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도동 해뜨는약국 김경우 약사

“옛날 약국은 사랑방 같았어요. 단골 환자들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알고 있는. 요즘은 개인주의가 만연해 환자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잘 몰라요. 그래도 약국에 와서 만큼은 마음 편하게 푹 쉬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기계적인 투약과 복약지도가 반복되는 약국. 그 가운데 ‘사랑방’을 꿈꾸는 약사가 있다. 바로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해뜨는약국의 김경우 약사다.

김 약사는 “환자들에게는 약 투여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약사-환자간의 심리적·정서적 교류도 치료에 도움을 준다고 강조한다.

그는 환자와의 교류를 꾀하고자 약력 관리를 통해 생활, 식습관의 개선과 운동요법 등을 지도하는 ‘세이프약국’과 더불어 ‘소녀돌봄약국’, ‘파지수거어르신돌봄약국’, ‘진로체험약국’ 등을 운영하고 있다.

‘위기’에서 탈출한 세이프약국 환자들

지난 2013년 시범사업 때부터 참여한 세이프약국은 올해 4년차에 접어들었다. 세이프약국에 등록된 환자만 무려 600여명이 넘는다. 그들이 약국을 거쳐 가는 동안 기억에 남는 환자들도 많다.

“제일 눈에 띄는 환자는 감기약, 자양강장제를 대량 구매하는 중독자들이에요. 진통제 중독도 많답니다.” 사나흘 만에 감기약 수십 병을 비우던 환자는 그의 상담관리 덕택에 이제 거의 마시지 않는다.

지병으로 당뇨를 앓던 환자가 갑자기 혈압까지 높아져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 약사는 환자에게 복약수첩을 주며 한 달간 매일 혈압을 측정, 기록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아침마다 측정된 혈압은 오히려 저혈압에 가까웠다.

그는 “환자가 화이트가운 신드롬 때문에 긴장해서 혈압이 올라갔던 거였다”며 “수첩을 의사에게 보여주고 나니 처방도 달라져 증상이 완벽히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정반대의 처방으로 위험할 수 있었던 상황을 완전히 뒤바꾼 사례다.

더 위험할 뻔한 사례도 겪었다. 김 약사는 디스크수술을 앞두고 5가지가 넘는 정형외과약을 복용 중인 고령 환자에게 세이프약국 관리를 추천했다. 자세히 상담을 하다 보니 환자에게 소량의 항문출혈이 간헐적으로 나타난다는 증상을 확인했다.

그는 환자가 약국에 방문할 때마다 검사를 권유했지만 환자는 하루 이틀도 아니라며 통증도 없어 괜찮다고 거부했다.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종합검진 기회, 약사 권유에 못 이겨 대장내시경까지 받게 된 환자. 대장암 초기였다. 환자는 결국 디스크 수술도 미루고 대장암 수술을 했다.

약사-환자 신뢰, 서로 태도 변화시켜… 매출 증가는 ‘덤’

건강을 되찾아준 김 약사와 세이프약국 환자들의 관계를 정의내릴 수 있을까. 단단한 신뢰, rapport(치료적 유대관계) 그 이상일 것이다.

세이프약국은 환자를 대하는 그의 태도와 환자들의 반응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에는 처방전에 의한 의무적인 투약이 이뤄졌다면 세이프약국 운영으로 환자를 더 가까이 알아가게 되면서 친근감이 생겼어요. 또 환자들 가운데 의심이 많은 사람들도 있는데, 제가 세심히 건강을 관리해주니 마음을 열고 믿어 주시죠. 특별히 무엇을 해준다기보다 ‘관심’을 가져준다는 자체에 고마워하세요. 약국 매출도 더불어 증가했죠.”

그는 환자에게 신뢰받는 약사로서의 사명감에 더 적극적으로 복약상담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공부에도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약사 자긍심 심어주는 세이프약국 ‘적극 추천’

인공지능의 발달로 가장 빠르게 사라질 직업에는 늘 약사가 자리한다. 그러나 로봇이 사람의 온기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그는 “세이프약국을 통해 환자들과 정서적으로 교류하고 건강 케어에 도움을 주며 약사로서 자긍심을 갖게 됐다”며 서울 지역 개국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세이프약국을 적극 추천했다.

“약국이 꼭 약만 파는 곳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김 약사는 진로체험약국을 운영하며 약사를 희망하는 아이들에게 약사의 사회적 역할을 소개하고, 가출 여성청소년들에게 여성용품, 일반약 등을 제공하는 소녀돌봄약국도 운영한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어른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다고.

김 약사는 환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민 건강 증진을 위해 약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약국은 이미 사랑방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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