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공단 제도 개선 합의 나섰지만 기존과 다를 바 없어
공단 반응 싸늘…"명예 실추하면 법적 대응도 검토" 주장

건보공단의 현지조사를 받은 안산 비뇨기과 원장이 자살한지 5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공단의 현지 확인 대상에 오른 강릉 비뇨기과 원장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의료계의 요구로 올해부터 현지조사 지침이 개선되었지만, 이제는 아예 현지조사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이 같은 여론에 공단은 의사협회와 협상에 나섰지만 기존과 다를 바 없는 결과만 나왔다, 오히려 공단은 “공단의 명예를 실추시키면 법적 대응도 검토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1인 시위 및 성명서 배포 잇따라

가장 먼저 공단의 방문확인 제도 폐지를 요구한 대한비뇨기과의사회(회장 어홍선)는 지난 1월 5일 여의도에 위치한 건보공단 서울지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실시했다.

이날 어홍선 회장은 "공단의 현지확인제도가 폐지되지 않으면 앞으로 비뇨기과의사회 회원이 건보공단의 현지확인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어 회장은 "요양기관 현지확인은 서류제출만으로 가능하며, 문제가 있다면 복지부의 현지조사를 실시하면 된다"며 "공단의 방문확인은 이중규제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또 "강압적이고 협박에 가까운 공단의 현지확인제도는 공권력의 폭력이다. 즉각 폐지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10일에도 어홍선 회장과 도성훈 정책기획이사는 오전 8시부터 1인 시위를 진행했고, 이날 현장에는 추무진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김숙희 서울시의사회 회장, 노만희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 등이 방문해 지지의 의사를 표명했다.

특히 이날 방문한 의료계 인사 일행은 공단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담당자를 면담하고 향후 이 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기 위한 방안과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한편 대한개원의협의회는 6일 성명서를 통해 ▲의료인의 자율적 진료건 보장 ▲현지조사권 일원화 ▲현지조사 지침 개정안의 독소조항 폐지 ▲사전계도 시행 ▲공단 확인제도 전면 폐지 등을 주장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도 나섰다. 의사회는 “작년 여름 안산 비뇨기과 원장이 현지조사 후 자살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 29일 의료인이 건보공단 현지조사 중 자살한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 책임자 처벌과 함께 관련제도 폐지를 요구한다"고 9일 성명서를 배포했다.

의사회는 "연이은 의료인 자살 사건은 현 실사제도가 불공평, 부당하게 시행되며 권력을 쥔 행정당국이 의료인에게 무리한 강압적 부담을 가할 수 있다는 회피할 수 없는 산 증거"라고 강조했다.

대한일반과개원의협의회는 현지확인제도 철폐는 물론 공단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대한일반과개원의협의회는 10일 성명서를 통해 "건강보험 진료의 심사평가와 이에 따른 조사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관련법을 준수하며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건보공단은 그 법률적 근거도 모호한 현지확인이나 수진자 조회라는 미명 하에, 마치 흉악범을 다루는 사법기관인양 강압적인 조사를 통해 의사들의 진료를 훼방하고 있다"며 "수많은 인권 침해를 일으키고, 나아가 이런 작태들은 국민과 의료진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려 국가적인 손해까지 야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우리는 더 이상 건보공단의 적반하장식 만행을 두고 볼 수 없다. 이에 정부와 국회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며 ▲갑질 조사의 장본인들의 엄중한 처벌 ▲위헌적 불법적인 현지확인과 수진자 조회 철폐 및 조사 기관 일원화 ▲건강보험 현지조사 시 적법한 절차 준수, 헌법에 보장된 인권 및 진료권 보장 등을 제시했다.

같은 날 대한정형외과의사회는 현지조사 지침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의사회는 "싸구려 약 처방을 강요하는 심평원의 지표연동자율개선제 미개선 기관을 대상으로 현지조사를 의뢰하는 등 불합리한 부분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며 "현지조사위원회 구성도 위원 12명 중 의협 대표는 1명에 불과해 의료전문가인 의사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될 수 없도록 했다"고 비판했다.

또 같은 날 대한의원협회는 전 의료계가 공단의 현지확인을 거부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의원협회는 "공단확인을 거부하고 실사를 받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라며 "공단확인을 받을 이유가 없고, 의료계가 전면적으로 공단확인을 거부하는 경우 그 모든 건을 복지부가 현지조사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비난했다.

공단 “해당 의원 방문한 사실 없어”

한편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건보공단노조가 자체 조사를 실시한 결과, 공단 직원 중 해당 의원(강릉)을 방문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조는 “의협과 비뇨기과의사회 등 일부 의사단체에서는 건보공단 직원이 권한 밖의 처벌을 거론하고 고압적 태도를 취해 자살로 내몰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건보공단의 어떤 직원도 해당 의원을 방문한 사실은 없었으며, 자료제출만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노조에 따르면 해당 비뇨기과의원장은 지난해 10월 19일 동료 의사인 Y마취통증의학과의원장(참관1)과 S내과의원장(참관2)을 참관인으로 대동해 공단지사를 방문했다. 대동한 참관1 의사가 관련 내용을 질의했고, 공단지사직원은 민원인의 진료확인 요청을 접수받아 현지확인을 위한 자료를 요청하게 되었다는 등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

공단지사 방문시 해당 원장은 한 마디의 질의가 없었고, 함께 방문한 의사인 Y마취통증의학과의원장만 방문확인에 대해 질의했다.

이에 노조는 “이같은 상황에서 질의도 하지 않은 해당 K원장에게 건보공단 직원의 고압적 태도나 복지부 현지조사 의뢰 협박 등의 정황은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노동조합은 의료계에서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다면 당시 참관인으로 지사를 방문했던 두명의 의사와 그 상담을 맡았던 공단직원 등에 대한 삼자 대면도 당연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끊는 데에는 매우 복합적인 요소가 오랜 기간 작용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라면서 “한 사람의 애통한 죽음을 의료계 일부에서 보험자인 건보공단과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는 수단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비난 솟구치는 여론에 협상 나선 공단, 그 결과는?

공단 방문확인 폐지 여론에 공단은 1월 10일 의협을 찾았다. 이는 전날 오후 공단이 간담회를 취소한다고 의협 측에 통보했지만 이번 간담회를 취소하면 더 이상 대화는 없다는 의협의 태도에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날 의협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요양기관의 협의 없이는 건보공단의 방문확인을 금지한다는 대한의사협회-건보공단 간 합의가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간담회 자리에는 추무진 의협 회장, 김숙희 부회장(서울시의사회장), 임익강 보험이사, 장미승 급여상임이사, 이종남 수가급여부장, 조용기 급여관리실장, 서일홍 급여관리실장 등이 참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의협 김주현 대변인은 “의사 회원이 체감할 수 있는 요양기관 방문확인 표준 운영 지침 개선을 위해 공단과 만남을 가졌다”며 “두 회원의 자살 사건에 대해 공단은 안타까움과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의협에 따르면 공단은 앞으로 요양기관이 협의한 경우에만 방문확인을 실시하고, 요양기관이 자료제출 및 방문확인을 거부하거나 현지조사를 요청하는 의견을 표명한 경우 자료제출 및 방문확인을 중단한다고 했다.

또 처벌보다 계도 목적으로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자료제출 요청 및 방문확인으로 인한 요양기관의 심리적 압박 해소를 위해 의협 및 시도의사회 등과 협력하여 다빈도 환수 사례 등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한다. 수진자 조회 등 향후 방문확인 제도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와 관련 의협 추무진 회장은 “협의 내용을 공단이 지키지 않으면 공단의 방문확인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단언했다.

한편 사실 확인을 위해 공단 관계자와 통화를 한 결과 공단 측에서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건보공단 급여관리실 구자춘 급여조사 1부장은 “자리에서 오갔던 내용들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간담회에 참석한 공단 관계자들은 의협의 요구 사항을 청취하고 검토해보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한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보공단 노조에서 조사한 결과는 사실로 밝혀졌다. 방문도 하지 않았는데 공단의 방문확인이 강압적이었다는 의료계 입장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자춘 부장은 “이를 악용해서 마치 방문조사 때문에 사망하게 된 것처럼 주장하면 법적 대응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단 방문확인 페지, 법적으로 불가능

아니나 다를까 “요양기관의 협의 없이는 건보공단의 방문확인을 금지한다”는 요양기관 방문확인 제도 개선 관련 합의안 내용은 사실상 기존 제도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공단의 방문확인제도 폐지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공단 입장이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건보공단 관계자는 “현재도 요양기관 방문확인 요청을 거부하면 복지부 현지조사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공단의 방문확인이 강압적이었다는 것을 시인하느냐는 질문에 관계자는 “절대 강압적이지 않다.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며 “이전에도 공단의 요양기관 방문확인 요청을 2회 이상 거부하면 무리하게 방문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의료계에서 지속적으로 방문확인을 거부한다면 사실상 방문확인제도는 무력화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공단은 “두 단체간 신뢰가 있는데 그런(고의적으로 거부하는) 일이 있겠느냐. 또 복지부 현지조사로 갈 경우 (요양기관에 대한)행정적 제제가 더 크다”라고 말했다.

공단 노조 또한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건보공단 노조(위원장 황병래)는 1월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단의 방문확인과 복지부 현지조사는 법률상 다른 업무”라고 발표했다.

노조에 따르면 건보공단이 수행하는 ‘요양기관 방문확인’은 건강보험법(이하, 법) 제57조제1항에 주어진「부당이득징수권」을 수행하는 절차이다. 즉 ‘사위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비용(진료·약제비 등)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해 법제96조(자료의 제공)에 따라 해당기관에 필요한 자료의 제공을 요청, 착오․부당 확인 시, 그 급여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환수하는 업무이다.

이 제도는 병원 등 요양기관의 부당청구금액이 법제98조 및 제99조의 행정처분(업무정지 및 과징금)기준 충족시, 복지부장관에게 현지조사를 의뢰토록 규정되어 있으며, 현지조사 제도운영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법률적 보완단계인 동시에 요양기관으로부터 환수한 부당이득금을 국민(가입자나 피부양자)에게 돌려주는 법제57조제5항의 ‘본인부담 환급금제도’와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다.

가입자인 국민이 부당청구 요양기관으로부터 피해를 본 경우, 요양기관의 부당청구 사실을 독자적인 견지에서 조사해 이를 원상회복시켜야 할 권한과 책임이 보험자인 건보공단에 법률상 부여되어 있음을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복지부의 현지조사는 조사주체인 복지부가 요양기관의 인허가권을 갖는 감독관청으로 서기 때문에 요양기관 당사자의 동의여부를 불문하고 진행된다. 법제97조(보고와 검사)에 의거, 복지부장관이 요양기관에 대해 보고 또는 서류제출을 명하거나 소속공무원으로 하여금 관계인에게 질문하거나 관계서류 등을 검사하게 하는 공권력 행위라는 것.

따라서 복지부 현지조사는 부당혐의가 높아 행정처분이 예상되는 기관에 한해 시행되며, 조사범위 제한없이 보험급여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질문․검사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노조는 “건보공단의 방문확인과 복지부의 현지조사는 법률로 보장된 각 기관의 고유업무로 폐지하거나 일원화할 수 없다”며 “만약 일부 의사단체의 주장대로 방문확인과 현지조사가 일원화된다면 건보공단의 방문확인으로 파악된 연간 8,000여 단순 착오·부당청구기관 모두가 현지조사 대상기관이 됨으로써 해당기관의 심적 부담은 오히려 배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 관계자는 “건보공단이 건보법상 가입자인 국민을 대리하는 보험자로서 민원인의 신고 등으로 요양기관의 부당청구가 의심되는 경우 이를 조사해야 하고, 조사결과 허위·부당청구가 확인된 경우 부당이득의 환수권한이 법적으로 공단에 주어져 있는 이상 언제든지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부 압박을 지속하고 있는 의사 단체에는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는 주장도 언급했다.

노조 조창호 정책기획실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단의 방문확인은 보험자의 고유 임무이다. 이를 무력화시키고, 공단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성명서가 계속해서 배포된다면 법적 대응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벌과 관련해서도 “부당진료비가 확인됐으면 환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다만 공단 차원에서 결과에 대해 해당 요양기관에 설명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저작권자 © 한국의약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