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영 약사(전북 군산시 아이약국)

23살에서 24살로 넘어가는 시기에 옛날 사진첩을 보다가 20여 년 전의 어린 내가 오래된 수동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결국 망치로 써도 될 만큼 튼튼한, 사진 속의 낡은 수동카메라를 다시 찾아내어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손이 많이 갔다. 지금 폰카를 찍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찍을 수 없었다. 필름의 개수가 정해져 있어서 36장을 찍으면 필름 한판이 끝나버린다. 한 장을 찍더라도 구도, 빛, 심도, 심지어 태양의 높이 까지 고민해서 찍다보니 정성이 안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 디카 시대를 지나서 폰카의 대중화시대에 들어서면서 더 이상 사진 한 장에 정성을 들일 필요가 없어졌다. 찍고 또 찍고 또 찍어도 메모리를 지우면 끝이다. 마구 마구 찍고 지운다. 사진이 쉬워졌다. 비싼 카메라와 렌즈, 기타 장비들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사진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그만큼 사진이라는 도구가 널리 퍼졌으나 사진의 의미가 많이 퇴색이 되었다.

한해에 천억 원 대에 해당되는 약이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이 통계는 약국의 폐의약품을 토대로 만든 것이기에 실제로 가정집에서 그냥 버리는 것까지 하면 금액이 더 커질 것이다. 마치 휴대폰 앨범 속에 의미 없는 사진들처럼 집집마다 서랍 속이나 가방 한구석에 의미 없는 약들이 널려있다. 심지어 약사인 나의 집에서도 이런 약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일반 사람들의 가정에는 더 많은 양의 의약품들이 대청소날 쓰레기통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쓰레기통에 버려져야만 낭비일까? 의미 없이 들어가는 진통제, 복약지도를 하다보면 굳이 아픈 곳도 없는데 몇 달 전 두통을 한번 호소했더니 나왔던 진통제가 몇 달째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경우도 많다. 의미 없는 소화제, 심지어 비급여로 나오는 소화제들. 먹어서 없어지는 이런 약들도 일종의 폐약이 아닌가? 이러한 약들에는 환자의 건강, 나이, 위장상태, 통증에 대한 정성이 들어있지 않다. 사진을 한 장 찍을 때에도 정성을 들이는데 사람이, 그것도 아픈 사람이 먹는 약에 정성은커녕 경제적 의도가 보이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먹는 사람에게도 문제는 있다. 폰카 찍듯 너무 쉽게 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2일분이 나와도 3일분을 더 추가 시킨다. 짬뽕 먹다가 공기밥 추가하듯 쉽다. 본인 부담금 자체가 얼마 안 되고, 심지어 약이 더 추가되어도 기본금만 내는 사람도 있기에 먹지도 않을 약을 무더기로 받아놓는다. 약 먹는 것도 일이다. 하루 세 번 먹는 것도 정성을 들여서 먹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받아놓은 약에 무슨 정성이 있겠는가?

사진은 찍고 지우기라도 하면 되지, 그렇게 받아놓은 약이 갈 곳은 쓰레기통 밖에 없다. 분명히 무엇인가 여러 방면에서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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