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뇌전증학회 홍승봉 회장

뇌전증이란 뇌에서 전기가 발생하는 질환이란 뜻이다. 영어로는 epilepsy로 그리스어원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님이 영화에서 발작을 하는 환자에게서 악령을 물리치는 모습으로 마치 뇌전증이 악령에 들린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뇌전증은 65세 이상의 노인들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뇌질환으로 각종 뇌손상이나 뇌질환(뇌염, 뇌종양, 뇌경색, 뇌혈관기형, 대뇌피질 이형성증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전인구의 약 0.7~1%에 달하는 흔한 질환이다.

해운대 교통사고로 뇌전증이 검색어 1위에 올랐지만 아직도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인 낙인(stigma)이 심하다는 느낌에 대한뇌전증학회 회장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낀다. 실제 이번 사고에 대하여 충분한 조사 없이 경찰의 성급한 발표와 언론과 일부 정치인의 감정적이고 선동적인 발표는 많은 뇌전증 환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고 당일 밤에 외국의 뇌전증 학자 54명에게 사고를 알리고 각 나라의 상황과 조언을 구해 각 나라의 연구 결과와 운전면허 규정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과 함께 뇌전증 대책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를 국회에서 열었다. 운전뿐만 아니라 뇌전증 치료의 문제점과 대책까지 논의가 됐다. 8월 29일에는 4대 신경계질환(뇌전증,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과 불면증 환자들의 우울증 치료에 대한 국회 토론회를 연다. 우울증 문맹국, 자살 1위인 한국의 처참한 현실에 대하여 발표하고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 원인을 찾아냈다. 30년 전에 보건복지부에 만든 SSRI 항우울제의 의료보험 급여기준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보건당국의 무관심과 방치로 우울증에 계속 빠져 사느냐 우울증에서 벗어나는지가 결정되는 날이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뇌신경이 불안정해지면 가끔 큰 전기가 발생하는데 뇌 부위에 따라서 증상도 천태만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이상한 느낌, 이상한 소리가 들림, 물체가 왜곡되어 보임, 한쪽 손이 떨림, 기시감, 신체의 일부가 저림, 갑자기 쓰러짐, 전신경련발작 등). 이것이 뇌전증 발작이다. 다행이 20가지 이상의 항뇌전증약(antiepileptic drug)이 개발되어서 뇌전증 환자들의 약 70%는 약물치료에 의하여 증상이 잘 조절된다. 하지만 약 20~30%는 여러 가지 항뇌전증약을 복용하여도 발작이 조절되지 않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이다. 이 중 3가지 이상의 약을 복용하여도 한 달에 1회 이상 발작이 발생하는 환자들을 중증 약물난치성 뇌전증(severe drug resistant epilepsy, SDRE)으로 필자가 분류하였다. 전국 15개 대학병원의 뇌전증 자료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의 SDRE 환자는 약 2만 명 이내로 희귀난치병의 기준에 맞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SDRE 환자들은 여러 가지 항뇌전증약을 먹어야 하므로 비싼 약값을 감당하기도 매우 힘들며, 수술은 꿈도 꾸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대부분이다. 이 환자들은 암환자와 같이 의료비를 정부에서 지원하여 주어야 한다.

산정특례를 받고 있는 양성 뇌종양, 초기 암 환자, 초기, 중기 파킨슨병에 비하여 중증도가 훨씬 높은데도 불구하고 산정특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 중에 SDRE 환자들의 산정특례를 받는 것이 대한뇌전증학회의 오래된 숙원이다. 또 중증 뇌전증 환자들의 치료를 더 어렵게 하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보험 급여기준의 개선이 시급하다. 수술 전 검사의 정확도는 바로 수술의 성공률로 직결된다. 환자와 보호자가 마지막 희망을 거는 뇌전증 수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수술 전 검사(presurgical evaluation)의 잘못된 급여기준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건보 적립금이 17조원이나 된다. 지난 40년 동안 한 번도 지원하지 않았던 뇌전증 환자들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프로필>

홍승봉 교수

대한뇌전증학회 회장

성균관대학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아시아수면학회 창립 및 차기 회장

1983년 서울대의대 졸업, 신경과 전문의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클리블랜드 클리닉 신경과 임상전임의

2015년 3월 세계수면학회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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