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태석 팀장(삼성생명 헤리티지센터)

정부, 신탁업법 개정 착수…美·日서는 일찍 발달
고령화시대 맞춤 상품 활성화 예상, 부동산 상속도 도움

저금리·고령화 시대에 종합자산관리를 책임질 주역으로 신탁(信託)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부동산 자산의 상속·증여 난제를 푸는데 있어 신탁의 활용은 ‘신의 한 수’로 여겨지고 있다.

2017년을 기점으로 신탁업이 새로운 발돋움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월 12일 ‘신탁업 제도 전면 개편’을 5대 핵심 추진 과제에 포함시켜 신탁을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기 때문이다. 정부는 실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신탁업법 제정안을 마련한 뒤 오는 10월경 정기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저금리와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일찌감치 신탁 제도를 발전시켰던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의 신탁업은 금융투자업을 다루는 자본시장법의 굴레에 묶여 느린 게걸음 행보를 보여 왔다. 보험사, 은행과 증권사가 고객의 금전 일부를 맡아 자산을 불려주는 특정금전신탁(MMT)에 지나치게 편중돼 단순 운용형인 특정금전신탁, 정기예금형이 전체 신탁기금 운용에서 절반(44%) 가까이를 차지했을 정도다.
일반적인 금전이나 부동산 외에 보험금청구권이나 담보권, 증권, 부채, 영업(사업), 임차권 등 개인의 다양한 자산을 수탁해 장기자산관리형(유언, 상속·증여), 복지형(장애인신탁) 등 신탁 상품의 활용도를 넓혀 온 미국이나 일본과는 멀어도 한참 먼 행보였다.

뒤늦게나마 정부에서 신탁 제도를 손보겠다고 밝힌 것은 위탁자 생전에는 위탁자를 위해, 사후에는 배우자나 자녀 등 지정된 자를 위해 자산을 관리, 운용해 수익을 배분할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이나 관리 능력이 부족한 자녀를 위해 보험금 관리 후 장기에 걸쳐 수익금을 배분해줄 수 있는 ‘생명보험청구권 유언신탁’, 치매 치료나 요양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치매요양신탁’ 등 고령화 시대에 유용한 맞춤형 신탁 상품을 적극 활성화하겠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특히 신탁 상품의 활용은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고, 상속·증여 시 가치평가나 배분이 쉽지 않아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는 부동산의 관리와 상속에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 상속 난제 부동산, 신탁을 만나다 
최근까지도 부동산은 개인의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속 및 증여 자산 유형 중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이는 자산이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의 ‘2016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 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한국 부자들의 총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1.4%로 여전히 가장 높다. 2012년 59.5%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자산이나 연령이 높을수록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 구조를 보이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총 자산 규모가 50억 원 미만인 경우 부동산의 비중은 48.6%였지만 50억~100억 원은 54.5%, 100억 원 이상은 60.7%로 상승했고, 연령별 자산 구조에서도 40대 이하는 부동산 자산 비중이 46.9%였지만 50대와 60대 이상은 각각 51.5%와 53.4%로 완만한 오름세를 보여줬다.

이처럼 부동산 자산 비중이 여전히 높은 것은 저금리 상황에서 가장 수익률이 높은 투자처로 ‘국내 부동산’(32.5%)을 ‘국내 주식’(18.8%)이나 ‘금 등의 실물’(10.0%)보다 더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산가들은 상속 및 증여 자산 유형에서 ‘부동산’에 대한 활용 의향과 관련해 85.2%로 가장 높은 답변을 내놓았다. 이는 전년 대비 3.6%포인트 감소한 수치이지만 여전히 부동산을 통해 부를 대물림하겠다는 의지는 강하다.

상속·증여에서 ‘부동산신탁’, ‘재산신탁’ 등 신탁을 활용하겠다는 의지는 증가하는 추세다. 보유 자산을 재산신탁을 통해 상속이나 증여하겠다는 응답은 13.5%로 전년 대비 6.9%포인트 높아졌고, 부동산신탁을 활용하겠다는 응답도 지난해에 비해 1.2%포인트 상승한 10.4%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측은 “2012년 신탁법 개정을 통해 금전신탁 등 투자 수단으로만 활용되던 신탁이 유언대용신탁과 같이 상속 등의 민사 영역에서도 가능해짐에 따라 상속 및 증여 수단으로써 신탁의 활용 비중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사실 상속재산으로서 부동산은 금융 자산과는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우선 상속 자산 평가에서 부동산과 금융 자산 모두 시가가 원칙이지만 부동산의 경우 개별 부동산별로 가치평가가 쉽지 않아 공시지가 등 보충적 평가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돼 상속·증여세 측면에서 유리하다.

다만 부동산은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야 하고, 취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상속 이전이나 보유에 따른 세금이 추가될 수 있다. 또 부동산은 물리적 분할이 쉽지 않고 운영관리에 대한 부담이 높으며,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상속·증여 시 세금을 납부할 재원을 마련하기가 수월치 않다.

이 때문에 부동산은 상속자들이 많은 경우 상속재산 분할 과정에서 갈등을 겪거나, 상속 개시 후 상속 등기나 보유 관리, 매각 단계에서 크고 작은 분쟁을 겪을 여지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성생명 WM사업부 헤리티지센터 임태석 팀장은 “부동산 자산은 상속이 개시돼 가족 간 공유 등기를 한 이후에도 관리 주체, 관리 운영 방법, 수익 배분에 대한 의견 차이, 관리 부재 시 매각 여부에 대한 합의에 지속적으로 갈등이 있을 수 있다”며 “여유를 갖고 매각하는 경우보다 가격 측면에서 불리해질 수 있으며 결국 공유자들의 손해로 귀결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조언했다.

부동산의 상속 전후 신탁의 활용이 고민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부동산은 취득할 때부터 상속과 운영 관리 문제의 고민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해당 부동산을 어떻게 상속할지, 상속인 간 이해 조정과 투명한 자금 관리와 분배,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 이전과 부동산의 관리 운영과 임대 관리 등 산적한 숙제를 풀어야 피상속인 사후 상속인 간에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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