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정신건강 위한 노력과 독서를 사랑하는 직원들의 힘
‘재중원서재’, 전문사서 근무 기부 아닌 직접 구매한 책 비치

국립중앙병원으로 1885년 설립돼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대학교병원에는 오로지 환자들을 위한 ‘도서관’이 있다. 1995년 국내 병원에서는 최초로 설립된 병원 도서관이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본관 1층에 위치하고 있다. 카페 등의 시설이 입주했다면 꽤 쏠쏠한 수익이 났을지도 모르는 요지(要地)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왜 ‘도서관’을 택한 것일까?

그 배경에는 공공기관으로서의 희생, 환자들의 정신건강 함양을 위한 병원의 노력, 그리고 ‘독서’를 사랑하는 원내 직원들이 있었다. 

오락의 역할로 시작한 ‘재중원 서재’
우리는 지식을 습득할 때, 삶의 여유를 찾고 싶을 때 등 다양한 이유로 책을 찾는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기본적으로 책을 찾았던 이유를 잊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락’으로서의 기능 말이다. 현재 우리는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고, 영화 감상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하지만 1995년 당시에는 TV 시청 이외엔 하루를 보낼 마땅한 놀거리가 없었다. 특히나 병실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입원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는 더 고독한 시간들이었다.

이에 서울대병원은 환자들의 문화적인 공간을 위해 도서관을 설립했다. 지친 병원 생활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주고,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당시 이름은 함춘서재. 처음에는 소아 별관에서 운영이 되다가 2012년 본관으로 이전되면서 ‘재중원서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서울대병원 홍보팀 담당자이자 ‘재중원서재’의 1대 사서인 피지영 담당자는 “당시에는 병원 서비스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다”며 “TV 시청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었던 터라 환자들을 위한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설립 이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만족해했다.”고 회상한다.   

사서 배치하고, 구색 갖춘 병원 도서관
본관으로 이전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본관은 접근성이 용이한 곳이기 때문에 수익을 내기에 좋은 자리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공공 의료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명감 하에 환자들의 정신건강 함양을 위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게다가 재중원서재에는 전문 사서가 있다. 배치되어 있는 책들 또한 ‘기부’ 받은 책들이 아니다. 사서를 통해 어떤 책이 있는지, 환자들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직접 책을 구매해서 배치한다. 재중원서재 제3대 사서이자 홍보팀 사원인 맹현정 사서는 “병원이다 보니 입원 환자가 가볍게 볼 수 있는 문학 비율이 높다”며 “하지만 비문학, 건강 도서 등 다른 장르의 책들도 구비되어 있다”고 전했다.

한편 재중원서재는 입원 환자와 병원 직원만 대출이 가능하며, 외래 환자와 방문객은 열람만 가능하다. 면적은 약 100㎡이며, 약 8,000여 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다. 인터넷 서비스와 건강강좌 등의 행사도 제공하고 있다.

병원과 환자가 만족하는 문화공간
재중원서재에는 하루 평균 200여 명의 이용자가 방문하며, 도서 대출 중 직원의 비율은 30% 정도다. 맹 사서에 따르면 방문객들은 병원 내 ‘도서관’이라는 문화공간이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으며, 타 병원들 또한 벤치마킹을 위한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맹 사서는 “우리 병원을 시작으로 더 많은 병원에 환자 도서관이 생겨, 병원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책’을 사랑하는 직원들
도서관이 확충될 수 있었고, 그 이전에 도서관이 설립될 수 있었던 이유는 ‘책’을 사랑하는 병원 내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재중원서재 1대 사서 피지영 담당자와 3대 사서 맹현정 담당자는 문헌정보학과를 나왔으며, 피 담당자의 경우 도서관 설립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다. 피 담당자는 서울대병원 내에서 따로 독서모임을 주최할 정도로 독서광이다. 독서 모임 또한 병원 내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행정직 등의 직원들이 모였는데, 그 역사가 벌써 1년이 넘었다.  

▲ (좌)피지영 전 1대 사서 (우)맹현정 3대 사서

피 담당자는 “좋은 음식을 먹으면 같이 먹고 싶은 것처럼 책을 알려주고 싶고, 공유하고 싶다.”며 독서를 추천할 수밖에 없는 그의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독서를 하면 삶이 바뀌고, 마인드도 긍정적으로 변한다”며 “이지성이라는 작가 또한 100권 정도의 독서는 사고방식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300권의 독서를 하면 긍정적 사고방식이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1000권의 책을 읽으면 삶이 변한다고 말했다.”고 설명한다.

피 담당자는 교수진들에게 독서를 추천하고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책을 읽기에 시간을 내기 힘든 것은 안다. 하지만 책을 안 읽으면 바쁠 수밖에 없다.”며 서울대병원 교수진들의 독서를 바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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