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보현 서울시약사회 청년약사이사

인구 노령화와 경제인구의 감소, 신의료기술과 신약의 진입으로 향후 건강보험 재원이 고갈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올해 건강보험이 흑자를 내면서 재정 고갈이 예상보다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재정적자 대비를 위한 진료비 지불제도 개혁의 논의가 주춤해졌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전달체계(의료이용체계)의 문제와 행위별수가제의 문제는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고 복지부 차원의 단계적 계획들이 발표된 바 있다. 다만 의사단체의 주치의제도에 대한 지속적인 반대와 우려제기로 인해 특별한 진전은 없는 상태이다.

향후 건강보험 재정 적자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행위별 수가제로만 이뤄진 우리나라의 1차 보건의료체계가 갖는 문제점들을 우선 짚어보고자 한다. 개별 진료행위마다 보상이 이뤄지는 행위별 수가제는 발생비용을 기준으로 보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료비 관리가 어려운 단점을 갖고 있다. 정해진 행위별 수가의 보상 범위 내에서 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에 건강관리, 장기적 관점의 서비스 조정이나 예방 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다.

또한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상급 의료기관이나 타 기관으로 의뢰를 하는데 있어서 수가체계 하의 동기요인이 없고 비용 효과성을 고려한 문지기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한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국가의 경우 일차의료 현장에서 행위별 수가제만을 사용하기보다 여러 지불제도와 결합된 형식으로 활용하거나, 비용청구한도(ceiling)를 정해 불필요한 서비스 제공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와는 상반된 정책 성격을 갖는 인두제의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범위 내에서 해당 환자의 의료적 필요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전제로 일정 금액이 지불 되는 사전지불의 성격을 갖는다. 행위별 수가제에 비해 서비스 제공량을 증대시키려는 경향이 적고 자원사용에 있어서 일차의료의 조정기능의 활성화와 예방활동 강화를 꾀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의 질적 수준 향상 동기가 부족하고 재정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 위험 환자를 기피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경우 환자의 위험도를 보정한 인두제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환자가 등록되어 관리되는 절차가 필요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사 한명 당 등록할 수 있는 환자수를 제한해 서비스 수준을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1차 보건의료체계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인두제 형태의 주치의제도의 도입이 한 번에 이뤄지기는 어렵다. 1차 의료기관 개원의 중 자신의 전문과만을 진료하는 전문의의 비중이 높고 상급 종합병원의 외래를 이용하는 환자도 많기 때문에 주치의 제도 도입을 위한 제공자의 준비와 대상이 되는 환자들의 경험이 사실 상 전무한 상태다.

전국 16개 지역의 20세 이상 성인 중 865명을 연구대상자로 설문조사한 주치의제도의 필요성과 내용에 대한 인식도 조사(가정의학회지, 2006)에 따르면 주치의제도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77.0%이었고, 연령이 증가할수록 필요하다는 응답자도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주치의 역할로는 암이나 만성질환의 조기발견을 위한 건강진단, 예방접종과 스트레스의 관리, 만성질환의 관리 순으로 답하였고 선호하는 주치의의 전문과목은 내과(61.0%), 가정의학과(42.3%)가 가장 많았고, 예방의학과 (14.7%), 산부인과(12.2%) 순이었다. 주치의 서비스에 대한 적정한 지불금액은 연간 12만원의 부담을 가장 선호하였고, 제공받기 원하는 주치의 서비스로는 가족포함 서비스, 전화상담 서비스, 가정방문 서비스 등을 원하였다.

대학병원 교수를 주치의로 선호한 군은 45.8%, 전문의는 23.9%, 2년 수련 받은 의사는 14.5%, 의사면허만 취득한 의사 혹은 1년 인턴과정을 마친 의사는 15%였다. 주치의가 소속되기를 희망하는 기관으로 대학병원이 52.6%, 중소병원이 16.4%, 의원이 15.1% 순이고 15.8%의 응답자는 상관이 없다고 응답했다.

비록 10년 전의 조사결과이지만 그때 당시의 진료비 지불제도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을 고려한다면 이 보고서의 정책적 함의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주치의제도에 대해서 긍정적 반응이 생각보다 높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해당 조사의 경우 주치의 등록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필요성’을 물어 그 이전의 연구결과보다 높은 수치를 나타냈지만 ‘주치의 제도’가 갖는 예방과 건강관리에 대한 설문 대상자들의 기대를 엿볼 수 있다.

둘째로, 현재의 의료체계에서의 갑작스런 주치의제도 시행은 ‘서비스 질 저하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대학병원 교수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고, 상급조합병원에 주치의가 소속되길 가장 희망한다는 점에서 의무적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1차 진료를 받아야하는 제도를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정치적 장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1차 의료 진료비 지불제도 개선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이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그곳에 다다를 수 있을까? 재정 안정과 관리, 자원의 효율적 이용, 환자의 본인부담의 경감, 예방과 관리 위주로의 의료기관과 환자의 관계설정을 목표로 삼는다면, 1차 의료체계에서 주치의제도를 시행하고 비용청구 한도를 정한 행위별 수가제 와 차등수가제 체계로 우선적으로 가야한다.

이 같은 체계가 자리 잡은 이후에 여건 조성과 정책적 필요에 따라 인두제를 기반으로 한 주치의제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풀어야 할 단계적 과제를 나열해보고자 한다.

첫째, 1차 의료기관에 등록하여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는 국민들의 경험이 필요하다. 초기에 의무적인 강제 시행으로 1개의 의료기관을 선택, 등록하여 관리 받는 시스템 보다 특정 질환 군을 대상으로 자발적인 의료기관 등록을 이끌어내도록 해야 한다. 또는 치과 주치의제도의 시행도 시도해볼 수 있다.

2011년 보건복지부에서 선택의원제 도입계획을 발표한바 있다. 고혈압,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1차 의료기관을 선택하도록 하고 등록 절차 후 해당 기관에 특정기간이상 꾸준히 방문하였을 때 본인부담금을 경감해주는 방식이다. 인두제 성격의 주치의 제도와 같이 서비스 행위량을 감소시키는 유인은 만들지 못하지만 특정 의료기관을 등록하여 꾸준히 치료를 받는다는 점에서 주치의 제도에 대한 경험과 여론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다.

또한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1차 의료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예방과 관리 서비스의 강화의 측면에서 해당 환자의 만성질환 관리 상태가 좋고 높은 순응도를 보이는 경우 의사에게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환자에게도 일정정도의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여 환자와 의사 모두가 건강관리에 보다 신경을 쓸 수 있도록 유도해 실제 건강 수준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물론 주치의제도 도입을 위한 단계적 계획임을 지적하는 의료계의 반발로 크게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지역차원에서 고혈압, 당뇨 사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것을 바탕으로 점차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 향후에 대상 질환군을 보다 확대하고, 상급의료기관 혹은 타 의료기관으로의 환자의뢰 및 협진체계를 만들어 1차 의료기관의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묶음 진료(bundled payment) 방식으로 등록된 1차 의료기관에서 타 기관에 의뢰를 할 때 기존의 환자정보와 소견을 공유하고 협진 할 수 있도록하고 이에 따른 묽음 보상체계를 만들어 해당 타 기관에서의 치료를 마치고 다시 1차 의료기관에서 지속적인 처치와 약물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 의료 인력과 의료기관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내과, 가정의학과을 중심으로 등록 가능기관을 설정하고 향후에 일반의, 타 전문과 진료의에게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한 후에 등록 가능기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자의 필요에 따라 진료과를 선택하여 다니는 방식을 당분간 유지하되 등록 가능기관으로 등록하고 등록된 환자를 진료했을 때 보다 많은 보상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등록기관으로의 변경에 대한 동기를 만들어야한다.

또한 가정의학과 인력의 확보를 위해 전문의 과별 인력기준을 설정하고 대학교육과 전문의 교육과정에 관련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 지역별로 인구와 거리 등을 고려하여 필요한 등록의료기관을 추정하고 도외지의 경우 추가적인 지원제도를 만들거나 공단 차원의 건물매입과 임대로 등록의료기관의 유치를 유도해야 한다.

셋째로,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을 위해 상급종합병원의 외래진료를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1차,2차,3차 의료기관과의 전자 의뢰체계 혹은 권역별 커플링 제도를 만들어 통합적으로 환자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차 의료기관과 연계된 지역 거점 2차, 3차 의료기관이 통합적인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고 검사의뢰, 입원, 치료 의뢰를 전산을 통해 전달 및 예약하도록 해야 한다.

등록된 환자의 기록을 연계된 의료기관에서 의뢰받은 의사가 열람 할 수 있도록 해 환자의 불편을 없애고 보다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한다. 이와 함께 의료시설이 지역과 권역별로 적절히 공급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의료와 관련된 사회복지 시스템도 통합시스템과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넷째로, 비용효과적인 진료를 유도하고 지역별 서비스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 진료지침을 개발해야한다. 사용하는 약물과 치료과정의 서비스 차이가 향후 제도에 대한 순응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표준 진료지침을 통해 서비스의 질 강화, 치료에 대한 평가, 표준화된 서비스 제공을 꽤하고 보다 비용효과적인 진료를 유도해야한다.

다섯째로,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여건이 자리 잡힌 후 진료비 지불에 대한 개혁과제를 설정해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상급의료기관이 입원위주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DRG 기반의 포괄수가제를 확대해 나가는데 보다 용이하다. 간병환자 수와 간호 인력을 연계한 간호, 간병 수가를 신설하고 분리하여 비 수익부서의 고용감소나 질적 저하를 방지하도록 해야 한다. 1차 의료기관의 경우 등록환자 수의 기준을 정하고 위험도를 보정하여 인두제 방식으로 일부지급하고 표준진료지침과 연계된 평가와 예방 관리 성과를 기준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토록 해야 한다. 행위별 수가도 부분적으로 반영하여 외래 진료횟수에 따라 약간의 추가 수가를 지급해 과도한 병원의뢰를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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