으로 상속·증여한 거주주택에 대해서는 상속·증여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일본도 부의 원활한 이전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증여세 공제 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매년 110만 엔을 기초공제 해주는 데 더해 주택 취득, 교육 지원 등을 목적으로 증여가 발생한 경우 추가적으로 공제 혜택을 주었다.

또 60세 이상이 된 부모 또는 조부모가 자녀 또는 손주에게 증여를 한 경우에 납세자가 기초공제 제도와 과세이연 제도(자금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 세금 납부를 연기해주는 제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현금 증여에 대해 추가적으로 3만1865유로(약 4120만 원)를 공제해주고 있었으며, 2007년부터 상속재산가액 규모와 상관없이 배우자 간 상속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주요국에서는 상속·증여를 단순히 부의 이전으로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장치 차원에서 각종 공제 제도를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가업상속공제의 경우 현재 우리나라는 매출액 3000억 원 미만 중견기업까지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데 반해 주요국들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제도로 활용하고 있었다.

일본은 상장기업, 자산관리업 등이 아닌 중소기업에 한정하고 있었으며, 프랑스는 적용 대상 기업의 범위에 대한 기준은 없지만 제조업(공업, 수공업), 상업, 농업, 자유업으로 제한하고 해당 업종 기업의 사업용 자산 및 주식의 75%를 비과세하고 있었다.

또 독일은 자산 규모가 9000만 유로(약 1163억3130만 원) 미만까지 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나, 2600만 유로(약 336억680만 원)를 초과할 시에는 상속세 등으로 가업승계가 어려운 경우에만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었다.

삼성생명 WM사업부 임태석 팀장은 “전 세계적으로 보면 상속세를 없애거나 줄여 나가는 곳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는 느낌”이라며 “세법은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데 그때그때의 정치적·정서적 논리로 세법에 자꾸 손을 대는 것은 신뢰만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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