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이해로 마음의 병도 치유하는 의사
‘의학’ 아닌 ‘문학’으로 보건의료 이끌어라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인문사회의학과에는 ‘옴니버스 교육 과정’이 있다. 라틴어로 “모든 이를 위한”이라는 뜻인데, 가톨릭교회가 추구하는 참된 의료인을 양성하고 의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뜻이 담겼다.

이 과정에 ‘문학책’을 매개로 하는 강의가 개설됐다. 책임 교수로 있는 성기헌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몸과 마음, 정신 등 모든 것을 가진 총체적 존재인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의학의 모습이 결정된다고 말하며, 독서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전한다.

의학을 의학이 아닌 분야의 용어(문학)로 설명하는 것이 의사, 더 나아가 보건의료를 이끄는 전문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5가지 테마에 맞는 문학책 읽고 자유 토론해
“생의학(biomedicen)의 한계는, 질병을 치료한다고 해서 마음의 고통까지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서 나타납니다. 의과학 이외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의과학에 대한 교육이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 성기헌 신부

성기헌 신부는 ‘의료와 문학’이라는 강의가 개설된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성 신부에 따르면 의대의 인문학 과정은 의대가 신설되던 초기에도 존재했다. 당시에는 국어, 국사, 심리학 등 교양을 목적으로 강의가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의료 윤리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환자를 세포와 기능으로만 보는 환원주의(reducionsm) 생의학의 한계점 등이 드러나면서 의학을 보완하는 요소로서 인문학이 대두되고 있다. 

성 신부는 “환자는 세포덩어리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도구는 독서”라고 제시했다. 문학은 책 속에 있는 다양한 등장인물의 성격을 대변하고, 그들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강의는 ▲문학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오리엔테이션 ▲병과 고통, 그리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고통인 죽음 ▲환자라는 존재 ▲의사라는 존재(이해) ▲이 모든 것들이 펼쳐지는 병원에 대한 이해 등 5개의 테마에 맞는 문학책에 국한되어 이론과 토론, 그리고 감상문 제출 방식으로 진행된다. 강의는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소속 교수진 뿐만 아니라 타 대학의 문학 전문가 등도 초빙해 진행하고 있다. 토론의 경우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끌기 위해 학생들이 직접 질문을 정해 조를 짜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감동’을 점수로 메겨야 하는 것이 단점
자연계 학생들에게 문학책으로 수업을 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성 신부는 “문학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문학’이 주는 요소인 ‘감동’의 영역을 점수로 메겨야 한다는 것이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라고 답했다. 

강의를 진행하면서 성 신부가 느낀 것은 학생들 마다 감동을 받는 영역이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책 속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고통은 시대 상황이 야기하는 고통인 반면, 그 시대를 겪어 보지 학생들은 주인공이 겪은 고통을 자신에게 입대어 생각한다는 것이다.

성 신부는 “텍스트라는 것이 쓰는 사람만 칸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독자도 칸을 채우는 것이다. 내 경험에 빗대서 생각하는 것도 문학의 요소이고, 감성 개발 차원에서도 존중되어야 하지만 학급의 목표가 있으니 균형을 맞추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또 수만권의 책들 중 5개의 테마에 맞는 양질의 책을 선정해야 하는 것, 특히 교수와 세대가 다른 학생들에게 양질의 작품을 고르는 것과 한 주에 일을 수 있는 적당한 분량의 책을 고르는 것도 난제이다.

▲ ‘옴니버스 교육 과정’은 대체로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00년간 못 만날 사람 만나는 Time saver
성 신부는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마술과 같다”면서 독서의 힘을 설명했다.

성 신부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절대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독서를 통해서는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을 체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인간에 대한 풍부한 이해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성 신부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모든 인간에 대해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이는 불가능하다”면서 “독서를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100년에 걸쳐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시간 절약’이다”라고 피력했다.

또 그는 저자가 책을 통해 전달하려는 질문과 독자가 가지고 있는 질문이 일치할 때는 귀중한 답을 줄 수 있다며, 책이 주는 교훈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 의료와 문학’ 강의에서 학생들이 읽는 책 중 3권.

“환자에 대한 이해로 모든 병 치유하는 의사되길”
성 신부는 미래 의료를 이끌어 나갈 학생들이 독서를 통해 환자를 환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도 전했다.

그는 “우선 환부에 주목을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환자도 사회적, 개인적 등 다양한 면에 심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하길 바란다”며 “풍부한 이해를 통해 풍부한 방식으로 환자를 대하고, 그 사람의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게 되는 힐러로서의 의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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