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얼굴 레이저 시술은 치과의사 수준 넘는 전문적 지식 필요

치협, 보톡스 판결 이겼다고 무분별하게 시술하라고 하지 않았다

2016년 7월 21일 의료계는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치과의사의 미간, 눈가 미용 보톡스 시술 행위가 의료법상 치과의사의 면허범위 내의 행위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 게다가 프락셀 레이저 시술마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어 의료계는 이를 반드시 막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는 8월 25일 서울성모병원 의생명산업연구원에서 ‘치과진료영역에 주름살 시술을 포함시킨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사회적 파장'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진료 범위 명확하지 않아 치과의사 보톡스 시술 허용, 그럼 레이저 시술은?

이번 사건은 치과의사 L씨(46)가 지난 2009년부터 2012월 1월까지 자신이 운영하는 치과의원에서 환자 안면부위에 미용 목적의 프락셀 레이저 시술, 주름제거, 피부 잡티 제거 등을 하다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면서 시작됐다.

L씨는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고 현재 3년 넘도록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7월 21일 눈가와 미간 주름 치료를 위해 보톡스 시술을 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치과의사 J씨(48)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면서 치과의사 L씨의 판결도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재판부는 J씨의 판결에 대해 "치과의사의 안면 보톡스 시술이 의사의 보톡스 시술에 비해 환자의 생명과 공중보건상의 위험이 더 크다고 볼 수 없다"며 "의학과 치의학의 기초 학문의 원리가 다르지 않고 그 경계도 불분명하고, 현실에서도 양쪽 모두 시술하는 영역이 존재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구강악 안면 외과가 치과 전문과목에 포함돼 있고, 치의학 전문대학에서 안면부에 발생하는 질병, 질환에 대한 치료, 실습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의료행위의 개념은 고정불변인 것이 아니라 의료기술의 발전과 시대상황의 변화,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자의 인식과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다. 의료의 발전과 의료서비스의 수준 향상을 위해 의료 소비자의 선택 가능성을 널리 열어두는 방향으로 관련 법률규정을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재판부의 취지대로라면 프락셀 레이저도 치과의사의 보톡스 사용 논란과 마찬가지로 '구강악안면외과'에 대한 진료 범위가 명확히 법적으로 명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톡스와 같은 판결이 나올 수 있을 거라는 분석이다.

의료계, 법조계, 언론계 “의사 면허 명확히 해야”

▲ 정찬우 기획정책이사

대한피부과의사회 정찬우 기획정책이사는 토론회를 통해 일선 치과에서 전문영역을 무분별하게 침범하는 진료행위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면허제도의 근간이 무너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부과의사회에 따르면 현재 일선 치과에서는 ▲쌍커풀 수술, 눈 밑 지방제거 등 눈 주위 노화 치료 수술 ▲코 형성 수술 ▲여드름 및 피부 레이저 치료 ▲몸매 교정 ▲모발이식 등을 시행한다는 광고를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정 기획이사는 “치과의사에게 피부에 대한 진료를 허용할 경우 본래 전념해야 할 치과 진료는 소홀히 한 채 치의학의 비전문 분야인 피부진료 영역에 몰려 의료체계의 왜곡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이는 학문의 발전이 아닌 수익을 위한 진료영역 확장만 이뤄져 결국 전문성에 기초한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흔들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기획이사는 “의학과 치의학의 면허 구분이 모호해진다면 의료인 면허제도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국민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하게 되고, 국민건강에 악영향을 미쳐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김석원 교수

김원석 교수(성균관의대 피부과 교수)는 “구강과 피부의 역할을 학문적으로 어떻게 나누는 가를 토론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면서 “얼굴에 대한 레이저 시술은 치과의사가 가지고 있는 지식수준을 넘어서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피부 관련 지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치과도 의료 영역이니까 기본 지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의과대학 6년, 병원 인턴 활동 등으로 1년, 피부만 전문적으로 4년을 공부해야 피부과 전문의가 되는 것”이라면서 “피부영역 진단은 시각적으로 주로 하는데, 피부 질환은 대부분 비슷하게 생겨서 환자의 병력, 동반 증상 등을 통해 미묘한 차이를 직관적으로 해석해야 해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강조했다. 즉 다양한 피부 성질과 당뇨나 결체조직질환 등 전신 질환 유무를 파악하지 못한 채 레이저 시술을 할 경우 부작용이 증가하고 치료 결과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악성 종양은 초기 대응이 적절하지 않을 경우 치료가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환자는 시간적 및 경제적으로 많은 손실을 보게 된다는 지적이다.

한편 대법원에 지난 보톡스 판결에 대해 법조계도 사회적 통념과 법적 해석에 맞지 않아 이번 판결이 의아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 박지용 교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지용 교수는 “일반인으로서 이번 판결을 보고 의아했고, 법조계 전문가로서 문제가 있다고 느껴졌다. 의아스러움이 우려로 바뀐 것”이라며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경제적 자유에 우선가치를 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대법원은 핵심 논거로 위험성 기준을 사용하고 있는데 공중보건적 위험성은 수평적인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설정하는데 있어 핵심적 논거로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특정 의료행위를 어느 면허 범위에 배분할지가 핵심이어야 하며, 의료법의 문언이나 취지에 따라 객관적이고 획일적으로 범위를 정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면허제도 본질에서 왔다고 말하며 "의료법에 의료행위가 뭐라는 규정이 없어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1974년 이전까지만 해도 법원은 미용성형수술은 질병의 치료, 예방 영역이 아니라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봤는데, 이후에는 의료인이 하지 않으면 공중보건에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공중보건적 위험성을 인정하면 비전문가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라고 하는 다툼이 되는데, 의료행위 영역으로 넘어오면 이것을 누구의 면허범위에 속하는가를 결정하는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즉 문제가 되고 있는 특정 의료행위가 수평적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면허에서 누구의 범위에 속하느냐를 따지게 되는 것이며, 이때는 의료법에 규정된 문언에 기초해서 판단해야 하고, 이는 법률해석의 문제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최근 대법원이 정책적 가치를 밝히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치과의사 보톡스 판결뿐만 아니라 다른 의료행위 관련 대법원 판결 추세를 보면 경제적 자유 영역을 확대하려는 정책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치과의사 보톡스 합헌 판결문에 따르면 의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면허범위 해석은 무시되고, 입법자의 결단과 태도는 아무것도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표현하고 있다"며 "입법자의 역할을 경시하고 사법부의 권한을 극대화 시키는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 김철중 기자

김철중 조선일보 기자는 “예를 들어 인슐린 주사는 환자들이 직접 놓는다. 이를 직접 놓으면 안 된다고 법으로 정하면 환자들은 직접 못놓는다. 합법적이라 가능한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현대 의료가 저난이도 형태로 계속 발전하고 있어 환자들이 직접 집에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며 “먼저 비전문가도 쓸 수 있을만큼 안전하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진단이 명확한 사안에 대해서만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기자는 “레이저 부분은 진단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고, 그래서 확산되지 않았던 거다. 누구나 진단 내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레이저 영역도 낮은 단계로 확산됐을 거지만 전신질환, 발현형태 등이 숨겨져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안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앞으로 이런 진료 영역들 간 갈등영이 생길 텐데 이를 사법적으로만 해결한다는 게 후진적이다”라며 “미국 등 선진국처럼 면허국을 둬 진료영역 형태를 서로 규정하고, 직무영역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醫, 면허 범위 대한 엄격한 해석 필요해

▲ 추무진 회장

의협 추무진 회장에 따르면 의협은 면허 범위에 대한 엄격한 해석을 촉구하며 치과의사 프락셀 레이저 시술 의료법 위반 사건에 대응하는 차원으로 대법원에 12,594명에 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추 회장은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면허의 종류를 구분해 각각 임무를 달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치과의사는 치아와 관련된 진료와 함께 구강보건을 임무로 하고 있다"며 "국민 또한 치과의사는 구강을 벗어난 신체 범위에 대해 치과의사는 진료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상식"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 "대법원 판결이 비록 치과의사의 안면부 시술을 전면 허용한다는 취지는 아니지만, 판결 그 자체만으로 자칫 실제의료현장에서 면허에 따른 의료행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현행 의료법의 근간마저 송두리째 흔들어 버릴 소지가 많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의협 관계자는 “의료법에 따르면 피부과 의사도 성형수술을 할 수 있다. 성형외과 의사도 피부과 진료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고난도 시술, 수술은 하지 않는 것이다”라며 “의료법에 따르면 현대의학, 한의학, 치과학이 나눠져 있어 그에 맞는 의료 행위를 배우는데, 특히 프락셀 같이 얼굴에 일부러 상처를 내는 고난도의 시술은 현대의학을 공부한 의사들도 꺼려하는데 치과에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또 “상식적으로 환자들이 자신의 얼굴이 망가질 수도 있는데 일반 내과에서 시술 받으라고 한다면 누가 가겠느냐. 치과는 더욱 안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분별한 레이저 시술은 치협도 반대

대한치과협회 이광훈 법제이사는 “의협 쪽에서는 치과의사들이 의료 영역을 침범하고, 확대시키려 한다고 하는데 치협은 그런 입장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소송 방어를 하는 입장이고, 의료 사고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논리적인 자료를 통해 변호를 한 것”이라고 입장을 일축했다.

또 “의협은 의료인의 정의부터 모르고 있다. 의과, 치의과, 한의과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의료인”이라면서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시술을 하면 안 된다는 식의 논조는 치과를 비하하는 발언”이라고 불편한 기색을 표출했다.

이 이사는 “판결에서 이겼다고 해서 우리(치협)는 회원들에게 무분별하게 보톡스 시술을 하라고 하지 않는다. 협회 차원에서 광고 모니터링을 주기적으로 실시해 레이저 시술 등을 광고하는 회원들에게는 공문을 보내고 강경대응을 해왔다”며 “치과의사가 레이저 제모 등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말이 안 된다. 레이서 시술 판결이 승소된다고 해도 권고할 생각 없다. 의협은 아주 벗어난 사례를 일반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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