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의료계에 큰 화두가 되고 있다. 의료진을 대신할 인공지능의 역할은 어디까지이며, 의사라는 직업이 사라질지,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오승민 교수는 의료윤리연구회 주관으로 12월 5일 열린 강의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정의의 원칙’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공지능 시대에서 의료인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인공지능 시대의 정의란?
정의의 개념은 인류가 지닌 “상상의 질서”로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다. 약 4천 년 전, 함무라비 법전이 쓰인 시대의 정의는 눈을 멀게 하게 한 사람의 눈도 멀게 하는 것이었지 않나. 누군가와 정의에 대해서 대화할 때는 내가 생각하는 정의의 개념과 상대방이 생각하는 정의의 개념이 무엇인지부터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자, 3D 프린팅 등, 바이오, 디지털, 나노 가술의 융합이 가져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의 정의 또한 현재의 정의 개념과는 달라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정의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정의가 왜 중요한가?’이다. 우리가 옳고 그름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이유는 바로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인공 지능 시대에도 결국 반성과 책임의 주체는 인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성과 책임, 이 두 단어가 인공 지능 시대에서의 정의를 생각하는 화두가 되길 원한다.

인공지능 시대, 의료계에 어떤 긍정적 변화가 올거라 생각하는가?
바이오와 디지털, 그리고 나노 기술의 융합. 당연히 의료기술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정적 변화라고 예상하는 부분은?
의료기술의 발달은 항상 윤리적인 문제를 함께 가져온다. 의료계에서 정의를 현실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이유는 많은 신부전 환자들 중에서 누구에게 제한된 신장투석기기를 사용하게 해야 하나이다. 배분 정의 또는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 보건의료의 공정한 분배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현재 전세계의 건강불평등은 줄어들 것인가, 아니면 더 심해질 것인가. 안타깝게도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대량 실직과 불평등 심화의 시대이다. 비율로 보면 기존 일자리 4개가 사라질 때, 4차 산업혁명에 관련된 고숙련 기술 일자리 1개가 새로 생길 뿐이다. 2030년에는 기존의 20억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인공 지능에 의한 신기술로 대체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소득국과 저소득국, 부자와 빈곤층,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 등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너무 부정적인 관점이 아닌가 하지만, 브렉시트나 트럼프의 당선 등 이제는 각자 자기 살 길 챙기기 바쁜 시대로 접어들었고, 인공 지능을 이용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의 차이는 갈수록 더욱 벌어질 것이다. 당연히 건강불평등 또한 악화될 것이다.

의사협회, 병원협회, 정부 등 관계 당국에 희망하는 부분이 있는지?
그 어떤 전문가 집단도 의료인들만큼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더 자주 다가가지 못한다. 이는 의료인들의 특권이고 사회적인 불평등이 건강의 악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 이 특권에 대한 책임이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그저 일회적인 임시적 방편이 될 수도 있지만,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정의와 공동선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선한 사마리아인”을 강조하는 프로페셔널리즘 교육 또한 “정의로운 사마리아인”으로 변화해야 한다. 예전에는 능력과 자비만 갖추면 좋은 의사였다. 많은 의료인문학 교육도 환자 이해, 소통 등 의료인의 자비로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사마리아인은 길가다가 강도 만나 쓰러져 있는 한 명만을 만나지 않는다. 사마리아인은 고민해야 한다. ‘나귀에 도대체 누구를 태울 것인지’. 그리고 조금 가다보면 또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왜 이 길에는 이렇게 강도당하는 사람이 많은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고는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 앞으로는 “정의로운 사마리아인”이 필요한 시대이고 우리의 교육도 이에 맞추어서 변화해야 한다.

<프로필>

가톨릭대 보건대학원 국제보건윤리 조교수
가톨릭의대 의료협력본부 사무국장·국제보건연구소 부소장
카리타스 인터네셔널 운영위원회 전문위원
2004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2009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교육학 석사
2014년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생명윤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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