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라는 직업을 갖은 사람을 친구로 둔다는 것은 여러모로 유용한 일이다. 질풍노도의 위험한 시절을 함께한 친구이기에 때문에 제 값을 주고 사기에는 꽤 비싼 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을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친구가 변했다.
요즘 화장실 가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고 또 홈쇼핑에서 ‘면역, 면역’ 하는데 거기에 좋다고 하는 프로바이오틱스가 얼마나 하냐고, 좀 보내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니 친구라고 믿었던 녀석이 부른 가격이 인터넷 최저가랑 별 차이도 없네? 약사 친구가 돈 좀 벌더니 이젠 친구에게도 장사를 하려고 주판을 두드린다는 생각에 잠시 열을 받았지만 혹시 친구가 가격을 착각했을 수도 있으니 “인터넷과 별 차이가 없네?”라고 살짝 운을 띄웠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전화선을 넘어서 나의 절친 약사 친구가 갈등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녀석! 뜨겁기로 따지면 막 내린 아메리카노 같은 우리의 진한 우정이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간 못 보았다고 식었을 리가 없지. 아마도 잠시 후 나의 약사친구는 분명 이내 이성을 찾고 돈보다 소중한 우리의 우정을 위해 인터넷최저가보다 싼 가격을 제시할 것임이 분명하다.
“뭐라고? 너희 약국에 이 약의 재고가 없으니 그냥 인터넷으로 사라고?”
어라? 좀 이상한데? 내 절친 약사친구는 학창시절에도 거짓말을 하면 이렇게 티가 났었는데 왜 나한테 거짓말을 하지? 정말 친구는 세속에 찌들어서 친구에게까지 이윤을 남기고 파는 장사치로 전락했단 말인가? 박봉에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바쁜 월급쟁이 친구는 이제 어디를 가서 약을 사야한단 말인가? 친구가 계속 그런다면 앞으로는 비싸게 제값주고 약을 사야 된다는 생각에 친구가 얄밉기까지 했다. 한 번만 더 찔러보자.
“주변에 다른 약국에 말해서 좀 구해서 주면 안 될까?” 나의 간곡한 요청에 친구는 이내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인사도 안하고 전화를 끊는 내 친구의 약국에 손님이 왔나보구나.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뭐.
이틀 후.
“친구야, 부탁한 약 왔냐? 응, 고맙다. 내가 직접 안가고 사람 시켜도 되지? 근데 얼마 내면 되? 응? 친구야 가격이 왜 또 더 올라갔냐? 다른 약국에서 사온 거라 세금도 있고 그래서 좀 더 줘야 된다고? 야 그럴 거면 미리 말을 했었어야지. 그냥 인터넷으로 사는 것이 낫겠다. 미안한데 혹시 그냥 그거 취소하면 안 될까? 괜히 너한테 자꾸 부탁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언제 술이나 한잔하자야.”
(이 칼럼은 실화에 기초하여 작성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