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월 자격정지’에 불참 선언 잇달아, 11월 수정안으로 시작
‘비도덕적 진료행위’기준 모호해, 행정처분 커질까 우려

11월부터 경기도,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 등 3개 지역에서 ‘면허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이하 전문가평가제)’이 실시된다. 지역 의료현장을 잘 아는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의 비도덕적 진료행위 등에 대해 상호 모니터링 및 평가를 실시하는 제도이다.

C형간염 집단감염 사태 등 사회적으로 의료인의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복지부와 의협이 지난 3월 공동으로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합의한 바에 대한 후속조치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자의적인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는 것이다. 의료계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경기도의사회가 시범사업 불참을 선언하면서 의협이 수정안을 내놨지만 일선 개원가에서는 여전히 불필요한 행정 처분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새어나오고 있다.

6개월간 3개 지역서 시범사업 실시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23일 11월부터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을 6개월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평가의 대상은 면허신고, 의료계 자체 모니터링 등을 통해 발견된 비도덕적 진료행위 의심사례로, 학문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의료행위, 중대한 신체·정신질환이 있는 의료인 등 전문가평가단에서 평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조사하게 된다.

평가단은 각 시도의사회의 추천을 통해 구성된다. 복지부는 지역사회 사정을 잘 아는 분야별 전문가를 위촉하며, 지역 내 의원과 대학병원·종합병원에 소속된 의사들로 시도별로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광주광역시의 사례를 들면, 광역평가위원 5~7명을 선정하고, 지역별·대학병원별로 동구, 서구, 남구, 북구, 광산구, 전남대, 조선대, 기독병원 등 분회에서 각 2명씩 선발해 16명의 지역평가위원을 선발한다. 만약 광주시 동구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광역평가위원 5~7명과 함께 동구 지역평가위원 2명이 합류해 총 7~9명으로 구성된 평가단이 사건을 맡는 식이다.

전문가평가단이 구성되면 전문가평가단은 일차적으로 해당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해당 의사에 대한 면담 등을 통해 조사를 실시하게 되며, 해당 의사의 비협조 등으로 인해 전문가평가단만으로 조사가 어려울 경우, 보건복지부·보건소 등과 공동으로 조사할 수 있다.

또 조사 결과, 자격정지 등 행정처분 조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판단되면 시도의사회에서 심의 후 중앙회(윤리위원회)로 처분을 의뢰하고, 중앙회 윤리위원회에서는 최종적으로 행정처분 필요 여부와 자격정지 기간(경고∼자격정지 1년)을 정하여 보건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요청하고, 보건복지부는 요청한 내용대로 행정처분을 실시한다.

다만, 행정처분의 대상자가 처분 내용에 대해 이의가 있을 때에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수 있으며, 보건복지부는 이를 검토하여 최종 처분을 내리게 된다.

산부인과 낙태 수술 중단, 경기도醫도 보이콧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복지부가 ‘비도덕적 진료행위’ 유형을 세분화하고 자격정지 기간을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로 상향조정하는 의료법 시행규칙을 입법예고 하면서 불거졌다.

복지부가 세분화한 진료행위는 8개로 △무허가주사제 사용 △진료 목적 외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 처방 △진료 중 성범죄 △대리수술 △변질 의약품 사용 △임신중절수술 △마약 및 향정신성 의약품 복용 △그 밖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경우 등이다.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시범사업 시행이 발표되자 당장 산부인과계가 들고 일어섰다. 8개 유형 중 ‘임신중절수술을 할 경우 12개월의 자격정지’라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전국 산부인과 의사의 낙태 수술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고, 산부인과의사회도 10월 16일 추계학술대회장에서 산부인과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산부인과의사회는 “현재도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유전적 장애가 있는 경우, 강간으로 인한 임신 등)을 위반할 경우 형법과 의료법에 따라 형사처벌 및 행정처분이 이뤄지고 있다”며 “개정안은 선고유예 이하를 받은 경우까지 처벌범위를 확장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기도의사회도 시범사업 불참을 선언했다. 경기도의사회는 10월 5일 정기이사회를 개최하고 전문가평가제가 의도하는 전문가의 자율규제에는 전적으로 찬성하나 현재 준비 중인 시범사업은 자율규제와는 거리가 먼 새로운 행정처분에 불과하며 복지부가 발표한 시범사업 보도자료와 의료법 하위법령 개정안이 현행대로 추진된다면 매우 심각한 전문직역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이라 판단한다”고 밝히며 시범사업 불참을 의결했다.

품위손상행위만 적용, 경기도醫 참여 쪽 가닥
사건이 커지자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시범사업에서 ‘비도덕적 진료행위 8개 유형’을 제외하고, 현해 의료법 66조에 규정된 의료인 품위손상행위만을 대상으로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처벌수위도 현행 의료법에 명시된 ‘경고~1개월 이내’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로 했으며, 입법 예고된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은 향후 충분한 의견수렴 등을 통하여 그 결과를 시범사업에 반영하기로 했다.

복지부가 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행정처분 수위가 12개월로 고정된 것처럼 명시된 것은 불필요하거나 중복적인 단어를 생략하는 법 문장의 특성상 ‘최대 ~ 까지’라는 표현을 중복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필요하다면 각 사안에 따라 1개월, 3개월, 12개월 등으로 확정 명시할 수도 있으나, 윤리위원회의 자율적 판단이 제한되고 정상참작이 어려워지는 등 탄력적 운용을 저해할 가능성도 있기에 신중히 판단하여 공식 의견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불신의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입법 과정에서 ‘12개월 이하’ 혹은 ‘최대 12개월까지’ 등의 표현을 사용하겠으나, 혹여 법제처 등에서 불필요한 단어라고 판단하여 다시 ‘12개월’로 수정한다면 이에 관한 유권해석을 정식 공문을 통해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시범사업에 복지부가 의료계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면서 경기도의사회도 시범사업 참여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경기도의사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일부 조항들의 개선이 된 만큼 시범사업 참여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의도 좋지만 불필요한 처분 많아질까 걱정
일선 개원가에서는 시범사업의 의도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도 의료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본다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불필요한 행정 처분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인천시 소재 한 개원의는 “사실 전문가평가제에 대한 의견은 반반”이라며 “내가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좋은 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잠재적으로 (의사들이)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만든 법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회원들 입장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수원시 소재의 다른 개원의는 “비도덕적 진료 행위라는 테두리 안에 도덕적 책임을 법적으로 묻겠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며 “법으로 도덕적인 문제까지 처벌하겠다는 발상자체가 의사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또 “오히려 불필요한 행정처분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회원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한편에서는 전문가평가제에 대한 인지 자체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충북도 소재의 다른 개원의는 “전문가 내부에서 규제를 해야 한다는 큰 틀에서 시범사업의 참여에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시범사업의 대상이 아닌데다가 의사회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큰 논의가 없기 때문에 시범사업이 시작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이라고 일선의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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