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이상은 관계 이상…약은 有無相生의 잘못된 관계에 관여
약사는 삶의 통찰을 통해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약 제시해야

21세기 가장 큰 변화를 꼽는다면 스마트폰의 등장이다. 스마트폰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예전의 휴대폰, MP3플레이어, PMP, 전자사전 등이 사라졌고,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확대, 손쉬운 인터넷 검색, 음식배달, 네비게이션, 은행이나 카드업무 등 각종 생활 편의에 스마트폰이 자리를 잡게 된다.

이런 변화와 함께 흔히 스마트폰 중독이라 불리는 대화의 단절,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빼앗긴다는 단점과 손목터널증후군, 안구건조증 등이 문제로 제기가 된다. 단점이 어떻게 나타나든 스마트폰은 21세기 가장 큰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고 단점은 보완이 되면서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21세기 약사에게 가장 큰 변화는 의약분업이다. 의약분업으로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문구가 현실이 되었고 환자는 자신의 정확한 진단과 약에 대한 복약지도로 질병치료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의약분업이 십수 년이 되면서 약사에게 또 다른 변화가 발생한다.

저함량 비타민 등의 의약외품 전환, 일반의약품의 편의점 판매, 임신테스트기 등 체외진단시약의 온라인 판매, 일반의약품 자판기 판매, 이것이 실패하니 화상투약기 입법예고 등이 약사를 괴롭히고 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의약품을 선택할 때나 건강기능식품을 선택할 때 약사의 도움이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컴퓨터,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은 21세기를 시작하는 대표적인 사건이고, 이것은 더 이상 정보의 독점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앱에서 질병 및 약에 대한 정보는 정말로 무궁무진하다. 비록 아직은 완전하지 못하고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이것도 보완 발전하면서 정확한 정보가 개인에게 전달이 될 것이다.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복약지도 및 조제는 언젠간 스마트폰과 ATC(자동조제기)가 대신 할 것이고, 약의 선택권 또한 사람들이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21세기의 흐름이고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1) 생명과 생명현상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각 분야에서는 생명이 무엇인지 정의해왔다. 생리학적으로 정의한 생명은 섭취, 물질대사, 배설, 호흡, 이동, 성장, 생식,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 등을 수행할 수 있는 계(界)이다. 물질대사 관점에서 생명을 정의하면 생명계는 그 자체의 일반적 성질들이 변하지 않으면서도 주변 세계와 끊임없이 물질을 교환한다.

분자생물학적 측면에서 생명체는 생식능력을 갖고 있고 유전될 수 있는 정보를 DNA와 RNA 속에 부호 형태로 포함하고 있으며 효소를 비롯해 각종 단백질의 생성을 지배하는 계이다. 진화생물학자 메이나드 스미스는 생명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보증할 수 있는 속성들을 소유하는지 여부에 따라 정의된다고 하였다. 생명을 환경과 물질 및 에너지를 교환하는 열린계로 파악하는 열역학적 정의 방식도 있다.

생명의 정의는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에 영향을 미친다. 과거 질병은 신이 내린 형벌로 생각하고, 질병의 치료를 위해서 종교 의식을 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히포크라테스에 의해서 질병은 자연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하고 종교의식이 아닌 새로운 치료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데카르트는 기계적 철학(mechanical philosophy)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한다. 자연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 현상이란 이런 물질들의 운동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전제하고, 각종 자연 현상들을 미세한 물질들의 직선 운동과 충돌로 설명했다. 미세한 물질은 과학의 발달로 점차 규명되고, 규명된 내용이 의학에 들어오면서 현대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현미경의 발달은 세포와 세포소기관까지 알게 되었고, 방사선의 발달은 수술 없이 질병을 진단하게 된다. 화학의 발달은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 및 인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고, 수술의 발달과 각종 의약품이 탄생은 많은 질병치료를 선도하게 된다.

현대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문명이 발전하였다. 현대인은 빠른 문명 속에서 숨 가쁘게 적응하면서 살고 있다. 현대의 변화 속도와 같이 질병도 증가하게 된다. 과거에 흔치 않았던 혈압, 당뇨 등 만성 질환이 증가하고, 영유아 감염에 의한 사망은 줄었지만 아토피 등으로 고생하고, 복잡한 사회만큼 다양한 정신질환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또 환자는 불편한데 검사 상 아무 이상이 없는 경우 가장 흔하게 듣는 얘기가 신경성, 스트레스성, 기능성 이상이라는 말이다.

현대의학의 가장 큰 단점은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질병이 나오지만 과거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기계론을 벗어나지 못해서이다. 특히 지금까지 나온 생명의 정의는 단 한번도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한 적이 없고, 단지 생명현상에 대한 정의를 생명의 정의로 착각을 한 것이다.

2)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가

 

‘유’와 ‘무’는 서로가 있어서 생겨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가 있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길고 짧음은 서로가 있어서 모양을 갖추는 것이고, 높고 낮음은 서로가 있어서 기울기를 비교할 수 있는 것이며, 음과 소리는 서로가 있어서 어우러지는 것이고, 앞과 뒤는 서로가 있어서 따르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역사를 보면 처음은 1992년에 발표된 IBM의 ‘사이먼’이고, 1993년 애플은 ‘뉴턴 메시지 패드’를 출시한다. 1999년 삼성전자는 ‘애니콜 풀터치 PDA폰’을 발매한다. 2007년 1월 애플은 “Apple reinvents the phone 애플이 전화기를 재발명하다”라는 문구아래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장을 열었다.

스마트폰만 본다면 위의 역사가 타당할지 모르지만 스마트폰 이전에 피처폰이 있었고, 피처폰 이전에 전화기가 있었으며, 전화기 이전에 모스부호가 있었다. 편지, 봉화, 파발 등 하나씩 그 이전 것을 보게 되면, 선사시대 동굴 벽화까지 아니 그것보다 더 먼 과거까지 가게 될 것이다.

생명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재 살고 있는 생명체 이전에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었고, 한 생명체가 사라지면 다른 생명체가 지구상에 살게 된다. 생명체는 지구에 살고 있으니 지구가 존재해야 하며, 지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주가 존재해야한다. 그리고 우주 외에 다른 무엇인가 있을 수도 있다.

이렇듯 어떤 일이든 그 시작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많은 일은 인과관계(因果關係)에 의해서 일어나지만 인과관계조차 쉽게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흔히 말장난 식으로 말하지만 오래된 주제 중에 하나인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처럼 서로가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전후(前後)를 따지기 힘든 경우도 있다.

노자의 도덕경 1장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이것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도는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이미 도가 아니고, 이름은 이름지을 수 있으면 이미 영구불변의 이름이 아니다.”이다. 여기서 道와 名을 다른 이름으로 해석한다면 이것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道를 우주만물을 이해하는 것으로 보면, 인간이 과연 우주만물을 이해할 수 있는가이고, 名을 인간이 道를 이해하고 내린 정의(精義)로 본다면 도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가이다.

우리는 진정 우주만물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정의 내릴 수 없는가?

“有無相生”

有는 無를 만들고, 無는 有를 만든다. 有와 無는 어느 것이 먼저가 아니고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상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관계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영향은 양쪽 모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과학문명(有의 세계)의 발전에는 인간의 생각(無의 세계)이 존재하고, 생명이란 생명체(有의 세계)와 생명현상(無의 세계)이 존재하는 법이다. 이것 또한 절대적 이분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변화하는 것이다. 과학문명의 발전은 인간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인간의 생각 변화는 과학문명을 변화시킨다. 생명체도 상황에 따라서 생명현상이 바뀌며, 생명현상의 변화에 의해서 생명체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有에서 有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有無相生의 조화에 의해서 변화하는 것이다. 동굴벽화에서 스마트폰이 나오기까지 단순히 물질문명의 발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끊임없는 생각이 같이 존재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생명이란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無의 변화에 의해서 有가 만들어지고 有의 변화에 따라서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無도 변화하는 것이다. 정자와 난자(有)가 수정(無)이 되어 수정란(有)을 만들고 이것이 착상이 되는 과정(無)도 有無相生의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有無相生이란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하고 있으며, 관계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지 어떠한 것도 결코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3) 약은 또 다른 인체와의 관계이다

인간은 수많은 것과 관계를 맺고 있다. 작게는 자신이 살고 있는 가정과 사회, 더 나아가서는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크게는 지구와 우주까지도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 인체의 내부는 기관(organ)과 기관이 관계를 맺고 있으며, 기관은 세포와 세포의 관계이고, 세포는 기관과도 관계를 맺기도 한다.

또한 인체는 인체 외부의 수많은 환경 세균, 기온, 습도, 낮과 밤 등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있고, 음식과도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有를 보이는 기관, 세포라고 본다면, 無는 물질대사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인체를 有로 본다면 의식, 무의식 등 인간의 생각은 無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이란 생명과 관계하는 것과 有無相生에 의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인체를 고정된 것으로 생각하고 단지 항상성만 유지하려고 한다면 항상성은 반드시 깨지게 되어있다. 인체의 이상을 관계의 이상으로 파악하고 有無相生의 잘못된 관계에 관여하는 것이 바로 약이 된다.

약사는 질병을 보기 이전에 반드시 환자를 보아야 하며, 환자를 볼 때는 환자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와 인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관계를 이해할 때 비로소 약을 투약할 수 있는 것이다. 약도 인간이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무슨 병에 무슨 약이 좋다. 장이 안 좋으면 probiotics를 사용하면 좋다. 이 말은 기계적(mechanism)치료로 보면 맞다. 有無相生 관점에서 보면 좋은 probiotics를 찾기 이전에 인체와 세균과의 관계에 무엇이 문제인지 먼저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인체에 이상이 나타난다면 인체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하며 이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통찰(通察)이라 한다.

21세기는 약사에게 약에 대한 전문가임과 동시에 인간을 통찰하는 능력을 가진 삶의 전문가이기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보다 질병이 복잡한 것은 과거보다 복잡한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회를 살고 있기에 치료법 또한 복잡해 진 것이다. 약사는 삶의 통찰을 통해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약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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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 중 「생명에 관하여 과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이상헌」
EBS 인문학특강, 최진석 교수의 현대철학자,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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