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원인 정확히 아는 것,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첫 번째
고통·절망에서 비롯된 자살…‘수단=목표’ 아닌 새로운 가치 찾아야

삶이란 항상 불안하다.

현생 인류의 분류학상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이다. 고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후손으로 추측되는 이들 호모 사피엔스는 20만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오래된 현생 인류의 화석은 13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살았던 사람의 화석이다.

지구상에는 생명이 존재한다. 인류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오랜 고민을 하였고, 생명의 기원으로 크게 창조론과 진화론이 있다. 초자연적인 계획과 설계(신, 하느님)에 따라 창조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창조론이고, 수십 억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무기물에서 시작하여 간단한 생물체로, 그 다음 복잡하고 질서 있는 체제를 갖춘 고등생물로 서서히 진화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진화론이다.

창조론이 맞는가? 진화론이 맞는가?

기독교를 믿는 많은 분들은 창조론이 맞는다고 하고, 과학을 추구하시는 분은 진화론을 지지한다. 또, 2가지 다 오류가 있고,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기 이해서는 2가지 모두 맞는다고 하는 분도 있다. 물론, 창조론과 진화론 모두에 관심이 없는 분도 있다.

19세기 유럽에서 찰스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년, 영국의 생물학자, 지질학자)이 발표한 ‘종의 기원’(1859년)은 과학계를 뒤집어 놓는 혁명이었고, 이후에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 시기 진화론보다 더 충격적인 발언을 한 사람이 등장한다.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년 독일의 철학자)이다. 니체의 선언은 당시 전통적인 기독교적 가치관을 완전히 뒤엎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다.

위버멘쉬(Übermensch, Über 뛰어넘는, mensch 인간, 초인(超人)으로 해석)와 권력에의 의지(혹은 힘에의 의지 The will to power)로 귀결되는 니체의 사상은 신, 관습, 규범에서 벗어나 모든 해석의 중심을 인간, 나 자신으로 이동시킨다.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이란 없다.” 니체, 「이 사람을 보라 中」

니체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터득시키고자 하였고, 위험하게 살라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 운명애運命愛)고 강조한다. 절대적 진리는 없고,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보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1) 자살(自殺)

자살은 생명체가 스스로의 생명을 끊는 행위를 말한다. 2013년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1만4천427명으로 인구 10만명당 28.5명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며,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과거부터 높았던 것은 아니다. 1998년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노년층의 자살률은 평균자살률보다 3배 이상으로 상당히 심각한 상태이다. 연령별 자살의 원인을 보면, 10대는 주로 성적 지향, 학업, 집단 따돌림 관련 문제, 20대는 취업난, 연애 문제 관련, 30대부터는 생활고가 많다. 그리고 노년층은 건강악화, 경제적 곤란, 외로움, 상실감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자살의 원인을 살펴보면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절망적인 느낌, 희망의 상실로 나타나는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이다. 이 사람들은 자살 전에 특정한 신호를 보내는데,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말장난 식(예, 자살의 반대가 살자야, 그냥 열심히 살면 돼)으로 말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살은 오랜 고뇌의 시간에서 나온 것이며, 특히 삶의 고통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죽는 게 무서운데도, 사는 게 더 무서워서”이다. 이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어찌 보면 그들의 삶에 가장 강력한 위로의 수단일 수 있다.

2) 신은 죽었다

 

인류의 역사를 도구의 역사라고 하여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불의 사용, 돌도끼의 발달, 신석기 혁명이라 불리는 농사의 시작, 철의 사용, 산업혁명, IT혁명 등 인류의 발전은 도구의 발전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은 도구를 이용해서 자신이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도전을 하였고, 과거의 인간보다 더 강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다.

도구의 발전과 함께 인간은 끊임없이 과거의 가치를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산신령이라 불리던 호랑이는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되었고, 신이 산다고 믿었던 우주는 아직 인간이 가지 못한 공간이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도구의 발전은 그 어떤 시기보다 엄청나게 빠른 변화로 기존의 가치(도덕, 관습 등)는 부정되고 있지만, 인간의 새로운 가치 창조는 도구의 변화를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교통의 발달로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부모 공양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고, 생산수단의 발달은 더 이상 많은 노동력이 필요가 없어지면서 결혼과 출산도 선택이 되었다. 종교적 신념과 도덕적 가치에 따라 삶을 사는 것이 부정되고,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은 돈이 된다. 부동산투기, 주식투기는 최고의 가치창조가 되고, 투기가 아닌 투자로 변신을 한다.

 

[그림 4]의 대화를 보자. 엄마는 시진을 위해 모든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시진은 투자한 것(과외)에 대한 결과(성적)가 없어서 괴로워한다. 엄마는 대학을 바라보며 얘기를 하고, 시진은 자신을 보면서 얘기를 한다. 엄마의 가치는 시진이 대학을 가는 것이고, 시진의 가치는 자신을 모른다(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왜? 엄마는 대학을 보내려하고, 시진은 자신을 모른다고 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란 취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을 했고, 돈을 잘 벌 수 있게 도와주는 대학이 명문대학이 되었다. 시진은 단 한 차례도 교육(education)을 받은 적이 없고,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한 훈련(training)만 받았을 뿐이다. 엄마는 아이가 돈을 잘 벌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아이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싫고 도망치고 싶지만 내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쳐야 하며, 어디로 도망을 쳐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3)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

생명은 생존이 가장 큰 목표이다. 인간은 생존을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서 도구를 사용한다. 또한 도구는 인간을 더 인간다운 가치를 창조하며 자신의 꿈을 꾸게 도와준다. 불을 통해서 더 많은 음식을 섭취하고, 밤이 두렵지 않게 되며, 총을 사용하면서 사자도 무섭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비행기를 만들어서 하늘을 나는 꿈이 현실이 되고, 우주를 비행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도구의 사용법과 가치를 알려주며 더 좋은 도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인간 가치실현을 위해서 도구는 너무도 중요한 존재이고, 도구를 갖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경쟁이 심해질수록 도구는 도구에서 끝나지 않고 강력한 무기가 된다. 더 이상 교육은 새로운 도구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수단이 아닌 더 많은 도구(학벌, 토익점수 등)를 갖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돈은 생존에 필요한 물건을 사는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돈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 돈의 끝에는 허무만이 기다리고 있다.

삶에는 목표가 없다.

나는 태어났고, 태어났기에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태어났기에 교육을 받고, 나는 태어났기에 무거운 짐을 지고 돈을 버는 것이다.

나는 금수저가 아니기에 인생을 비관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것인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막을 건너는 낙타는 자신의 삶을 긍정한다.

그리고 묻는다.

“무엇이 무거운가?”나는 오늘도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묻는다. 무엇이 가장 무거운지?

그리고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질 수 있게 나에게 선물을 한다. 그 선물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또, 나는 나에게 명령을 한다. 무거운 짐을 짊어질 능력이 있는 나는 나에게 명령하며 끊임없이 나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다. 나는 자유를 원하며, 나는 나의 짐을 벗어던지겠노라고. 나의 짐을 벗기 위해서는 나에게 가장 무거운 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그 짐을 짊어질 힘이 있어야 비로소 그 짐을 벗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나를 둘러싼 기존의 가치체계에서 벗어나 내가 주인공인 나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가치체계와 판타지 세계에 살고 있다. 명품가방은 가방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과시일 뿐이고, 우리는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고,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나의 이상형이 되어버렸다. 돈은 수단일 뿐 결코 목표가 될 수 없으며, 내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순간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삶은 생존이고, 생존은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내가 불안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나의 삶을 사는 첫 번째가 된다. 불안한 것이, 힘든 것이 무엇인지 항상 질문하라. 그리고 어떻게 하면 불안을 없앨 수 있는지 그 질문에 답을 하여라. 그리하면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 될 것이다.

“의미 없는 존재인 인간이 의미 있는 이유는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질 줄 아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참고문헌

위키피디아검색, 프리드리히 니체
나무위키검색, 자살, 자살통계
EBS 인문학 특강, 이진우 교수, 니체, 신의 죽은 시대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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