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약국의 불법 행위에 ‘무자격자 조제’ 이어 논란 재점화
약사회, “의약품 유통 시스템상 불가능…문제 약국 명단 밝혀야”

한 달 사이 약국가를 완전히 흔들어 놓은 세 개의 기사.

지난 7월 20일 <한겨레21>은 ‘1년3개월, 나는 가짜 약사였다’ 제하의 잠입 취재 기사로 무자격자의 의약품 조제 파문을 일으켰다. 이어 후속기사 ‘드러난 민낯 보이지 않는 조제실’(2016년 8월 17일자)로 약사들의 반론과 들끓는 여론에 대해 다뤘다. 이번엔 폐의약품이었다. <한겨레21>은 8월 30일 ‘나는 폐기처분용 약을 팔았다’는 근무약사 제보의 보도로 약국의 불법 행위에 대한 논란을 재점화 했다. 충격에 휩싸인 약사사회와 약사회의 대응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폐의약품 수거 사례를 소개한다.

“약 재사용 문제 심각…남은 약 도매상 재판매하기도”

해당 일간지에 제보한 A씨의 고백 중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무자격자의 조제보다 더 심각한 것이 ‘약 재사용 문제’”라는 발언이었다.

그는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이미 변색이 진행된 약을 쓰는 경우가 있다”며 심지어 요양원 환자들이 약을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인 점을 악용해 다른 약국에서 남은 약을 대량으로 사들였다가 요양원에 재판매하는 약국도 목격했다고 밝혔다.

버려야 할 약을 약국 자체적으로 재사용하거나, 이를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도매상들을 통해 판매하는 사실은 약국 업계에서 흔히 알려진 사실이라는 것.

A씨는 “약봉투를 보고 한 달쯤 되는 약들은 약국에서 그냥 쓴다”며 “예전에는 어르신들이 고혈압약을 장기 처방 받은 뒤, 남은 약을 약국에 주고 돈을 돌려달라고 하는 일이 흔했다. 이런 일을 최근에는 약국이 규모를 키워서 (도매상과 함께) 음성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녹내장용 안약이나 치매약은 ‘한 통’ 단위로 판매되어 재활용이 쉽고, 한 달 복용 개수가 정해지지 않아 대량 판매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아이들이 먹는 항생제에 재료값을 아끼려고 물을 타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약국에서는 “항생제는 원래 정량보다 넉넉하게 주도록 국민건강보험공단 가격을 책정한 것이 충분히 이윤이 남는다”며 정량대로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약사들, “불가능한 일…기사 진위 파악해야” 분개

보도를 접한 약국가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약사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기사 내용이 편향됐다는 것.

해당 기사의 댓글에는 “도매상에서 낱알 반품을 다 해주고 있으며 재고가 맞지 않을 경우 조사를 받는다”, “20년 넘은 개국약사인데, 일부 약국의 범법 행위를 전체 약국으로 호도하는 것도 문제” 등 정직하게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는 기사라며 반감을 내비쳤다.

해뜨는약국의 김경우 약사는 “환자가 어떻게 보관했는지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재사용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약사회 차원에서 진위 파악을 하고 법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온누리약국 이지현 약사는 “녹취 파일도 없고, 신분을 밝히지도 않아 사실관계 규명이 안 된 기사”라며 “마치 상상으로 쓴 소설 같다”고 말했다.

특히 ‘어린이용 항생제 시럽에 물을 타준다’는 내용에 “전자저울로 정량만큼 조제한다. 엄마들이 아이에게 정량보다 더 먹이는 경우가 있고, 물을 좀 적게 타면 뻑뻑해서 아이들이 복용하기 힘들기 때문에 물을 타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약사 역시 “정말 약사가 얘기했는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취재 과정이나 사실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약사회가 명예훼손으로 조치를 취하거나 사과문을 발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귀옥 도봉·강북구약사회장은 “약사들이 참담해 하고 분노 감정을 갖고 있다”며 “말도 안 되는 일,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최 회장은 “취재원에 의존했음에도 그 취재원의 불확실성에 근거한 기사다. 이 약국, 저 약국의 한 가지 의도치 않은 잘못을 짜깁기 하다 보니 전체 약국이 모든 잘못을 다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줄 수 있다”며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적했다.

일부 약국 비윤리적 행위, 전체로 확대돼

약국가가 “폐의약품 재활용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는 이유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에 기인한다.

데이터마이닝은 ‘데이터를 분석해 특정 지식을 추출해 내는 기법’으로 현재 심평원은 이를 통해 의약품의 유통경로 파악과 재고량을 관리하고 있다.

데이터마이닝으로 청구불일치 조사가 이뤄지기 때문 반납의약품이나 폐의약품의 재사용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사에 드러난 폐의약품 재활용 혹은 처분 방식은 이렇다.

환자들이 쓰다 남은 약을 안전하게 폐기 처분하라고 갖다 주면 조제실 칸막이 뒤쪽에서는 약국 보조원들이 이 약을 약 종류, 개수, 제약회사로 분류한다. 한 달쯤 되는 것들은 약국에서 그냥 쓰고, 유통기간이 애매한 약들은 모아서 도매상에 적당한 가격으로 처분한다. 이러한 재활용약의 유통은 주로 요양원 거래 약국에서 벌어진다고.

지역약사회 관계자는 “제약, 도매, 요양기관이 제출하는 공급내역, 심평원 보유의 보험청구 데이터 등을 토대로 데이터마이닝 기법을 동원해 조사하고 있지만 간혹 이를 피해 불법적으로 폐의약품을 도매상에 처리하는 요양원 약국이 소수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지현 약사는 “요양원 인근 일부 약국이 윤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한 병원이 일회용 주사기 재활용으로 C형간염을 집단 발생시켰는데 이를 두고 전체 병원을 비양심적이라 매도할 수 없듯 일부 약국의 잘못된 행태에 전체 약국이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해당 매체 ‘유감’ 표명…정정보도는 미정

기자는 세 번째 기사가 보도된 이후 기사의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이틀간 ‘1년3개월, 나는 가짜 약사였다’ 기사를 취재한 교육연수생과 ‘나는 폐기처분용 약을 팔았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이메일, 전화 등을 통해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무응답’과 ‘부재중’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대한약사회는 직접 한겨레신문사를 방문, 정영무 대표이사에게 유감을 전했다. 한갑현 대한약사회 홍보위원장은 “기사 내용을 보면 일부 특정약국의 불법행위가 약국가에 흔히 알려진 사실처럼 보도하는 것은 안된다”며 “추후 약국 관련 기사작성 시 이러한 재발방지를 위해 약사회 의견을 반영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한겨레 출판국 관계자는 “한겨레21 기사로 인해 대다수 약사님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줘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기사를 쓴 기자를 직접 만났다는 최미영 대한약사회 홍보위원장은 “한겨레에서도 ‘일부’를 ‘전체’인 양 보도한 논조가 문제였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기사에 나온 약국 명단을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공개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겨레의 정정보도나 사과문 발표에 대해서는 정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

최 위원장은 사실이 확인될 경우 “선량한 약사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영구적이며 일벌백계적인 후속조치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경기도약사회는 이튿날 방문해 담당 기자를 면담했으며, 이번 기사로 전국의 약사들이 깊은 상실과 자괴에 빠졌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최광훈 경기도약사회장은 "어떤 직능을 막론하고 일부의 일탈, 불법행위는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며 그래서 법이 존재하는 것이고 이번 한겨레 21의 보도는 극히 일부의 불법행위가 약국가 전체에 만연되어있는 것처럼 호도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동 기사를 보도한 담당기자는 금번 보도내용에 대해 본의 아니게 약사회와 약사들에게 심려를 끼치게 된 데 유감을 표하고 약사회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전향적으로 검토하여 향후 보도업무엔 만전을 기하겠다고 전했다.

약사지도위, 사실 확인 시 ‘면허취소 요청·회원 제명’ 불사

대한약사회 차원에서도 약사지도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내부정화활동의 범위를 확대해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가 사라지도록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특별조사를 단행하고,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복지부에 면허취소를 요청하거나 윤리위원회를 거쳐 회원 제명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또한 약사회는 고객이나 환자가 안심하고 보다 철저한 조제실 업무가 안전하게 관리 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폐의약품의 효과적인 수거경로를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방자치단체나 관계 공공기관이 담당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불편함 따르지만 폐의약품 수거 준수하는 약국 많아

폐의약품 수거는 약국에게 일종의 봉사다.

냄새·악취가 나며 협소한 약국 공간을 차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환자들이 마치 약국에 시혜를 베풀어 주는 것처럼 약을 갖다 주어 감정적 불편함을 호소하는 약사들도 있다.

폐의약품을 재활용하는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약국이 있는 반면, 불편함에도 바람직한 수거 절차를 준수하는 약국은 훨씬 많다.

그 중 서울시 도봉·강북구는 폐의약품 수거의 우수 사례로 손꼽힌다. 도봉·강북구약사회는 폐의약품에 대한 조례를 제정해 해당 지역구의 폐의약품 수거와 운반을 명문화·의무화했다. 서울시약 분회 가운데 이를 강제한 약사회는 도봉·강북구가 유일하다.

최귀옥 도봉·강북구약사회장은 도봉·강북구의 폐의약품 수거 절차에 대해 “강북구·도봉구청장을 만나 구청에서 직접 폐의약품을 수거해줄 것을 요청했다. 대형 트럭이 순회하면서 수거하기 때문에 작은 골목길에 위치한 약국은 차량 진입이 어려워 3~4개 약국을 묶어 거점약국을 지정했다. 정기 수거일(도봉구는 첫째주 수요일, 강북구는 둘째주 수요일)에 인근약국들이 거점약국으로 수거한 폐의약품을 전달하면 차량이 거점약국을 방문, 수거하는 시스템”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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