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태석 팀장(삼성생명 헤리티지센터)

월납저축성보험 비과세 한도까지 1억 원으로 책정
3년 동안 수차례 국민투표 실시한 세종대왕 본 받아야

기획재정부는 지난 2016년 12월 2일 2017년 세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세법개정안은 보험설계사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11월 30일 국회 본회의 의결사항이라고 발표된 내용 중 ‘저축성보험 비과세 한도 축소’는 전혀 뜻밖이었다. 광화문에서 촛불의 민심이 청와대를 향하고 있는 사이 여의도에서는 또 다른 불통의 신화가 보험업계 종사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일시납 저축성보험의 비과세 한도를 2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추는 것이 ‘부자증세’라는 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게다가 월납 저축성보험의 비과세 한도까지 1억원으로 책정해서 10년간 납입할 경우 83만원을 초과하는 보험의 과세를 확정하는 게 증세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납득할 만한 소통의 과정도 없었다. 나라에서 정하니 백성은 그저 따라오라는 봉건주의식 의사결정이 여의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가 청와대의 불통을 비판하던 이들이 그곳에서 민심을 듣기는 했던 것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1년 수입이 4000만원 미만인 직장인들이 80%에 육박하는데,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책 입안이 과연 부자증세 취지에 합당하기나 한 것인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고액국세체납자 누적액 10위 안의 체납세액에도 미치지 못하는 증세효과를, 그것도 그 효과가 10년 이후에나 발생할 수 있는 비과세축소 의결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

불현듯 요즘 대세 강사 중 한 명이 떠오른다.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주는 설민석 강사다. 한 TV프로그램에서 그가 세종대왕에 대해 강의한 내용 중 세종의 조세정책에 대한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혁신적인 조세개혁을 통해 조선의 경제적 근간을 마련할 수 있었던 세종의 조세정책 결정 과정은 어떠했을까? 현군이자 성왕이니 당연히 합리적인 개혁안을 마련했을 테고 그대로 통과시키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조선은 봉건왕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SNS도 인터넷 광역망도 없던 시대에 세종대왕은 세제개혁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그것도 자그마치 3년 동안이나 수차례에 걸쳐 진행한다. 당시 조선의 백성이 70여만명이었는데 그 중 20여만명의 의견을 물었다. 조선시대였으니 노비와 천민 계층, 미성년자 등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백성이 투표를 한 것이다. 이렇게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다음 정책을 결정했다. ‘묻고 또 묻고 더 물어보라 했다.’ 설민석 강사의 재치 있는 멘트가 단순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전화도 없었다. 하지만 정부정책을 입안하는 국회의원에게는 민간조사기관에 의뢰할만한 책정된 예산이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거두어들여 합리적이고 빠르게 여론을 수렴하는 데 쓰라고 부여된 것이다. 돈도 있고 시간도 있었다. 적어도 조선시대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누구에게 물어보았는가? 어떤 민초의 소리를 들었는가? 어떤 수단을 동원해 들으려 했던가?

탁상공론. 의사소통 수단이 후진적일 때, 시대가 소통이 아닌 불통으로 일관할 때에나 있을 법한 정치행태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등에 성난 민심이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려내려 하는 것이겠는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 때문이다. 그 분노는 ‘배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믿고 뽑았고 민심을 담아 올바른 정치를 해줄 것이라 믿었던 순수함을 배신했기 때문에, 생활고를 걱정해야 할 이 때에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이다. 누가 감히 민심을 천심이라 하는가?

누가 21세기 대한민국을 600년 전의 봉건왕조 조선보다 낫다 할 것인가? 전 세계에서 최강의 IT 강국 중 하나라는 대한민국에서 탁상공론이 웬말인가? 묻고 싶다. 진심을 담아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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