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BA로 약국경영 ‘편리함’·환자 ‘배려’ 두 마리 토끼 잡아
직접 개발한 프로그램, 동료 약사들과 흔쾌히 공유해 도와

▲ 이근호 약사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근방의 한 문전약국.

약국을 찾는 국내 환자뿐 아니라 러시아, 몽골, 중국 등 각지에서 방문하는 환자들로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그들에게 전달되는 복약지도는 러시아인이든 중국인이든 모두 영어인데 그마저도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언어 소통에 어려움을 느껴 다른 방법을 골똘히 궁리하던 서울 창천동 정문약국의 이근호 약사는 직접 다국어 복약지도 시스템을 만들었다.

‘클릭’으로 해결하는 다국어 복약지도

이근호 약사가 제작한 다국어 복약지도 시스템은 엑셀을 기반으로 응용한 어플리케이션 시스템(VBA, Visual Basic Application)이다.

이 약사는 병원에서 자주 처방되는 복약지도 내용과 이를 각국 언어로 번역한 표기를 전부 입력,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다. 특히 복약지도에 가장 중요한 정보인 복용 방법과 복용 시간을 다국어로 전달할 수 있도록 주력했다. 현재 러시아, 중국어, 영어 등 5개 언어로 변환되는데 입력만 하면 얼마든지 타국어 추가가 가능하다.

VBA에 접속해 처방에 해당하는 복약지도 내용을 원하는 언어 버전으로 ‘클릭’하면 복용시간 및 방법이 외국어로 표기된 라벨이 출력된다. 이 약사는 “이전보다 외국인들에게 복약지도하기 훨씬 수월해졌다”며 “자국어로 정확한 복약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약국을 다시 찾는 외국인 내방객들이 많다”고 밝혔다.

아울러 투약봉투에 적힌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연로한 환자들을 위해 복약지도 내용을 깔끔하게 큰 글씨로 라벨로 인쇄해 투약봉투나 약상자에 붙여준다. 환자를 생각하는 섬세한 배려가 환자의 발걸음을 그의 약국으로 이끌게 하는 힘이다.

직접 개발한 당뇨소모성재료 프로그램, 아낌없이 공유

그가 처음부터 프로그램을 쉬이 다룰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1998년 충청북도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시절 약사회의 부족한 예산 탓에 충북약사회 홈페이지를 직접 제작하게 되면서 IT분야에 첫 발을 들였다. IT에 뛰어든 이래로 이 약사는 VBA를 활용해 다양한 시스템을 개발해냈다. 이런 경험으로 말미암아 서울 서대문구약사회 정보통신위원장을 맡게 된 그는 동료 약사들에게 손수 개발한 시스템(파일)을 아낌없이 공유한다.

그의 시스템 가운데 약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바로 당뇨소모성재료 보험급여 관리 프로그램이다. 지난 1월 25일부터 당뇨소모성재료 원외처방이 가능해 지면서 약국 처방전 발행이 증가해 기존 프로그램으로는 처리가 어려워졌다. 이에 이 약사는 VBA에 데이터베이스 개념을 도입,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예전에는 직접 본인부담금을 계산하고 세금계산서를 기입해서 접수했는데 지금은 프로그램을 통해 간편하게 처리가 가능하다. 환자의 지난 처방 내역과 판매가, 수량 등의 정보도 날짜별로 조회할 수 있다. 약사들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게 됐는데 프로그램으로 하여금 더 수월하게 처리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VBA 시스템으로 약국 경영의 혁신 가져와

1층은 접수대, 2층은 조제실로 이뤄진 그의 약국은 개국 초반에 소통 문제로 불편함을 겪었다. 이 약사는 ‘어떻게 하면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식당의 주방 프린터에서 착안해 프린터를 통해 메모 내용을 전달하는 VBA 시스템을 만들었다. 1층에서 시스템에 간단한 메모를 작성하면 2층 프린터기에서 메모가 출력되는 식이다. 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전화로 낭비되는 시간을 절약할 뿐 아니라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보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약사는 서대문구의 유일한 마약 도매상으로서 병원이나 주변 약국 등에 마약을 공급하고 있다. 관리가 복잡하기 때문에 구에서 1명만 맡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지만 이 역시 그가 개발한 VBA 프로그램을 사용해 가능했다.

필요하면 뚝딱 만들어내는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프로그램은 수진자 자격 조회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연동되어 환자를 조회하면 자동으로 공단의 환자 정보가 뜨며 그 데이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개발 당시만 해도 최초였고 획기적이었다고. 이 약사는 “제가 처음 만들었는데 다들 아주 편하게 쓰고 있다. 사업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다 퍼준다”며 사람 좋게 웃었다.

‘불편’에서 비롯된 필요한 발명

하루에 처방전만 수백 건인 문전약국을 운영하기에도 빠듯한 시간 이 약사는 짬을 내 책을 보고 틈틈이 인터넷을 검색하며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공부했다. 그가 이처럼 약국 경영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유는 다름 아닌 ‘불편’에서 비롯된 ‘필요’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이 약사는 “다들 어렵다지만 조금의 지식과 관심만 있으면 된다”며 “우리 약국 환경에 필요한 것들을 고안하다 보니 여러 가지 툴들, 엑세스를 만들게 되었다. 혼자만 쓰기에는 아까워서 앞으로도 주변 분들과 공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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