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투약’으로 환자 삶에 관여해 긍정적 변화 일으켜야
생명에의 경외와 삶에 대한 사랑 ‘현대의학 뛰어넘는 힘’

그리스 신화에 보면 많은 신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여신과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 사랑과 풍요와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대지가 있어야 생명이 존재할 수 있으며, 여자가 있어야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 우리는 대지를 신성시 여기는 것만큼 여성의 출산도 신성시 여긴다.

여성,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임신과 출산은 신성하다는 것보다 더 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입덧과 체중 증가로 신체는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출산 시 고통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참기 힘든 고통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은 이런 단순한 불편뿐만 아니라 생명을 낳기 위해서 생명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게 된다.

일본의 임산부 사망률의 통계를 보면 최초로 산출한 1899년의 임산부 10만명 중 409.8명이었는데, 2011년에는 3.8명으로 1899년에 비해 100분의 1로 감소했다(일본 후생 노동성, 인구통계 자료집, 2013년도판).

2014년 현재 우리나라 모성사망비(출생아 10만명당 : (모성사망자 수/출생아수)*100,000)는 11명으로 일본보다 높지만 과거보다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모성사망비가 줄어든 이유는 모성 사망의 주요 원인인 분만 후 출혈, 출산 후 감염 질환, 임신 중 고혈압 등을 현대의학에서 적극적으로 처치하였기 때문이다.

[표 1]에서 보는 것처럼 임신은 질병이 아니지만 우리는 안전한 출산을 위해서 병원에 입원을 한다. 과거에는 무조건 집에 있어야 했던 치매도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현대의학은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많은 것에 관여를 한다.

1) 스트레스와 돈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중 하나는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불, 언어와 문자 덕분에 인간은 현재의 문명을 만들었다. 언어는 단순히 사물을 부르는 말부터 인간이 만든 개념을 언어화하였다. 소, 말 같은 사물을 동물로 부르고, 쌀, 보리는 곡식으로 개념화하였다. 동서남북, 왼쪽, 오른쪽, 위아래, 기쁨, 슬픔 등 많은 추상적인 것도 개념화해서 언어로 사용을 한다.

우리나라에 재미있는 말 중에 쥐뿔이라는 말이 있다. 어원은 ‘쥐의 불알’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는데 흔히 아무 보잘 것 없거나 규모가 작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쥐뿔도 모른다, 쥐뿔도 없다”로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 쥐뿔이라는 말은 하찮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쥐의 뿔을 찾는 사람은 없고 단지 개념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돈은 인간이 만든 개념을 구체적 사물로 만든 것이다. 돈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인간이 유통수단의 개념을 통해서 종이, 금속으로 구체화 한 것이다. 돈의 목적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교환하기 위한 것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돈 이상의 개념을 가지게 되었다. 돈이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하고(10억 모으기 등),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스트레스는 한스 셀리에(Hans selye, 내분비학자)가 의학에 처음 사용하였다.(약사와 철학① 참조) 의학용어로 스트레스는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이나 조건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 신체적 긴장 상태를 말한다. 즉, 인체의 상태에 대한 개념으로 사용된 말이다. 스트레스가 인체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면서 인간은 스트레스 개념을 돈과 같이 구체적인 무엇인가로 확인을 하려고 한다.

좋은 스트레스(eustress), 나쁜 스트레스(distress), 스트레스 요인, 스트레스 증상, 스트레스 평가 내지 스트레스 지수 등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서 많은 스트레스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2) 스트레스는 개념일 뿐 실체는 없다

인터넷에는 [그림 1]과 같은 내용이나 그와 비슷한 스트레스 자가 테스트라는 것이 올라와있다. 물론 스트레스에 대한 절대적 수치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스트레스 상태를 알아보는 자가진단 테스트이다. 또, 스트레스 요인을 제시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방법이나 해소법을 소개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피할 방법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또, 신경성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가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이 없거나, 신경을 안 쓸 수도 없다는 것이다. 환자는 실험실에 있는 쥐가 아니라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喜怒哀樂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속에 살고 있는 것이고,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 이것이 삶이고 삶에는 항상 스트레스 반응(stress response)을 일으키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날 때 우리는 좋다(이성을 만날 때)고 느끼거나, 싫다(직장 상사를 만날 때)고 느낄 뿐이다. 단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이 힘들면 스트레스인 것이고, 힘들어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아닌 것이다.

또, 스트레스는 크고 작음, 많고 적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 속에서 그것을 견디는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가만 있을 뿐이다.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의 스트레스와 검은색 양복에 하얀 페인트가 묻었을 때 어느 스트레스가 더 크겠는가?

사형을 앞둔 안중근 의사가 책을 읽을 때 스트레스와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책을 볼 때 스트레스 중 어느 것이 더 힘들 것인가?

단순 반복 작업을 할 때 스트레스와 서류를 정리할 때 스트레스 중 어느 것이 더 스트레스 받는가?

스트레스란 인간이 삶을 살고 있을 때 나타나는 스트레스 반응에 대한 개념으로서 스트레스의 많고 적음, 크고 작음, 정신적 스트레스, 육체적 스트레스 구분이 아니라 인체가 그 상황을 견딜 수 있는 힘,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다. 즉, 삶이란 스트레스의 연속이고, 스트레스란 삶을 정의하는 또 다른 개념일 뿐, 실존하거나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3) placebo와 경우의 수

Placebo는 주로 임상시험에서 신약의 효능이나 부작용을 알기 위해서 사용된다. 임상시험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신약과 대조군을 제외하고 나머지 환자의 상황을 일치 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효능과 부작용 등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placebo는 아무 효능이 없는 약이지만 효과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Placebo가 무엇이 되었든 인체는 반응(비록 변화가 미미할 지라도)을 하고, 인체에 투약 된다는 사실을 감각을 통해서 알게 된다. 감각은 외부의 변화를 감지하고 내부의 변화를 일으킨다. 즉, placebo는 인체의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임상시험을 하는 그 자체도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변수로 본다면 생명을 둘러싼 모든 외부환경은 변수가 될 수 있으며, 생명의 내부환경은 변수에 대한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생명이란 과거부터 많은 변수에 대한 반응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도 많은 변수에 의해서 변하게 된다.

생명은 많은 변수에 대해서 선택을 하거나 강요를 받게 된다. 변수에 따라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으나 삶에 경우의 수는 1, 딱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변수로 작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의 경우의 수도 하나이다. 앞으로 어떤 변수가 오더라도 선택은 한가지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약이란 환자의 삶에 하나의 위로(약사와 철학⑥ 참조)이자 인위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약은 환자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약사는 약을 투약함으로써 환자의 삶에 관여하는 또 다른 변수이다.

4) 사랑하라

삶이라는 스트레스(스트레스 반응)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각각의 삶 속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다. 그리고 그 변수들이 모여서 지금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약사는 약이라는 인위적인 변수를 통해서 환자에게 다가간다. 인위적인 변수인 약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 소멸되고 만다. [표 1]을 보자. 약으로만 치료되는 질환이 과연 있는가? 비교적 쉽게 치료되는 급성기관지염도 노인들에게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또, 많은 질환들이 한번 증상이 나타나면 평생을 약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약은 인체에 변화를 일으킨다.

또한 많은 변수도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약사는 약을 투약하기에 앞서서 삶에 나타나는 많은 변수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 수많은 변수에 대한 고민이 약사에게 있는 것이라면, 변수에 대한 선택은 환자에게 있다. 약과 함께 삶에 대한 변화는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며, 삶의 긍정은 건강에 대한 자신감으로 나타나게 된다.

약사는 현대의학이 보여주는 한계를 안다. 또 한계를 알면서도 다른 대안이 없기에 환자에게 기존의 의약품을 투약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춘다면 약사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방법이 없다. 모든 의약품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고, 약사는 환자의 고통을 외면한 방관자가 되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의 한계를 뛰어 넘을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스트레스도 하나의 개념이고, 질병도 하나의 개념이다. 스트레스도 질병도 모두 인체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인체를 사랑해야 한다. 인체를 사랑한다는 것은 환자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약사는 환자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약사는 생명에 대한 경외를 가지고 있으며, 삶에 대한 무한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생명에 대한 통찰을 가질 수 있고, 생명에 대한 통찰을 가질 때 비로소 약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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